‘랜덤채팅’으로 담배 뚫는 청소년, 판매자는 돈 대신 ‘몸 사진’을 요구했다
‘랜덤채팅’으로 담배 뚫는 청소년, 판매자는 돈 대신 ‘몸 사진’을 요구했다
  • 신용하 기자
  • 승인 2020.11.08 0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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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온상 '랜덤채팅'
청소년 유해매체물 지정됐지만, 엄격한 제재 어려워

‘담배, 대신 사주시면 3배 드릴게요.’... ‘

어디 살아요? 경기도로 오면 사드려요.’

 

  스마트폰이 만든 익명의 공간 뒤에서 담배, , 성인용품 등 청소년 유해 물품들이 청소년들에게 거래되고 있다. 300개가 넘는 랜덤채팅 어플, 트위터, 카카오톡 오픈채팅 등을 통해서다. 해당 어플에 #댈구, #뚫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면 각지에서 대리구매를 진행한다는 채팅방을 바로 찾을 수 있다.

  익명의 채팅방에서 구매를 원하는 청소년과 판매자들은 뚫비’(대리 구매비)를 주고받는다. 기존 가격에 적게는 1000~2000, 많게는 3배까지 추가 금액을 덧붙여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자들은 돈 대신 불건전한 신체접촉, 음란사진까지 요구하기도 했다. 본인 인증절차 없이 익명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랜덤채팅어플. 기자가 직접 어플을 통해 담배 대리구매를 시도한 결과, 어렵지 않게 다수의 판매자와 접촉할 수 있었다.

 

#1. “수고비는 부르는 게 값이에요.”

 

기자가 대리구매자 ○○와의 접선을 시도하고 있다.

 

  기자는 고등학생으로 가장해 담배 대리판매자를 찾았다. 수십 명의 판매자와 접촉했고, 그중 한 판매자와 약속을 잡아 만났다. “랜덤채팅으로 담배 구하는 학생들은 진짜 많아요. 수고비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서 부르는 게 값이죠. 용돈 벌이가 꽤 돼요.” 경기도 남부를 기점으로 대리구매를 이어온 A(·20)씨는 4개월째 온라인 뚫배로 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뚫배가 성행한 건 20163월 청소년보호법 개정으로 인해 담배 구매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시점이다. 청소년들이 담배를 구하기 더욱 어려워지자 대안으로 눈을 돌린 곳이 랜덤채팅이다. 대부분 익명으로 운영돼 대리구매자가 밝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에서 진행한 청소년 건강행태온라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율은 2015년 담뱃값 인상을 기점으로 14%에서 9.6%로 대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적잖은 수치다. 2019년 기준, 중고생의 흡연율은 9.3%.

  A씨에 따르면, 전문적으로 구매대행을 자처하며 뚫배를 전업 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비행청소년들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수익을 얻는다. A씨만 해도 약 3개의 청소년 집단과 주기적으로 담배 대리구매 행위를 해왔다고 밝혔다. “저는 아이들 필요한 담배만 사주고 돈만 받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죄책감이 드는 일인가요.”

 

  #2. “돈 대신, 몸 한 번만 만져 봐도 돼요?”

 

  온라인 대리구매 성행 중  

  성매매 등 중범죄 유인도

  '범죄'라는 인식 낮아

돈 대신 성적인 제안을 하는 대리구매자 △△

 

  랜덤채팅을 통해 담배 대리판매자를 구하는 동안, 판매자의 절반 이상은 돈 대신 불건전한 만남, 신체접촉, 음란사진 등을 원했다. “돈 대신 여자 데려오세요.” “대신, 몸 한번만 만져 봐도 돼요?” “친누나 사진 찍어서 보내주면 해줄게등의 말을 들었다. 랜덤채팅 가입 시 여성으로 가입해 대리구매자를 구하는 경우, 30분 안에 대화를 요청하는 메시지가 10개 이상 왔다. 단도직입적으로 조건만남, 음란사진을 요구하는 이도 있었지만, 친절한 대화를 이어가던 도중 돈이 더 필요하지 않니등의 말을 꺼내며 조건만남을 이어가려는 수법도 있었다.

  실제로 남녀공학을 다녔던 B(·20) 씨는 여학생들과 함께 익명의 뚫배에게 담배를 구한 경험이 있다. 랜덤채팅을 통해 알게 된 대리구매자는 여학생들의 신체 사진을 요구했다. 여학생들은 이에 응해 무료로 술과 담배를 받았다고 한다. “얼굴 없이 사진을 찍어서 보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 큰 부담은 없었어요. 오히려 술이랑 담배를 싼값에 구했다고 좋아하는 여학생들도 있었어요.”

  단순 사진 공유에서 끝나기도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조건만남과 성매매 제안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올해 랜덤채팅 이용 목적을 조사한 결과, 68.8%가 성적 만남, 성적 대화 유도 등을 목적으로 제시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도, 성매매에 활용된 경로 중 6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랜덤채팅이었다.

  이에 담배 거래는 그저 여성 청소년을 성매매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에 따르면, 미성년자 대상 성매매 사건은 2014961건이었으나 이후 20181480건이 집계되는 등 큰 폭으로 증가했다. 담배 대리구매가 성매매, 조건만남 등과 같은 중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3. “채팅 통해 담배 사는 게 잘못인가요?”

  랜덤채팅을 통한 술·담배 거래가 만연해지는 상황에서, 일부 청소년들은 스스로 뚫배를 자처하기도 했다. 신분증 검사가 허술한 동네 마트를 통해 물건을 사고 또래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것이다. C(·21) 씨는 고등학생 시절, 담배 대리구매를 통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 “저도 청소년인데, 어른에 비해 비교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돈을 조금씩 버니까 술도 팔고 하면서 익명으로 많은 사람과 거래했어요.”

  담배 대리구매를 부탁하는 청소년들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시절 뚫배를 통해 담배를 구매했던 김모(·21) 씨는 랜덤채팅 통해 친해진 형이 산 담배를 제가 돈 주고 샀을 뿐이라며 주변에 흡연했던 애들은 대부분 이렇게 담배를 구했다고 말했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대리구매행위가 범죄인지조차 모르는 청소년도 있다. 청소년건강활동진흥재단 이복근 회장은 아이들이 범죄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라며 아이들이 자주 쓰는 SNS에 담배 거래행위 등이 명확한 범죄 사실이라고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TV 공익광고와 편의점 포스터 등의 광고로는 청소년에게 범죄 사실에 대한 인지능력을 심어주기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랜덤채팅의 특성상 해당 범죄를 근절하기엔 무리가 있다. 대부분의 랜덤채팅어플은 본인인증 없이도 사용이 가능하고, 신고 기능이 없는 경우도 많다. 여성가족부가 올해 조사한 399개의 채팅 어플 중 본인인증 절차가 없는 앱은 73.7%에 달하고, 성인인증 절차가 없는 것은 80%가 넘는다. 2015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 중고생 3659명 중 14%의 학생들이 랜덤채팅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청소년들이 익명성 뒤에 숨어 유해물품을 사고팔고 각종 범죄에 노출되기에는 너무나 쉬운 환경이다.

  “일반 시민이 직접 고등학생으로 가장해 함정수사처럼 하지 않는 이상은 잡아내기 쉽지 않아요.” 부산 YMCA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김신향 간사는 랜덤채팅 어플의 속성이 청소년 범죄의 양성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정해진 범죄 루트가 없기에 경찰이 불법 거래를 계속 잡아내기도 어렵다. 이복근 회장은 잡아낸 이후엔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경찰은 더 큰 범죄 사안을 처리하느라 이런 사건들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910, 랜덤채팅 어플은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됐다. 3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다음 달 11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실명인증, 대화 저장, 신고 기능을 갖춰야만 청소년들이 어플을 사용할 수 있다. 기능이 없을 경우, 해당 어플은 성인인증 절차를 두고 청소년의 접근을 막아야 한다. 청소년 유해표시 의무를 위반할 시 2년 이하의 징역,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범죄에 노출될 위험성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랜덤채팅이 아니더라도 카카오톡 오픈채팅, 인스타그램, 트위터를 통해서도 담배 거래와 성매매 시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랜덤채팅 어플에 대한 모니터링에도 한계가 있다. “랜덤채팅 앱을 만드는 회사가 상당히 많아요. 현실적으로 은밀하게 형성되는 수많은 커뮤니티를 엄격하게 제재할 수 있을까요?” 김신향 간사는 랜덤채팅 앱의 통제에 대해 비관 섞인 전망을 내비쳤다.

 

신용하 기자 dragon@

일러스트 장정윤 전문기자

인포그래픽임승하 기자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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