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야, 나의 낙타야 어서 온, 나를 태워다오.

-(중략)-

희망이 우리를 건너게 할 거야. 희망이.

 

나이 : 서른하나, 성별 : 여자, 직업 : 미상, 주소 : 미상인 한 사람1986619

(목요일) 21, 검은 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황지우,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중에서

 

  19866, 구반포 아파트 상가 앞에서 시는 발화한다. 화자는 31살 여성. 그녀는 이곳이 싫다. 살던 곳을 잊은 그녀에게 도시는 전갈좌의 독을 주었고, 그것은 그녀가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퇴근 시간의 인파는관을 타고 건너는 검은 강'으로, 상가에 있는 치킨은 양계장에서 사육되다 내장이 긁힌 닭으로 보인다. 무거운 밥그릇을 매달고 치킨을 뜯는 가족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혐오감이 그녀의 위를 또 쓰리게 한다.'

  그녀는 살기 위해 조금씩 죽어야 하는 것이 싫다. 의미를 잃은 말과 폭력과 외설이 전시되는 도시가 싫다. 진흙으로 빚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종점을 향해 ' ‘불구덩으로 들어가는' 게 보기 싫다. 식욕과 성욕에서 벗어나지 않는 도시, ‘치근덕거리며 따라오는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 조롱이라도 하는 듯 정류장 이정표도 무릉동 ’, ‘도화동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전갈좌의 독을 찾으러 간다. 깨어나면 고통이라는 생각으로 아파트 단지를 걸어간다. 기분 나쁘게 발소리가 따라온다. 뒤돌아보니 낙타가 서 있었다. 고삐가 없는 낙타는 도시의 풍경과 자신을 오버랩한다. 누구의 것도 아닌 듯한 모습이 치열한 아귀다툼에서 벗어난 듯했다. 그녀는 그리하여 전갈의 독 대신 낙타를 연구하다 문득 두려워한다. ‘임재할 뿐, 부재 한 상태인 그것에, 질량을 가진 그녀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낙타와 강으로 들어간다. 희망이 우리를 건너게 할것이란 말과 함께.

  그 후 2020.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서울은 여전히 부와 기회의 집결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각자 살아남기 위한 싸움은 계속되어왔다. 기술이 도시의 남근 같은 메커니즘을 바꾸지 않은 덕이다. 그렇게 지친 싸움에서, 우리도 전갈좌의 독을 투약받는다.

  그러나 낙타는 보이지 않는다. 이 시가 나온 시절에 낙타를 논한 이들이 속속들이 모순적인 행보와 함께 추락하였으니, 아마 낙타와 그의 이야기들도 덩달아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이제 우린 추해진 그들에게 조롱과 환멸을 아낌없이 퍼붓지만, 가끔 우리도 그들처럼 길잡이가 되어줄 낙타를 그리기도 한다.

  중학교 때 발에 챈 돌멩이처럼 읽던 시가 여기까지 이르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인은 날카롭게 도시를 해부하며 어디가 어떻게 병들었는지를 보여주고 해결책으로 탈출을 주장했다. 그것이 지금도 유효한 해결책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이 시를 어리석다 평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이 미완이 인지부조화인지 아둔함인지는 여러분에게 맡기는 수밖에.

 

정동균(정경대 통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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