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그리고 나누는 영화의‘유토피아’로
주민이 그리고 나누는 영화의‘유토피아’로
  • 이성혜 기자
  • 승인 2020.11.15 2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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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승(사학과 82학번) 영화감독 인터뷰

주민이 함께 만드는 영화

캐스팅이 아닌 ‘인연’

삶터의 마을영화 만들고파

 

신지승 감독은 영화 제작에 있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게 가장 올바르다"고 말했다.
신지승 감독은 영화 제작에 있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게 가장 올바르다"고 말했다.

  북한 내금강에서 24km 떨어진 최북단 마을. 인제군 서화리에는 영화제작소 ‘마을극장 DMZ’가 있다. 대형 영화관도, 주류 배급사도, 유명 배우도 없는 마을에서 주민들이 주인공이 돼 각본도, 연출도 직접 맡아 영화를 만든다. 완성된 영화는 따로 유통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든 주민들과 소수의 영화인들이 함께 보고, 축제를 열어 여흥을 나눈다.

  주조연이 가려지고, 관객 수에 존재 가치가 결정되는 일반 영화와는 개념부터 다르다. 대학 재학시절 ‘고대극회’에서 극예술에 발을 들이며 영화와의 인연을 시작한 신지승(사학과 82학번) 감독이 오랜 경험 끝에 정의 내린 영화의 유토피아다. 안암에서 출발해 인제까지 흐르고 있는 그의 영화인생에 대해 물었다.

- ‘마을영화’라는 형식을 처음 개척했다. 의미가 궁금하다

  “마을영화는 주민들이 작은 돌로 탑을 쌓듯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에 참여해 ‘돌탑 영화’라고도 불린다. 말 그대로 마을 주민들과 소수의 영화인들이 함께 만드는 영화다. 상업, 독립영화는 작가가 먼저 시나리오를 짜고, 그에 걸맞은 배우를 캐스팅한다. 일종의 ‘발췌’ 과정이다. 특정 인물을 그대로 작품에 반영하기보다는 취재한 인물을 추상화하고, 그에 걸 맞는 이미지의 사람을 ‘캐스팅’해 끼워 맞추는 것이다.

  내가 만드는 방식은 완전 거꾸로다. 먼저 마을을 이해하고, 사람을 알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만든다.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건 기준을 가진다는 느낌이 있어서 별로다. 선별되고 선택한다는 것에 거리를 둔다.”

  신지승 감독의 영화에서 실존 인물 A씨는 그대로 A씨로 상영된다. A씨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선 그 사람을 알아가야 한다. 캐스팅이 아닌 인연을 만나는 차원에 가깝다. “먼저 개인을 알아야 영화의 큰 틀을 만들 수 있기에 여러 이야기를 해보면서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을 한다. 아예 시나리오를 추가하지 않는 건 아니다. 실제와 가공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구성해 한 사람이 아닌 마을 사람들을 담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 전문 연기자가 아닌 출연자들의 연기를 어색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

  “간혹 연기를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그건 연기자만 연기를 해야 한다는 편견이라 생각한다. 연기자만큼은 아니지만, 이들은 일상적인 연기를 해낼 수 있다. 또, 영화에서는 분장이 필요하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할 필요가 없다. 타인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있는 그대로가 가장 올바르다고 본다.”

  모든 출연자가 본인을 그대로 표현하기에, 주·조연을 가릴 수 없다. 영화 출연진이 모두 주연인 이유다. “우리는 지금껏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창작방식을 즐겨왔던 거다. 우리가 소비하는 이야기들은 항상 주연과 조연을 구별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었다. 주인공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는 관객에게 빨리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라 본다. 마을 영화에는 어쩌면 주인공이 없다. 마을 자체가 주인공이고 참여하는 모두가 주인공이 돼야 한다. 주인공을 가려내고 꾸며내는 이야기는 나의 가치와 맞지 않다.”

- 마을영화를 제작하며 고수하는 철학이 있다면

  “팔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것, 보여주기 위해 한 사람을 영화의 소재로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원칙이다.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려다 보면 불가피하게 내용이 과장되고 왜곡된다. 안양의 소년원에 가서 6개월간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어느 학생과 얘기를 나눠보다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처음에 학생은 자기 얼굴을 드러내기 고민했는데, 외부에 보내는 영화가 아니며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영화라는 것을 알렸다. 우리는 이 자체로 그만이다. 영화에 삶이 반영되지만, 본인이 내어주지 않고 즐겁지 않아하면 반영하지 않는다. 영화를 찍는 게 행복해야한다. 우리를 돌아보고, 삶의 진리를 고민할 수 있는 영화면 된다. ‘우리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그 약속을 늘 지키고 있다.”

신 감독이 한강 영화제에서 시민과 함께 촬영에 임하고 있다
신 감독이 한강 영화제에서 시민과 함께 촬영에 임하고 있다

 

- 20여 년간 마을영화를 제작했는데 그동안 몇 개의 작품들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마을영화는 결과가 아닌 제작 과정에 가치가 있다. 주민들은 시나리오 작가로, 연기하는 배우로, 때로는 촬영 스태프가 돼 영화의 전반을 돕는다. 작품 하나당 한 달이 걸리기도 하고, 6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몇 년 후에 다시 이야기가 이어질 수도 있기에 ‘완성’이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다. 작품의 수를 세는 건 나에겐 의미가 없다. 그저 지난 20년 동안 전국 100여 군데 마을을 돌아다니며 프로젝트를 했다는 것만 중요할 뿐이다.

  영화 제작 후에는 마을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한다. 2016년도엔 서울 한강에서 영화 제작을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200여 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영화트럭에 스크린을 달아 다함께 야외시사회를 했던 기억이 난다. 마을영화에 젊은 시간을 보냈기에 나한테는 다 소중한 시간들이다. 잘 만들었다고 좋은 게 아니고, 남들이 좋아해준다고 좋은 게 아니었다. 그냥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럼 영화는 어디서 볼 수 있나

  “보고 싶으면 마을로 와라. 돈을 주고 내어주는 영화는 하지 않고 마을로 초대하겠다.”

  신지승 감독은 1999년 양평으로 귀촌한 이후, 지난 20년간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제작했다.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영화 트럭이 거처가 될 때도 있었다. 지금도 몰고 다니는 트럭에는 스크린 설치가 용이해 어디서든 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

  트럭에서 생활하던 도중 만난 인연도 있다. 속초의 한 주차장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던 이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다. 푸드트럭보다 더 큰 영화트럭이 본인 영역을 침범하는 줄 알고 언성을 높인 것이다.

  허나, 사정을 듣고선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커졌다. 그게 연민이 되고 인연이 된 그들은 친한 친구로 왕래를 이어나가고 있다.

  서화리 주민들은 동네에 불시착한 신지승 감독에게 특별히 돈을 받지 않고 마을극장 DMZ 건물을 내주기도 했다. 서화리 끝자락의 마을극장. 인연 따라 이어지는 마을 영화처럼, 그의 영화 인생도 인연을 타고 흐르고 흘러 서화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마을 극장 DMZ 앞 영화 트럭에 스크린을 펼친 모습이다.
마을 극장 DMZ 앞 영화 트럭에 스크린을 펼친 모습이다.

 

-마을극장 DMZ는 어떤 공간인가

  “문화를 즐기기 힘든 마을 주민들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문화를 생활 속에서 누리는 것이 올바른 건데 극장, 전시관, 미술관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돈과 시간을 써야했다. 대도시 외에는 극장을 찾기 어렵다. 도시와는 달리 시골 마을에는 영화관이 없다. 서화리 만해도 극장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 삶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으려면 극장이 마을 구석구석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달 말, 마을극장 DMZ에선 ‘국제마을영화제’가 열린다. 마을영화가 세계로 나가고, 마을극장이 마을마다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신 감독이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아시아, 아프리카 일대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고 한다. 휴전선 근처 마을에서 벌어지는 주민만 아는 영화제. 가고 싶다면 마을로 가라.

글 | 이성혜 기자 seaurchin@

사진 | 김민영 기자 dratini@

사진제공 | 신지승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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