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지만 직접 쌓아 올린 꿈의 도서관
삐뚤지만 직접 쌓아 올린 꿈의 도서관
  • 남민서 기자
  • 승인 2020.11.16 0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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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 스케치

  들쑥날쑥한 외형. 벽돌과 화강암이 불규칙하게 연결된 다각형 건물인 구산동도서관마을10여 년에 걸쳐 주민들이 사업 기획부터 예산 확보, 운영까지 전 과정에 참여해 만든 도서관이다. 2004, 제대로 된 공공도서관이 은평구립도서관 한 곳일 정도로 은평구의 도서관 사정은 열악했다. 이를 아쉽게 여긴 대조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뜻을 모아 동사무소 구석에 대조 꿈나무어린이도서관을 건립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 주민들은 마을에 제대로 된 도서관을 만들자며 서명운동을 벌여 11일 만에 2000개 이상의 서명을 모았다. 2008, 구산동에 있는 낡은 빌라와 주택 여덟 채를 구비로 매입해 건립을 준비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결실을 맺기 힘들었다. 건립이 실현된 건 2012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사업에 선정된 덕택이다. 건물을 짓는 전 과정은 은평구 내 5개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한 은평도서관마을협동조합이 주도했다.

  예산 지원을 받았지만,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기엔 역부족이었다. 주민들은 논의 끝에 리모델링을 결정했다. 마치 도서관을 위해 모인 것처럼 주민들이 각각의 건물을 모아서 도서관을 만들어보려고 한 것이다. 구입한 구옥 여덟 채 중 안전상 문제가 되는 다섯 채는 허물고, 세 채의 외관을 살린 도서관이 만들어졌다.

도서관 안에 오래된 주택의 외관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도서관 안에 오래된 주택의 외관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리모델링을 전반적으로 거쳤지만, 일부 공간에 남은 구옥의 흔적에서 옛 구산동 마을의 추억은 여실하다. 골목은 복도가 되고, 주차장은 미디어실, 거실은 토론의 공간이 됐다. 붉은 벽돌의 건물, 회색의 화강석들. 시대별로 유행을 탄 건축 자재의 향연이 벽면마다 자리한다.

  여러 건물을 연결한 형태라 도서관 구조가 복잡하긴 하다. 하지만, 주민들 손길이 모여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단점도 이 공간만의 특색이 된다. 윤지영(·31) 씨는 다른 도서관과 같이 네모나지 않고 울퉁불퉁, 꼬불꼬불한 게 이 도서관만의 매력인 것 같다고택을 연결해 만들었다는 특징이 우리 동네의 시그니쳐가 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붉은 벽돌을 뒤로하고 책을 읽던 김진화(·45) 씨는 예전 정취가 좋아 이곳에서의 독서를 즐긴다고 했다. 김진화 씨는 건물을 아예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데 들어가는 환경비용이 크기에, 건물을 재사용하는 예시는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건물 곳곳에는 주민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뒹굴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어린이자료실을 온돌 바닥으로 만들고,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강당(청소년 힐링캠프)에 입출식 계단 좌석을 설치했다. 마을에서 활동 중인 미디어팀들의 제안으로 녹음 스튜디오도 만들었다.

 

만화자료실에서 운영하는 '웹툰교실' 참가학생이 만든 만화책.
만화자료실에서 운영하는 '웹툰교실' 참가학생이 만든 만화책.

 

  그중 만화자료실은 말 그대로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공간이다. 설문조사 결과,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해서 만들어졌다. ‘만화의 숲이라고 불리는 이 자료실은 건물 2층에서 4층까지 걸쳐 있다.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만화자료는 9월 기준으로 7524. 2층은 어린이를 위한 만화, 3층은 만화 및 관련 이론서, 4층은 만화 및그래픽 노블로 구분돼 있다. 이곳을 찾은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취향에 맞는 만화책을 골라 읽을 수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직원도 대부분 동네 사람이다. 박현주 관장은 다른 공공도서관보다 굉장히 주민 친화적이라고 말했다. 새것처럼 휘황찬란하지도 않고, 다른 데와 비교해 현대화된 것도 아니지만, 결국 이 도서관은 사람 중심이라는 큰 강점이 있다.

  “생활SOC 사업의 핵심도 결국 사람 중심이잖아요.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여기서 어떻게 아이들과 어울리는가를 고민해야죠. 우리가 실패하는 건 항상 형식만 남을 때예요. 사업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돼야죠. 한정된 예산, 한정된 땅, 기존 주택의 활용처럼 제약이 많았지만, 주민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이렇게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남민서 기자 faith@

사진최낙준 기자 cho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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