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에는 CIA모스크바 수칙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 “한 번은 우연, 두 번은 우연의 일치, 세 번은 공작이다.” 1년 사이에 열린 세 번의 총학선거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총학생회를 출범시키지 못한 광경을 지켜보며 이 구절이 떠올랐다. 잇따른 무산에 음모론을 제기하려는 건 아니지만,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여파가 너무 커서다.

○…차라리 공작의 결과였으면 하는 되바라진 생각도 든다. 그러면 최소한 학생사회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결과는 아니니 말이다. 다시금 고색창연한 표현을 되뇌게 된다. 총학의 위기. 학보사의 위기와 쌍벽을 이루는, 고착화되고 만성화된 위기다. 밀턴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실제이든 아니면 인식이든 간에, 오직 위기만이 진짜 변화를 만들어낸다. 위기가 발생하면 이제껏 밀려났던 사상에 근거한 조치가 취해진다. 또한, 과거엔 정치적으로 불가능했던 일들이 오히려 불가피해진다고 했지만, 총학을 둘러싼 진정한 변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이건 그냥 상상이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20XX년 제52대 고려대 총학생회장단 38차 재선거가 무산됐다. 오랜만에 출마 선본이 나왔지만, 성립 요건인 정회원 3분의 1 이상의 투표를 끝내 충족하지 못해 비대위 체제가 연장됐다...’

조민호 취재부장 do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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