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열두 달 안에 ‘발생’할 수는 없는 것처럼, 열두 시간 만에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랑임을 숱한 연애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렇게 ‘발견’된 사랑을 우리는 ‘발명’한다.
<블랙미러> 시리즈 중 ‘시스템의 연인(Hang The DJ)’은 ‘발명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어두운 다른 에피소드들과는 달리 ‘환상적인 사랑’을 속삭이고 있어서일까. IMDB 평점이 시리즈 중 두 번째로 높다고 한다. 나도 그들처럼 프랭크와 에이미를 부러워했다. 언젠가 운명처럼 나타난 짝과 저 벽을 넘어, 우리를 기만하는 ‘DJ의 목을 매달아’버리겠다고 다짐하며 한동안 스미스를 듣고 다녔더랬다. 그리고 사랑이 일탈로 ‘발명’될 수 있는 것처럼, 일탈만으로는 ‘재발명’될 수 없는 것이 사랑임을 숱한 연애 경험을 통해 배우고 또 절망했더랬다.
가까운 미래, ‘그 시대의 사랑’은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 데이터에 기반한 시스템의 코치 디바이스가 만남을 주선하고 이별을 결정한다. 만남과 이별의 반복을 통해 쌓인 데이터로 ‘최적의 애인’을 찾아주는 것이 시스템의 목적이고, 시스템은 ‘이쪽’과 ‘저쪽(황무지)’을 분할하는 ‘벽’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인위적인 사랑의 실험실 한복판에 남자(프랭크)와 여자(에이미)가 등장한다. 그리고 물수제비가 언제나 ‘네 번’으로만 튀는 시스템의 세계에서, 프랭크와 에이미는 총 ‘네 번’ 만난다. 우리는 그 ‘네 번’을 ‘발생’, ‘발견’, ‘발명’ 그리고 ‘재발명’의 과정으로도 요약될 수 있을 ‘사랑의 현상학’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와 둘. 사랑이 ‘발생’했다. 이들은 어떻게 그 사랑을 ‘발견’할 것인가. 처음 프랭크와 에이미가 부여받은 유효기간은 ‘열두 시간’이었다. 알았건 몰랐건, 사랑은 열두 시간 만에 발생했다. 이들은 시스템에 의해 더 긴 유효기간 동안 다른 이들을 만나면서, 점차 그때 ‘사랑이 발생했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 발견, 어딘가 씁쓸하다. 다른 이와의 비교로 얻은 발견은 얼마나 소모적인가. 요컨대 프랭크와 에이미는 각각 열두 달, 아홉 달의 밤마다 원나잇을 한 셈이다. ‘탕진’만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에게 열두 달은 (다른 의미로는) ‘공허한 축제의 기간’이었다.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아침, 다시 만난 그들이 이제는 사랑을 발명할 차례다.
셋과 넷. 그 발견된 사랑은 어떻게 ‘발명’될 것인가. 그리고 이들은 또 어떻게 그 사랑을 ‘재발명’하며 이어나갈 것인가. 가까스로 만난 그들이 처음 유효기간을 확인하지 말자고 한 약속은 일종의 ‘금기의 형성’이자, 첫 반항이었다. 금기가 형성되었으니 다음은 어리석은 이가 등장할 차례다. 둘 사이의 유효기간은 프랭크가 금기를 깸으로써 급격하게 줄어든다. 겨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또 헤어지라니. 프랭크와 에이미는 ‘담’을 넘어 ‘저쪽(황무지)’으로 향함으로써 시스템에 반항한다. 요컨대 그들은 반항하며 사랑을 ‘발명’한 것이다. 그러나 일탈 속에서 둘은 와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답게 깔린 운명의 포석을 차근차근 밟는 것만 같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정말로 이곳은 ‘사랑의 실험실’이었다는 것. 1000번의 시뮬레이션 동안 998번의 반항이 기록되었다고 하며, 화면은 클럽에서 프랭크를 기다리는 에이미의 스마트폰 화면으로 전환된다. 시스템의 바깥, 현실에서 그들은 네 번째로 만난다. 현실은 시스템에서와 달리 일탈만으로는 사랑이 재발명될 수 없는 곳이다. 99.8의 확률로 그들은 최적의 연인이라 시스템은 말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정말 불가피하다면 100의 확률로 와해 될 것이다. 완전히 망가진 폐허 위에서 그들은 사랑을 ‘재발명’ 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 대해 영화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마지막에 코치가 ‘네 번’ 물수제비를 튀고 가라앉으며 랭보의 전언을 읊었을 것만 같다. 하나, 둘, 셋, 넷,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임도윤(문과대 국문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