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은 나만 보면 대일밴드를 찾았다. 넌 어쩜 우리 아들하고 똑같니. 뜯을 때 살점을 같이 건드려 내 손톱 주변엔 자주 피가 고였다. 시험 때가 다가오면 더 심해지는 상처. “, 손 좀 똑바로 펴봐라는 말이 공부하기 힘들지?”처럼 다정하게 들렸더랬다.

  밴드 열 개가 내 열 손가락에 돌돌 감기는 동안 성하지 않은 손톱을 보며 괴로워하는 건 선생님 쪽이었고 그럴 때마다 난 멍청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시라는 뜻이었나 보다. 그 진귀한 광경을 매일같이 보는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도 지나가면서 똑같은 잔소리를 참 다채롭게 하셨었다.

  -놔둬요 쌤, 대학 가면 다 고치겠지.

  졸업하고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손톱이 남아나질 않는다. 아직도 뭐가 그리 불안하고 어려운지. 네일아트는 아직도 꿈도 못 꿔요, 난 연신 맥주만 들이키며 말했다. 손톱으로 손톱을 뜯을 때처럼 불안은 똑똑 소리를 낸다.

  -빨래 같은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친구의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세탁기에 들어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축 늘어진 채 나오면 물기 따윈 툭툭 털어버리고 사는 빨래 더미처럼 사는 것 같다고. 그렇게 바쁘게 살아도 앞이 막막해 죽겠다고. 뭐라도 대꾸하고 싶었지만 나는 생각이야기가 되기 전에 삼키고 또 삼키고, 결국엔 손톱만 뜯었던 것이다.

 

  세상은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는 흰 그림!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표백> 본문 중에서

 

  너무 완벽해 각박하고 외로운 현재를 살아가며, 내 손톱처럼 당신의 어딘가도 휑하지는 않은지 살폈으면 좋겠다. 가끔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 시도 있지 않나. 당신이 마음의 상처를 방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산다는 것은 얼마 안 되는 행복으로 대부분의 슬픔을 버텨내는 것 아닌가. 어둠 속에 빛이 되어 머무르는 추억처럼 반짝이는 것들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다.

  가끔 빗속에 뛰어드는 것만큼 대책 없는 행동에 낭만이 있듯이,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나의 마음속을 그저 걸어가는 일도 꽤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노트북을 두들기는 손톱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쓴다.

이다연 기자 idaye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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