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 넘어 집에 오면서 줄줄이 불이 꺼진 가게들을 지나다 보면 괜히 우울하고 막막한 마음이 든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사라진 기분이다.

  그렇게 집에 와서 하릴없이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한다. 중학교 때부터 20년 넘게 했는데, 그때도 지금도 판판이 진다. ‘오늘은 진짜 제대로 한다하고서 세 판쯤 연달아 지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만화처럼 머리에서 연기가 나는 느낌이다.

  해열제를 찾아 헤매다가 찾은 게 유튜브 방송이다. 유튜브에서 전직 프로게이머가 직접 게임을 하는 방송을 수능 EBS 강좌 마냥 뚫어져라 본다. 프로게이머가 현란한 컨트롤로 상대를 가지고 노는걸 보면 마치 내가 잘해서 이기는 것 같은 착각 속 쾌감이 느껴진다. 그 느낌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시 수차례 배틀 넷에 접속하기도 했다. 이젠 그냥 느낌만 간직하기로 한다.

  저 프로게이머는 어쩜 저렇게 잘할까, 프로게이머니까 잘하겠지.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상대를 조롱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품격까지 갖췄다. 늘 부럽던 중에, 한 시청자가 프로게이머에게 게임 지금까지 얼마나 했어요물었다. 그는 프로게이머 생활 10년 동안 하루 평균 40판씩, 중간에 여차여차 슬럼프 빼도 최소 10만 판은 했다고 답 했다. 게임 한 판에 아주 짧게 평균 11분으로 잡아도 40판이면 하루 7시간이 넘는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대안을 찾는 건 이미 수백번 수천번 비슷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얘길 듣고부터는 그를 부러워하기 보다 그의 끈기와 꾸준함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는 현역 프로게이머로 활동한 10년의 거의 모든 시간 동안 선수로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 마지막에 우승을 한번 하기는 했지만 이미 그때 스타크래프트 인기는 정말 작아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꾸준함은 유튜브 수천 수만 명 시청자로 돌아왔다.

  코로나로 우울한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10만 판을 달성하는 순간이 오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꾸준히 할 수 있는 새로운 걸 찾아봤다. 거창한 건 안 하기로 했다. 지난주부터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파트 1층에 내려가 22층까지 올라가본다. 동네 단골 식당에도 2주에 한 번씩 금요일마다 가기로 했다. 한 달 에 한 번쯤 참지 말고 회사 선배든 후배든 싫은 소리를 해보기로 했다.

<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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