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이름으로 여러 겹의 세상을 살아가는 시대다. 누군가의 아들딸, 친구, 선배 혹은 동료로 살아가는 모든 개인은 각자의 방식대로 입체적이다. 이를 증명하듯 현대사회는 ‘멀티 페르소나’, ‘N잡’, ‘사이드 프로젝트’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칭하는 용어들로 넘쳐난다. 여기 ‘슬기로운 부캐생활’로 다채로운 생각을 일구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끔 나가는 축구 동호회에서 가볍게 취미 생활을 즐긴 ‘나’, 혹은 휴일 이른 아침에 재료를 사 즐겁게 요리를 한 ‘나’를 부캐라는 이름으로 정의할 순 없는 노릇이다. 부캐를 가진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자신을 넘어 주변 환경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딴짓’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새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부캐는 생활의 코어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마음의 근력이다. 기분 좋은 떨림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하고도 특별한 부캐 소유자 4인을 만나봤다.

 

 

제2의 자아로 통하는 ‘부캐’

직업에 대한 인식변화 반영해

정체성의 성장과 변화 이끌기도

 

 

애정과 열정으로, 음악이라는 열매를  -  합창단장 이준용

 

 평범한 직장인 이준용(남·50) 씨는 ‘부장님’보다 ‘단장님’ 소리가 좋다. “노래를 오래 했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교회에서 성가대를, 대학 다니면서 통기타 동아리, 결혼하고 아이 낳고 잠깐 쉬다가 30대 초반부터다시 합창단을 나가기 시작했고, 아카펠라동아리 활동도 병행했죠.”

 오랜 시간 노래했는데도 원하는 음악을 하는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현생에 치여 10년이 훌쩍 흐른 뒤에야, 더는 기다리면 안 되겠다 싶어 생각을 곧장 실행으로 옮겼다. “그냥 내가 직접 만드는 편이 빠를것 같아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아주 이색적인 합창단 하나가 이준용 씨에 의해 탄생했다. <이지콰이어>는 클래식한 가곡보다는 팝, 재즈, 가요 등 대중음악을 주로 노래한다. 평소 자주 듣는 곡들을 공연하니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만의 장점이다.

 "10년을 고민하며 찾아왔으니 오죽하겠습니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발효된 그의 열정에는 싱싱한 설렘과 깊은 철학이 함께 담겨있다. 좋아하는 일만큼 가슴 뛰는 것은 없다. 이준용 씨에게 음악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듯, 단장이라는 직함 역시 가볍지 않다.

 “제가 올해 나이가 딱 50이 됐어요. 지금까지는 누군가의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직원으로 살아왔다면 남은 삶은 제가 하고 싶은 합창을 마음껏 하면서 살더라도 누구도 뭐라하지 못할 거 같더라고요. 그렇다고 그동안 해왔던 다른 역할을 모두 놓겠다는 건 아닙니다. 본캐에서 느끼는 부담감을 조금은 덜어내고 부캐에 집중해도 될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열중할 것이 생기니 하루하루 사는 게 즐겁다는 그의 상기된 말투에 열정과 설렘이 가득하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

 “각자 개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건 어느 세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거 같아요.”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이준용 씨는 이질문의 빈칸을 채워 줄 무언가를 음악에서 찾았다.

 부캐를 가지는 일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중 일부이듯, 그에게 있어 직장으로 대변되는 본캐의 삶은 오늘처럼 내일을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솔직히 생업에서 보람을 찾는다는 건 비현실적인 것 같아요. 일은 일대로 하고, 하고 싶은 건 부캐에서 찾는 게 맞을 것 같구요.”

 ‘워라밸’이라는 말이 주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균형 잡힌 생활은 언제나 건강한 마음을 향한 첫걸음이다. “누군가의 부모, 회사의 직원으로서 맡은 일은 성실히 하면서 그 외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부캐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게 균형 있는 삶 아닐까요?”

 

음주공간을 넘어 인생을 ‘기획’하다  - 음주문화공간 기획자 원부연

사진제공|헤이뉴스
사진제공|헤이뉴스

 

 “술집? 갑자기 왜?” 잘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술집을 차리겠다는 ‘폭탄발언’을 듣는다면 의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당시 원부연(여·38) 씨의 선언은 ‘인생 한 방’식 충동이나 로망이 아니었다. 길고 긴 자문자답과 고민의 결과물이다. “광고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3년차부터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떠올랐던 단어들이 술, 사람, 공간, 기획, 콘텐츠 같은 것들이었죠.”

 시작은 ‘사이드잡’이었다. 그는 신촌의 단골 술집이었던 ‘아름다운 시절’을 인수한 후, 4개월 동안 직장생활과 술집 운영을 병행했다. “매출 등 성적표를 본 후 괜찮은 결과가 나오면 퇴사하기로 했죠.”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자, 원부연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자신만의 개성이 가득한 공간을 만들자는 결심으로 세상에 내보인 것이 상암동의 ‘원부술집’이다. 이후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바탕으로 캐주얼 위스키바 ‘모어댄위스키’, 감성공간 ‘하루키술집’, 신촌 유일의 소극장 ‘신촌극장’, 문화와 사람이 모이는 ‘신촌살롱’ 등 9개의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그러다보니 커리어를 고민하는 분들을 위한 수업, 강의도 맡게 됐어요. 객원 기자로서 반 년간 커리어에 대한 연재 기사를 쓰기도 했고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원부연 씨의 본캐와 부캐를 아우르는 정체성은 ‘기획자’다. 음주공간이든 인생이든, 결국 그가 만들고 싶은 다양한 형태로 기획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코로나로 인해 여러 점포들을 닫았지만 책 출판과 강연 준비로 여전히 활기찬 그다.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껏 해왔던 공간 안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표현할지 깊이 고민 중인 원부연 씨는 어제처럼 바쁠 오늘을 힘차게 열어 제낀다.

 

부캐, 내 브랜드 위한 ‘오답노트’

 “제가 퇴사했던 2013년에는 부캐, 사이드잡이라는 단어가 없었어요. 보통 투잡이란 표현을 쓰며 비밀스럽게 무언가를 준비했죠.” 지금은 다르다. 누구든 자유롭게 ‘사이드잡’, ‘사이드프로젝트’, ‘부캐’라는 표현을 쓰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청춘에게 자신이 정말하고 싶은 일을 고민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라는 ‘의식교육’을 받잖아요.” 남 부럽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는 몇몇 청춘들 역시, 과거 원부연 씨처럼‘내가 가슴 뛰게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

 그에게 부캐란 ‘나’라는 브랜드를 완성하기 위한 ‘오답노트’다. “나만의 정답을 찾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아요. 수많은 시행착오의 언덕을 넘어야 하잖아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러나 실수와 실패가 곧 불가능을 뜻하지는 않는다. 작지만 확실한 하나하나의 성취를 통해,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정답에 가까워질 것이다. 몇 번이고 틀린 문제를 끝내 맞추기 위한 치열한 고민은 필수다.

 

아이들의 맥가이버, “저는 토이닥터입니다” - 장난감 수리센터 운영자 유원일

 

 행정업무 자료들로 가득한 교회 사무실의 책상.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책상은 곧 장난감을 고치는 수술대로 변신한다. “어린 아이들에게 정든 장난감을 잃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으니까요.” 한 손에는 팔이 빠진 동물 인형, 다른 한 손에는 엄마 손을 꼭 잡은 사뭇 진지한 표정의 아이는 오늘도 ‘토이닥터’의 방문을 두드린다.

 유원일(남·53) 씨는 판교에 위치한 ‘불꽃교회’에서 행정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본업을 하는 가운데 시간 날 때마다 장난감을 무료로 고쳐준다. 그가 교회 사무실을 빌려 ‘불꽃장난감척척수리센터’를 운영한 지 2년 정도가 흘렀다. 장난감 수리센터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알고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유원일 씨는 말한다. “국내에 장난감수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별로 없어서, ‘나도 지역사회에 봉사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네요.” 작은 선의로 시작된 부캐는 어느새 그의 인생에서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역할이 됐다.

 ‘박사님 도와주세요!’ 아이들의 순수한 걱정 하나하나가 유원일 씨에겐 소중하다. 박사님을 만난 후 ‘장난감 고쳐주는 사람’으로 꿈이 바뀌었다는 초등학생의 말을 그는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 가끔 편지글이나 감사의 문자를 받으면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유원일 씨의 말 속에는 뿌듯함이 묻어있다. “오지랖이 많아 때론 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해결됐을 때의 기쁨이 워낙 달콤하다고 할까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을 느껴요.”

 

부캐는 정답이 아닌 취향 아닐까요?

 쳇바퀴같은 삶에 활기를 불어다 줄 것만 같은 부캐지만, 본업 이외의 일을 시도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론가 내몰린 듯한 느낌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유원일 씨는 전하고픈 말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캐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본업 이외의 좋아하는 일을 애써 찾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부캐의 확립에 모두가 몰두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캐는 취향이다. 그저 하나의 선택사항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중요한 건, 부캐든 주캐든 본인이 그 일에 대해 열심히 도전하고 성실히 수행하는 거죠. 그럴 때 정말 자신의 인생 캐릭터가 완성되지 않을까 싶어요.

 

“좋아하는 걸 그려요” 그림으로 하루를 완성하다 - 대학생 일러스트레이터 조재연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일기를 썼으니, 거의 인생 전반을 일기장에 기록해 놓은 수준이죠.” 조재연(이화여대 문헌정보학19) 씨는 ‘재연일기’라는 이름의 그림일기를 SNS에 연재 중인 일러스트레이터다. 그가 좋아하는 패션부터 힙합까지, 아기자기하면서도 대담한 취향들이 그의 일기장에 빼곡하다. 그날 머릿속을 지배했던 생각들을 그림으로 그리면 비로소 조재연 씨의 하루는 마무리된다.

 대입 재수를 하는 동안, 스터디 플래너 한 켠에 매일 짤막하게 그린 ‘재수생의 데일리룩’이 ‘재연일기’의 시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는 재수생의 일상에서는 일기의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면 꼭 매일 다른 하루와 데일리룩들을 그림일기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두 번째 수능이 끝난 바로 다음 날부터 조재연 씨는 곧바로 그림일기 계정을 만들어 꾸준히 작업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봐주는 사람 없던 시절에도, 조재연씨는 그저 그리는 일이 즐거웠다.

 “시험기간에는 거의 매일 밤새고 아침 해를 봤어요.” 대학생이라는 본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부캐의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힘든 순간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은 바로 그림에 대한 애정이며, 그림을 그리면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다. “외주를 하다 보니 출판사와 영화사관계자도 만나보고, 청와대에도 가봤어요. 제 그림을 보고 제가 활동하는 동아리에 들어오셨단 분도 계시고요. 이런 귀중한 인연들을 만날 때마다 참 감사해요.”

 조재연 씨에게 일기는 다정하다. 때로는 발칙하고 자주 사랑스럽다. 목적지에 ‘과거’가 적힌 여행의 공짜 표이기도 하지만, 이는 두툼한 일기장의 주인공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다. 그 행운의 여운을 느끼며, 오늘도 조재연 씨는 아이패드를 들고 책상 앞에 자리한다.

 

부캐는 ‘나다움’을 드러내는 수단

 “모든 개인은 다양한 지위를 가지고 상황과 상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부캐’는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잖아요. 어쩌면 그 부캐의 모습이 ‘나’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조재연 씨가 이야기하는 부캐의 매력이다. 부캐소유자들은 그 캐릭터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있는 힘껏 표현할 수 있다. 남들의 시선은 중요치 않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가장 나다운 것이며, ‘나다움’이 곧 ‘개성’이다. 부캐는 자기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재연일기’를 통해 조재연 씨는 조금씩 성장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부족했던 예전의 일기마저도 조재연 씨에게는 소중하다. “원래는 제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마냥 귀엽고 예쁜 캐릭터로 저를 그렸다면, 이젠 제 그림체에도 개성이 생겨서 점점 캐릭터가 변하는 게 신기해요.” 생각의 변화와 성숙의 과정까지 그대로 녹아있는 ‘재연일기’는 조재연 씨의 소중한 ‘성장일기’이자, 앞으로의 성장을 위한 값진 보물이다.

 

글 | 이다연 기자 idaye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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