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관리, ‘비용’ 아닌 ‘의무’로 인식해야
안전 관리, ‘비용’ 아닌 ‘의무’로 인식해야
  • 진서연 기자
  • 승인 2021.01.24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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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와의 티타임(46) 최정학(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재계·노동계 대립 팽팽해

사업장 적용 범위 좁혀져

공포일로부터 1년 후 시행

최정학 교수는
최정학 교수는 "중대재해법 제정이 반복되는 산업 및 시민 재해를 예방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중대재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한민국의 산재사망률은 OECD 국가 중 1위로, 2019년 한해에만 2020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현대중공업 아르곤 가스 질식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압사사고와 같은 산업재해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시민재해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노동자와 시민을 중대재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다섯 번의 법안 발의와 한 번의 국회 국민동의청원 끝에, 중대재해법은 공포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을 두고 재계는 ‘과잉 입법’, 노동계는 ‘반쪽 입법’이라고 주장하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1년 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중대재해법은 반복되는 중대재해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을까. 최정학(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를 만나 ‘중대재해법’의 취지와 실효성, 그리고 법안을 둘러싼 각종 논쟁에 대해 물었다.

 

- 중대재해법 제정 배경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산업안전보건법 또는 형법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통해 처벌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책임을 아래로 위임하는 구조를 이루는 기업의 특성상, 최종 결정권자인 경영책임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을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또,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영책임자 처벌 조항을 따로 만들고, 처벌 형량을 엄중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진 거죠. 기업과 경영책임자에게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를 명확하게 부과하고, 재해발생 시 그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2장 제167조에는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벌칙이 명시돼있다. 하지만 안전관리의 주체인 법인과 결정권자인 경영책임자보다는 중간관리자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해왔다. 기업과 경영책임자를 정의하는 규정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새 법률을 제정해야 했던 이유는

  “산업안전보건법은 한계가 있어요.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한 기업 처벌은 대부분 벌금형으로 이뤄집니다. 처벌 정도가 약하다는 여론을 받아들여 작년 개정을 통해 벌금액을 올렸지만, 이후에도 지적은 계속됐습니다. 기업을 처벌하는 데 있어 벌금은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이들이 내는 벌금은 실질적으로 주주, 채권자, 이해관계자, 더 나아가 소비자들의 돈입니다. 단순하게 보면, 기업들은 벌금이라는 지출을 마련하려면 제품 가격을 올리면 될 뿐이에요. 결국 기업에게 부과한 벌금을 우리 사회가 부담하게 되는 겁니다.

  법인 처벌 외에도, 기업의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벌을 독립적으로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요지였습니다. 사업주 혹은 경영자를 처벌하는 것은 매우 직접적이고 강력한 형벌입니다. 피의자 지위로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게 충격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법률로써 명시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재개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별도의 법을 제정하는 것입니다. 국회는 효과가 훨씬 뚜렷한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재해와 관련된 모든 법을 개정하는 것보다 하나의 법을 만드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또한 관련 법률마다 세부 조항으로 안전 및 보건 조치 의무와 기업과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량을 일일이 기재하는 것보다 새로운 법으로 통틀어 규정하는 것이 더 강력합니다.”

 

- 산업재해 예방에 효과적일까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중간, 말단 직원은 ‘교체 가능한 사람’일 뿐입니다. 이들이 처벌받는 건 기업 측에서 그렇게 큰 손해가 아니에요. 교체할 수 없는 경영자를 처벌 대상으로 정하면, 경영자는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가지 않고 법을 지키려고 노력할 겁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중대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전보다 안전사고 예방에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작년 6월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은 경영책임자를 ‘법인의 대표이사 및 이사’ 또는 ‘법인의 대표이사나 이사가 아닌 자로서, 해당 법인의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로 정의했다. 하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은 이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명시하는 등, 적지 않은 부분이 수정 또는 삭제됐다. 공무원과 건설공사 발주처, 5인 미만 사업장, 상시근로자 10인 미만의 소상공인, 바닥 면적이 1000㎡ 미만인 다중이용업소 등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노동계는 “사업장을 감독하고 인허가를 결재하는 권한이 있는 공무원과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재해의 주요 원인인 발주처가 처벌 대상에서 삭제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이 50억 원 미만인 건설업 사업장은 법안 공포 후 3년의 유예기간을 갖게 됐다.

 

- 노동계는 후퇴한 법안이라며 반발하는데

  “기업과 경영자에게 안전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지키지 않은 기업과 경영자를 처벌하는 핵심 내용은 통과된 법안에도 모두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처벌 정도를 강화하기 위한 부분들은 많이 제외됐습니다. 예컨대, 공무원과 건설공사의 발주처가 모두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고 사업장의 범위가 최초의 발의안에 비해 좁혀진 건 적용 정도가 완화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죠. 법은 받아들여졌지만, 구체적인 협상 과정에서 노동계가 기업과의 힘 싸움에서 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경영책임자를 정의하는 조항은 기업 쪽에서 원하는 표현과 가깝게 기재됐어요.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는 것이 법의 본래 취지에 어긋난 큰 한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법이 기업의 요구에 의해서 부드러운 방식으로 적용될 것인지, 아니면 노동계의 영향을 받아 엄격하게 적용될 것인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합니다.”

 

- 아웃소싱의 우려가 있다

  “안전 의무를 지키는 것에 비용이 들고 처벌이 두렵기 때문에 기업이 일종의 편법을 쓸 것이라는 뜻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적 평가가 중요합니다. 특정 기업이 안전 규정이 부실한 국가로 진출해 산업재해를 일으킨다면, 분명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오갈 것이고 해당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정적으로 바뀌겠죠.

  안전 의무를 지키지 않는 기업에게는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어려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운영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해요. 기업은 안전 의무를 법적 의무로 인식해야 하는 거죠. 일하는 사람의 안전을 보호하지 않으면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도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면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다른 나라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경영자를 처벌합니다. 우리나라처럼 경영자 책임을 별도 법률로 규정한 사례는 많지 않아요. 있다고 하더라도 형량이 높지 않은 편입니다. 예외적으로 호주는 처벌을 엄격하게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할 시 경영자에게 징역 25년까지 선고할 수 있어요. 또 뉴질랜드와 영국도 경영자에게 엄격한 책임을 묻는 편입니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는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나라의 중대재해법은 적어도 형식적으로 1년 이상의 징역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형벌이 강한 편에 속합니다.”

 

- 산업재해 예방하는 다른 방안이 있다면

  “중대재해법은 ‘처벌’을 강화한 법안입니다.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측면에서 역할을 해줄 보완책이 필요해요. 대표적으로 근로감독관 제도가 있습니다. 근로감독관들은 산재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노동법위반사업장을 적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들의 수를 늘리고, 전문성 또한 향상시켜야합니다. 근로감독관을 통해 기업이 안전 의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고, 사고 발생 시 어떤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전문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중대재해법이 어떻게 적용될지 지켜봐야 합니다. 노동계는 제정된 법안에 ‘5인 미만 사업장’이 처벌 대상에서 삭제된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이 감소하지 않으면 법안을 다시 개정해야겠죠. 법원이 국회의 입법의도를 충분히 고려해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할지 계속해서 지켜봐야 합니다.”

 

  최정학 교수는 이번 중대재해법 제정이 기업과 경영자가 노동자의 안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정학 교수는 “지금까지 기업은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비용 대비 손해가 적지 않아 안전 의무에 소홀했다”며 “안전에 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로, 안전 문제를 비용 문제로 바라보는 기업의 인식을 바꾸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글 │ 진서연 기자 standup@

사진 │ 박소정 기자 chocopie@

그래픽 │ 정채린 기자 ch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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