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을 앞둔 김영욱(이과대 수학과)교수의 연구실 책장에는 손때 묻은 고서들이 빼곡히 자리했다. “기자 학생은 어느 과 몇 학년이에요?” 건네는 첫마디에 학생에 대한 관심 어린 애정이 묻어났다. 1986년 본교에 부임해 교수 생활을 한 지 어느덧 36년. 퇴임 소감을 묻자 김영욱 교수는 “아직 실감이 잘 안 난다”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계획에 얽매일 필요 없어

  김영욱 교수는 전공 분야를 찾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서울대 수학과 졸업 후 위상수학을 공부하러 떠난 미국 유학길에서는 도리어 해석학에 재미를 느꼈다. 막상 해석학을 공부하면서는 기하학의 중요성을 절감했고, 결국 기하학을 전공으로 삼았다. 여러 차례 공부의 방향을 변경했던 그는 “어차피 계획대로 되는 일은 많이 없고, 우연한 기회가 예기치 못한 성공으로 돌아올 때도 있으니 노선을 바꾸는 것을 겁내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조언했다.

  2013년부터 한국수학사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국내 수학사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김 교수지만, 수학사 연구 역시 우연히 시작했다. “2002년 즈음 은사님을 오랜만에 뵀는데 수학사를 공부하고 계셨어요. 저에게도 권유하시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죠.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공부하다 보니 우리나라 수학 발전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천 년 전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라

  김영욱 교수의 수학사 수업은 고대 동양산학서를 학생들이 직접 읽고 연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학은 유독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배우는 학생도 어렵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어렵죠.” 효과적인 수업방식을 고민하던 김 교수는 ‘천 년 전 사람들’에게서 해법을 찾았다. 수학을 잘 몰라도, 천 년 전 사람들의 풀이를 읽고 생각을 따라가는 건 쉽다. “수학은 제한된 지식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학문인데, 혼자서 이 과정을 깨우치기는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옛날 사람들의 풀이를 따라가는 연습이 필요하죠. 쉬우면서도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에요.” 수학적 사고력 함양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자발적 탐구가 필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교육철학이다.

 

급변하는 사회, 위기는 곧 기회

  “전 세계적으로 대학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순간이에요.” 김영욱 교수는 본교가 사회의 변천에 발맞춰 나아가는 대학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교수들 힘만으로는 더이상 변화를 좇기 어려워요. 학교 전체가 새로운 문제를 찾고 연구하는 움직임을 보여야 합니다.”

  새로운 꿈을 펼쳐나갈 졸업생들에게도 당부를 건넸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그 속에 기회도 많아요. 갈피가 안 잡힌다면, 인류 역사를 보면서 변혁기에 어떤 문제를 염두에 두며 살아가야 할지 참고하세요. 지금은 시류를 잘 읽고 돌파구를 모색하면 훨씬 앞서나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김영욱 교수는 그간 진행해왔던 수학사 연구를 정리하며 관련 저서를 집필하고 있다. 퇴임 후에도 본교 핵심교양 강의 ‘우리 수학사와 현대수학’은 당분간 진행한다. 36년을 학자로 살아왔는데도, 배움을 향한 그의 열정은 끝이 없다. “3년 전부터 수학과 교수님들과 AI 공부를 하고 있어요. 쉽지도 않고 골치 아플 때도 많지만, 하면 할수록 재밌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배워나갈 예정입니다.”

 

글 │ 박다원 기자 wondaful@

사진제공 │ 김영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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