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년간 영어연극 동아리에 몸담았다. 내 삶의 궤적 중 꽤 독특한 이력이다. 화려한 의상과 분장만을 떠올리고 무작정 입부한 신입생에게 무대 밑 현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발성 연습을 위해 점심과 저녁 시간을 꼬박 반납했고, 방학에는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이른바 ‘10 to 10’ 연습을 강행했다. 일 년을 준비한 공연의 커튼콜이 끝나고서야 깨달았다. 어쩌면 인생이란 무엇 하나를 공들여 완성해나가는 것의 연속이 아닐까.

  가장 애착을 가졌던 무대는 2학년 여름에 공연한 <별주부전>이다. 한국의 전래동화를 영어로 패러디하는 것도 파격이었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서 대본을 바꿨다. 기존 동화 내용이 토끼를 영악하게만, 자라를 성실하고 충성심 깊게만표현했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다. 선악을 바꾼 것은 아니다. 각색한 대본에서는 그 누구도 온전하게 선하지 않다. 각자의 비도덕적 행동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고, 극은 그것을 정당화 하지도 않는다. 용왕의 이기심과 권력구조는 더욱 부각했다. 연극의 장점은 우리가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그대로 구현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연극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적이다.

  대학에 오고, 바깥세상에 조금 더 눈이 뜨인 후 마주한 사회는 어째 연극보다도 더 연극스럽다. 사람들은 복잡한 현상이 단순해지는 과정을 즐긴다. 그래서 틀을 만들어 자신을 가두고, 세계를 담는다. “A가 잘했고 B가 잘못했네라는 판단만큼 마음 편한 것도 없지만, 그래서 흑백논리와 진영논리는 사라질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사건의 피해자에게 절대적인 선함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전래동화의 평면성에 회귀하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나 역시 배우다. 이분법적인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고, 또 그 판단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 본성의 솔직함을 연기했던 고등학교 2학년보다, 편견이라는 무대 위에서 짜여진 대본에 맞춰 움직이는 지금의 내가 더 어린 듯싶다. 한껏 과장된 몸짓과 톤이었지만, 전하고픈 메시지만큼은 진실했던 그 무대들이 그립다.

성수민 문화부장 sky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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