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지진, 홍수와 같은 재난의 발생빈도가 잦아지고, 피해규모 역시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코로나19를 계기로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도시 개념인 ‘리질리언스’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됐다. 리질리언스란 직역하면 ‘회복탄력성’을 뜻하는 말이다. 도시계획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재해 및 전염병을 대비하고 복원할 수 있는 도시’라는 뜻으로 쓰인다. 도시의 리질리언스를 향상시키는 방안을 연구해온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스마트시티연구센터 정승현 수석연구원과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하현상 교수를 만났다.

 

다양한 위험요인과 함께할 세상, 리질리언스로 극복해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스마트시티연구센터 정승현 수석연구원 인터뷰

정승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외부의 충격에 더욱 강해지는 것이 리질리언스"라고 설명했다

 

- ‘리질리언스’란 무엇인가

  “과거에는 재난재해가 발생하면 주로 농어촌 지역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예를 들어 홍수가 발생하면 시골의 경우 댐처럼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 빈약하다보니 마을이 잠기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지금은 농어촌보다 도시가 재난재해로 인해 겪는 피해가 훨씬 심각합니다.

  서울과 같은 도시는 댐, 저수지, 철도, 항만 등 재난피해 예방을 위한 인프라가 마련돼 있지만, 예전에 만든 기반시설들은 현재 벌어지는 재난재해 규모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오랜 세월 재난재해를 막아왔던 기반시설들의 존재는 오히려 새로운 대안을 만들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노후화된 상태라 철거하기도 힘들고, 새로 만들자니 지을 공간이 없어 문제죠. 그래서 대책으로 나온 것이 도시설계 단계부터 ‘리질리언스’를 고려해 재난재해 복구 능력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리질리언스는 라틴어 ‘resi-lire’에서 온 말로, ‘되돌아가다’라는 뜻입니다. 도시 분야에서는 리질리언스의 개념을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받더라도 이를 유연하게 극복하고 더 좋은 환경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합니다.”

 

- 대표적인 사례를 제시한다면

  “방재 시스템에 리질리언스를 적용한 사례로 영국이 있습니다. 영국은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국가입니다. 워낙 오래전부터 호우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홍수라는 재난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꿨어요. 이들은 도시를 구상할 때 홍수의 발생을 애초에 기정사실화했습니다. 댐의 크기를 키우거나 새로 건설해서 홍수를 방지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홍수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니까요. 대신 범람이 일어나는 지역에는 아예 건물을 짓지 않았고, 건물 1층을 기둥만 남겨두는 구조로 설계했습니다. 건물 출입문에는 방수 기술을 적용했고, 화장실로 물이 역류할 것을 대비해 침수위를 염두에 두고 배선을 설계했습니다. 홍수를 ‘막는 것’ 대신에 ‘피하는 것’, 그리고 피해를 ‘줄이는 것’에 집중한 겁니다.”

 

- 리질리언스 연구에 도시재생지역이 활용되는 이유는

  “리질리언스 연구는 미래에 발생할 충격에 대응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적용해보고 효과를 검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해외의 경우에는 실물 규모의 실대형 실험시설을 지어서 기술의 효과를 검증합니다. 예를 들면, 실제 규모의 주택을 짓고 홍수가 발생하는 상황을 연출해 리질리언스 기술을 적용해보는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건이 다릅니다. 유럽 사람들은 대부분 단독주택에 거주하기 때문에 작은 건물 하나만 지어도 실험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실제와 동일한 조건을 만들어 실험하기가 굉장히 힘들죠.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도시재생지역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국토교통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연구 사업(주관연구기관: 한국토지주택공사, 협동연구기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인 ‘쇠퇴지역 재생 역량 강화를 위한 기술개발 사업’은 쇠퇴지역인 도시재생지역을 대상으로 리질리언스 향상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리질리언스 향상기술을 개발했고, 작년에는 서산, 목포, 대구 등에 위치한 쇠퇴지역에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 직접 리질리언스 향상기술을 적용해보고, 해당 지역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평가할 예정입니다. 이런 사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코로나19가 리질리언스 도입을 가속화했다는데

  “도시계획의 역사가 곧 전염병의 역사입니다.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했던 유럽에서 위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하수도를 별도로 만든 것처럼요. 코로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가 얻은 교훈은 ‘폐쇄된 지역에 많은 사람이 모이면 안 된다’는 것이죠. 오픈스페이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원의 중요성이 커졌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감염병이 발생하더라도 사람들이 우울해하지 않고 쾌적한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공원이나 산림이 잘 조성된 도시가 계획될 전망입니다. 이처럼 넥스트 코로나가 와도 도시환경은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잘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시의 리질리언스를 향상시키는 과정입니다.”

 

- 리질리언스의 국내 및 해외 동향은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권 국가보다 리질리언스 관련 연구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리질리언스는 복구와 복원에 관한 연구인데, 한국은 아직까지 재난재해나 전염병이 발생하면 원래 상태로 재생하는 기술을 많이 보유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지금은 복구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 대부분 복구성능 향상 기술을 개발하는 수준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유럽이나 미국은 오래전부터 리질리언스 개념을 도시 분야에 적용해 연구해왔습니다. 미국은 허리케인과 같은 대형 재난재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광역 단위로 리질리언스 개념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 유럽의 경우, EU 주도하에 리질리언스를 향상시키는 기술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리질리언스와 관련된 연구의 후발 주자인 셈이죠.”

 

 

 

재난 리질리언스 향상, 지역주민 참여가 열쇠

국민대 행정학과 하현상 교수 인터뷰

하현상(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리질리언스 제고를 위한 방안으로 공공마케팅을 제안했다<br>
하현상(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리질리언스 제고를 위한 방안으로 공공마케팅을 제안했다

 

- 재난 리질리언스에 있어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재난 리질리언스란 위험요인을 미리 예방하고 대비하는 사전 처방적 조치와, 재난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후 처방적 적응을 모두 포괄하는 재난관리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진, 감염병 등의 재난 발생 시 사후 처방을 담당하는 것은 주로 중앙정부의 역할입니다. 정부는 재난안전상황실이나 질병관리청과 같은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고 정보 수집을 통해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이 과정에서 재난 발생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중요한 지원 역할을 수행합니다. 재난 발생 후 해당 지역에서 직접 재난 대응책의 실효성을 검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재난을 예방하거나 대비하는 단계에서도 지역 주민들은 큰 도움이 됩니다. 재난발생 전에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 사전신고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지역 주민은 정부가 놓칠 수 있는 세세한 부분들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리질리언스 연구를 진흥시키기 위해서,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참여를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방법을 고안해내야 합니다.”

 

- 재난관리 시스템에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참여의 중요성을 직접 체감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방법은 주민들에게 제도적으로 역할과 권한을 부여해서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각 지역마다 안전과 관련된 분과위원회를 만드는 것인데, 여기서 주민들은 재난을 대비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주민들은 정부의 지침 그대로를 이행하는 것에 그쳤지만, 분과위원회에서는 모두 함께 재난대비책을 논의하면서 더 현장성 있고 효과적인 정책을 낼 수 있습니다. 이후 재난이 발생했을 때, 서로 합심해서 마련한 대비책으로 재난 피해가 감소했다는 사실을 체감한다면 향후 그들은 재난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 리질리언스 향상 방안으로 ‘공공마케팅’을 제안했다

  “리질리언스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합니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공공마케팅입니다.

  공공마케팅이란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고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때 시민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의미합니다. 정부는 공공마케팅을 이용해 지역주민들에게 리질리언스 연구의 필요성을 알리고 참여를 장려해야 합니다.

  공공마케팅의 특징은 논리적인 근거보다 감성을 자극하여 시민들을 설득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조세정책에서 자주 이용하고 있는데, 국세청 공익광고를 보면 ‘우리의 세금이 우리 아이가 자라는 행복한 마을을 만듭니다’와 같은 문구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세금을 내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국민들을 납득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감성적인 방법으로 다가가는 것이죠. 실제로 대중들은 합리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결정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순응도를 높이기 위해 감성적인 접근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유용합니다.

  이처럼 대중들에게 리질리언스 연구의 필요성을 수긍시키고 재난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공공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예를 들면, 소방재청이나 질병관리청에서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용어와 방식을 찾아 그에 따른 리질리언스의 개념을 해석하고 필요성을 이야기함으로써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리질리언스와 공공마케팅을 직접적으로 연계한 연구가 없습니다. 앞으로 정부가 리질리언스와 관련된 정책을 만들고 사람들이 따르게 하기 위해서는 공공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합니다.”

 

-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재난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자연재해는 해마다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3월 초엔 꽃샘추위가, 6월이면 장마가, 7, 8월에는 태풍이, 겨울에는 폭설이 오는 것처럼요. 지진 역시 지진 조기경보시스템과 같은 지진관측 인프라를 통해 대부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등의 전염병과 같은 사회적 재난은 자연적 재난에 비해 불확실성이 높고 일회성을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대응과 복구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연구는 재난이 발생한 후에 사후적으로 사례를 분석하는 정도에서 그칩니다. 또 데이터를 구하고 싶어도 중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특정 사회적 재난의 일정한 패턴을 찾는 실증적 연구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거죠.”

 

- 재난 리질리언스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려면

  “우선 우리 사회가 리질리언스라는 개념 자체에 친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념이 익숙해야, 리질리언스가 아이디어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으로 구현돼야 한다는 사실을 시민들이 인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담양에서 밀고 있는‘지속 가능한 발전’도 이 개념이 주민들 사이에서 보편화됐기에 정책적으로도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현재 리질리언스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는 리질리언스 개념을 대중들에게 보편화해 정책의 당위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부분의 정부 정책은 하향식으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향식으로 정책을 만드는 통로가 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부의 정책을 수요자 중심으로 추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민디자인단과 예산 과정에서 국민 참여를 장려하는 주민참여예산제도 등이 있습니다. 리질리언스의 개념이 일반시민들에게 보편화되면, 이런 주민 중심의 정책제안통로를 통해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의지가 공공기관이나 정부 부처로 전달될 것입니다. 그러면 광역자치단체나 정부 산하 연구기관들도 관련 데이터를 구축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글 │ 진서연 기자 standup@

사진 │ 이윤 디지털콘텐츠부장 · 박소정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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