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마주하며 강력해진 도시들
팬데믹 마주하며 강력해진 도시들
  • 진서연 기자
  • 승인 2021.03.0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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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에 맞서며 발전해온 도시계획

  지난 한 해 전 세계를 궁지로 몰아넣은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전히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3월 5일 기준 전 세계 확진자는 1억 1620만 명, 사망자는 258만 명에 달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대책 마련은 선택이 아닌 숙명이 됐다. 각 분야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다.

  도시설계 분야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김진유(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역사적으로 전염병이 전파되는데 있어 도시공간이 농촌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해왔고 현재도 마찬가지”라며 “도시공간에서 건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감염병의 발생과 전파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 거주하는 오늘날, 앞으로 마주할 여러 위험 요인에 대응할 수 있는 도시형태를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왕건 국토연구원 도시연구본부장은 “대한민국 실정에 맞는 새로운 재난극복모델을 만들어 위험을 최소화하는 도시를 고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염병과 함께 발전한 도시계획의 역사

  고대 그리스 시대의 장티푸스부터 흑사병, 콜레라, 스페인 독감까지, 인류는 다양한 종류의 전염병과 마주해왔다.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수의 전국 대비 수도권 발생 비율이 63% 이상을 차지한 것처럼, 과거 창궐했던 전염병들도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 더욱 큰 피해를 안겼다. 예컨대 흑사병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제노바 등의 인구밀도가 높고 여러 국적의 사람들과 접촉하기 쉬운 항구 도시 등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인류는 팬데믹을 겪을 때마다 도시를 재구조화하는 계획을 모색해 감염병 전파에 대처했다. 이희정(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도시계획의 출발은 감염병과 깊은 관계가 있다”며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주거와 오염원을 분리하고 상하수도를 공급하는 등 도시계획이 발전해왔다”고 설명했다. 감염병의 확산 원인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시의 비위생적인 환경과 큰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감염병은 공통적으로 도시의 공간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감염병 차단 위해 모색한 ‘이상 도시’

  기원전 5세기, 당시 그리스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국가인 아테네는 장티푸스의 유행으로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전파되는 장티푸스는 아테네 시민의 약 3분의 1을 희생시켰고 페리클레스 황제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인류 최초의 건축이론가로 알려진 ‘히포다무스’는 장티푸스의 위협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이상 도시를 고안했다. 그는 아테네와 근접한 피레우스, 자신의 고향인 밀레투스 등의 도시에 격자형 가로망 체계를 도입해 인구 밀집을 분산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그의 설계도 속 선들은 도로를 의미했고, 도로에 둘러싸인 각 공간에는 주민이 필요로 하는 주택과 시설들이 자리 잡았다. 격자형 도시계획은 불규칙한 구릉지를 무시하는 등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도시 생활에 엄격한 질서를 부여해 감염병과 전쟁 등의 위기 발생 시 시민들을 관리하기 수월했다. 유럽 최대 규모의 재앙으로 알려진 흑사병 전파의 중심에도 도시가 있었다. 14세기 당시 유럽사회에는 현대적인 위생개념이 부재했고 상하수도 정비도 이뤄지지 않았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는 감염병 유행에 매우 취약했다. 김진유 교수는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바이러스를 감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염병 확산을 막을 최선의 방책은 격리였다”고 말했다.

기원전 5세기 장티푸스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히포다무스가 고안한 격자형 가로망 체계다.
기원전 5세기 장티푸스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히포다무스가 고안한 격자형 가로망 체계다.

 

전염병 확산 막으려 시작

용도혼합형·언택트 도시 전망

도시 리질리언스 필요성 부각돼

 

  흑사병의 무서운 전파력을 경험한 후, 유럽에서는 본격적으로 이상 도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탈리아의 건축가인 빈첸초 스카모치가 고안한 ‘팔마노바’가 대표적이다. 팔마노바는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요새 도시로, 전쟁과 감염병 등의 각종 위험으로부터 견딜 수 있도록 계획됐다. 도시 중앙에 위치한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구조인 팔마노바는 중앙 건물에서 도시의 모든 곳을 훤히 내다볼 수 있다. 따라서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즉각 파악하고 성문을 닫아 성 내부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했다. 또 격리된 공간에 갇힌 시민들이 일정 기간 동안 생존할 수 있도록 도시 내에 우물, 도로망 등의 보호 장치를 배치했다.

  이상 도시에 대한 논의 외에도 도시의 무분별한 팽창을 막아 주변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그린벨트’의 기원 역시 흑사병 발생 당시로부터 찾을 수 있다. 1580년대 영국에 흑사병이 빠르게 퍼져나가자 엘리자베스 1세는 확산을 막기 위해 시가지 인근의 각 성문으로부터 약 5km 이내에 건물 신축을 금지하는 칙령을 선포했다. 당시의 시도가 현대개발제한구역의 모태가 됐다.

팔마노바는 14세기 전쟁과 감염병에 견디도록 계획된 요새도시로, 도시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도시 구조다.
팔마노바는 14세기 전쟁과 감염병에 견디도록 계획된 요새도시로, 도시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도시 구조다.

 

콜레라 확산 막으려 제정한 ‘공중보건법’

  1830년대 초 발생한 콜레라를 통해 인류는 공중위생과 같은 물질적 환경이 감염병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영국의 사회 운동가였던 에드윈 채드윅은 콜레라가 가난하고 비위생적인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전염병의 원인은 열악한 환경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는 노동계급의 질병이 도로 정비, 오물 투기에 관한 규제를 통해 해결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채드윅의 주장에 따라 영국 의회는 1848년 세계 최초로 공중보건법을 제정하고, 이를 토대로 도시의 위생환경을 개선하는 법적 제도를 마련했다. 공중보건법 제정을 기점으로 영국에서는 오염원과 주거를 분리하는 등 깨끗한 환경 조성을 위한 규제가 의무화됐다.

  상하수도 정비 사업 또한 시행됐다. 1854년 런던에서 콜레라가 유행하던 당시, 영국의 의사 존 스노우는 콜레라 환자가 발생한 가정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조사했다. 이를 토대로 그는 환자의 거주지 위치를 점으로 기록한 콜레라 지도를 만들었고, 콜레라 전염 동선을 분석한 결과 동일한 상수원에서 콜레라가 확산됐다는 사실을 발견해 상하수도 정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훗날 영국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대규모 상하수도 정비 사업에 착수했다.

  프랑스 파리 역시 콜레라의 영향으로 1853년 도시를 재구축했다. 19세기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일자리를 찾아 파리로 유입되는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도시는 빠른 속도로 팽창했고, 늘어난 인구를 감당할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교통체증 문제와 상하수도 체계의 부실, 녹지 부재, 비위생적인 주택 등의 생활환경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자, 나폴레옹 3세는 영국의 공중위생법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파리개조계획에 착수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당시 파리 시장이었던 외젠 오스만은 도시 내 도로망을 개선하고 상하수도를 정비했으며 양질의 주택도 공급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방사형의 도로망은 루브르 궁전과 개선문 등의 주요 건축물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 파리개조계획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의 아름다운 조경을 만드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 와중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일본의 도시계획법 제정에 영향을 미쳤다. 김진유 교수는 “일본의 도시계획법은 공중위생법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도시계획법에서 따온 것”이라며 “당시 스페인독감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용됐던 요소들을 반영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티푸스부터 스페인 독감까지, 도시계획의 역사는 감염병과 함께 발전했다. 코로나19도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등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변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미래 도시의 공간 계획까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이 다수다. 이왕건 본부장은 “제2, 3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은 언제든지 다시 창궐할 것”이라며 “전염병에 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고위험시설물의 설치 및 운영 기준, 용도별 토지이용면적 배분 기준 등을 새롭게 마련하는 정책적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9세기 중반 존 스노우가 콜레라 환자의 거주지 위치를 점으로 기록한 콜레라 지도다.
19세기 중반 존 스노우가 콜레라 환자의 거주지 위치를 점으로 기록한 콜레라 지도다.

 

언택트 문화가 도시를 바꾼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는 사회, 문화적 측면을 포함해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 위험 요인들에 강한 도시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시 설계에 대해 김진유 교수는“기존의 도시는 대형화, 집중화, 용도분리의 성격을 띠었던 반면, 앞으로의 도시는 소형화, 분산화, 용도혼합의 특성을 가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집에서 15분 내, 어디든 갈 수 있는 도시

  김진유 교수는 코로나19 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도시계획 방안으로 파리의 ‘15분 도시’를 제시했다. ‘15분 도시’는 현 파리 시장인 안 이달고가 내세운 정책 공약으로, 어느 곳에서든 도보로 15분 거리 내에서 문화시설, 학교, 병원, 서점, 공원 등을 접하게 하는 도시다. 상업공간, 주거공간 등 지역별로 용도가 분리돼 있던 과거와 달리, 한 지역 안에 여러 가지 생활을 누리는 용도혼합형 도시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이전에 나온 개념이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 감염병 대응에 효과적인 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접촉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중 교통을 타고 멀리 이동하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 걸어가는 것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하기 때문에 소음과 대기오염 문제를 줄이고 교통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전망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지형 특성상 모든 지역에 ‘15분 도시’를 적용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김진유 교수는 “파리와 달리 우리나라는 구릉지가 많아서 자전거로 이동하는데 제한적인 지역이 많다”며 “구릉지가 없는 평평한 지역인 강남, 종로구, 중구 쪽에서는 ‘15분 도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친환경적이고 지역 사회 발전에 긍정적인 ‘15분 도시’를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도입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스만 파리시장은 영국의 공중위생법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파리 내 도로망 개선, 상하수도 정비 등 파리개조계획을 착수했다.
오스만 파리시장은 영국의 공중위생법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파리 내 도로망 개선, 상하수도 정비 등 파리개조계획을 착수했다.

 

트렌드로 부상한 ‘직주근접’

  코로나19로 인한 주거공간 기능의 다양화는 도시설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기존의 주거지는 잠을 자고 쉬는 공간만 제공할 수 있다면 충분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접촉이 제한되면서, 주거공간은 또 다른 사무실이자 교실이 됐다. 거주공간이 업무와 교육공간을 겸하는 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도시계획에 있어 주거공간의 면적 확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비접촉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주택의 면적 수요는 확대되고 있지만, 한정된 공간 내에서 독립된 업무와 교육 공간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김진유 교수는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2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신도시를 개발할 때 기존보다 더 넓은 면적의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다. 또 다른 방안은 주거지 인근에 감염예방 시스템이 갖춰진 개인용 사무공간이나 온라인 클래스 전용 독서실을 공급하는 것이다. 기존에 지어진 주택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부족한 면적을 보완할 수 있다.

  윤주선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지역재생연구단 부연구위원은 앞으로 위성사무실이 보편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윤주선 연구원은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기업들이 몇몇 부서들을 직원들의 집 근처로 이전하는 위성사무실이 설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에는 도심에 집중됐던 회사들의 일부가 주거지와 가까운 곳으로 옮겨져 위성사무실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재난을 견디는 미래 도시

  이전의 도시계획은 재난을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인프라를 준비하는 것에서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들이 더 잦아지면서 대비를 넘어‘복원’의 능력까지 갖춘 도시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에 ‘리질리언스’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리질리언스는 외부의 충격을 받았을 때 충격을 받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균형 상태를 의미한다. 도시의 리질리언스를 향상하기 위해서 재난 발생 전에는 위험요인을 미리 분석하여 재난을 대비하고, 재난 발생 후에는 빠른 대응을 통해 도시 기능의 저하를 막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 일부 유럽의 선진국들은 이미 도시방재 계획에 있어 리질리언스 개념을 적용해 재난재해에 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희정 교수는 “우리나라도 리질리언스 향상 기술에 많이 지원해서 미래에 발생할 각종 위험에 견딜 수 있는 도시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래 도시 형태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예측하고 연구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윤주선 연구원은 “이전까지 도시계획을 설계할 때는 대부분 해외사례를 참고했었는데, 해외 국가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해외 도시에 대한 거품이 많이 빠진 것 같다”며 “앞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나라만의 방식으로 미래의 도시를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진서연 기자 stand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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