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안 하나 드려요’ SNS로 2030 유혹하는 다단계
‘좋은 제안 하나 드려요’ SNS로 2030 유혹하는 다단계
  • 송다영 기자
  • 승인 2021.03.14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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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다단계업체 잠입 취재기
2월 19일 기자가 온라인 미팅을 통해 다단계 판매원을 만나고 있다.
2월 19일 기자가 온라인 미팅을 통해 다단계 판매원을 만나고 있다.

 

미래 향한 청년들의 불안감

불로소득 언급하며 유혹

SNS 사용한 전략적 마케팅 펼쳐

 

  ‘좋은 제안 하나 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려요.’ 박모 씨(남·28)는 SNS 메시지를 통해 자칭 ‘뷰티 크리에이터’에게 가벼운 마케팅 미팅을 권유받았다. 꽤 흥미가 생겨 만나보려 했지만, 지인들이 다단계 회사라며 만류해 놀랐다고 한다. 그는 “평범한 기업에서 진행하는 바이럴 마케팅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2010년 밀집된 공간에서 생활하며 다단계 활동을 하던 학생 400여 명이 발견돼 충격을 준 ‘거마 대학생 사건’이 밝혀진 지 10년, 다단계는 SNS로 활동 무대를 옮겨 청년들의 일상 속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다단계도 언택트로 편리하게

  박모 씨처럼 SNS에서 ‘선택받은 자’ 뿐만 아니라, 사업에 뛰어들고 싶은 누구에게나 다단계의 문은 열려있다. 인스타그램에 ‘네트워크 마케팅’을 검색하면 22만개 이상의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다. 2월 18일, 자신을 다단계 판매 업체 A사의 뷰티 크리에이터로 소개하는 이모 씨(여·23)에게 사업에 관심이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금방 답장이 왔다. A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다단계판매업자로 등록된 합법 회사로, 매출액 상위 20개 업체 안에 드는 뷰티 제품 기업이다. 업체를 알게 된 경로와 간단한 신상정보를 확인하고 바로 다음 날 온라인 미팅 일정을 잡았다. 과거 ‘다단계 메카’라고 불리던 선릉역이나 강남역 주변에서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명함을 건네는 방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다단계 사업을 플랫폼 비즈니스라고 칭했다. 배달 앱이 배달업체 사장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듯이, 판매원이 소비자와 회사를 연결해주고 보상을 받는 방식이다. 크리에이터(판매원) 활동을 시작하면 본사에서 개별 홈페이지를 지급한다. 이모 씨는 이를 ‘나만의 브랜드를 가질 기회’라고 말했다. 나아가 개인 브랜드를 만들어 활동하는 인디펜던트 워커와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그는 다단계 사업을 통해 얻게 되는 소득이 일종의 ‘불로소득’임을 강조했다. 자산 시스템만 구축해놓으면 저절로 수입이 발생하니 일할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네트워크 마케팅을 하게 되면 1년 이내에 월 100만 원에서 400만 원의 고정 수입이 생긴다. “가만히 있어도 매달 통장에 월세가 찍히는 건물주와 다를 바가 없죠.” 그는 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자유를 어필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성공 스토리

  2월 22일 선릉역 주변 센터에서 스물세 명의 ‘네트워커’를 만났다. 모두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세미 정장 차림의 청년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서울 사장님, 인천 사장님, 춘천 사장님 등 호칭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이 대학교 동아리방을 연상시켰다. ‘춘천 사장님’은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인플루언서 사장이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자신을 태그해줬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사업에 갓 뛰어든 이들에게 일찍이 성공을 이룬 인플루언서 사장들은 선망의 대상이자 연예인이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먼저 문의했다고 하니 잠깐 놀란 기색을 보였다. “하긴 요즘 20대들은 이런 바이럴 마케팅에 관심이 많아 먼저 연락 오는 경우도 많아졌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들은 곧바로 나를 안심시켰다.

  곧 스폰서(상위 판매원) 사장이 들어와 회사 보상구조를 설명하는 ‘보상 미팅’을 시작했다. 3주 전 들어왔다는 신입과 각 스폰서, 그리고 미팅 요령을 배우기 위해 들어왔다는 판매원들과 함께했다. 회사에서 판매원이 오를 수 있는 지위는 소비자, 대리점 점주, 본사 사장으로 크게 세 가지다. 소비자는 구매자를 소개할 때마다 제품값의 6%를 ‘소개비’ 명목으로 돌려받는다. 지속적인 구매자를 뜻하는 ‘마니아층’ 15~20명을 유치하면 개인 대리점을 갖게 된다. 점주가 되면 제품 가격의 40%를 캐시백으로 챙길 수 있다. 이 대리점을 더 키워서 본사 사장 지위에 오르면 ‘프랜차이즈 분양권’을 갖는다. 이때부터는 분양한 대리점 전체 수익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다.

  이 말대로면 본사 지위를 얻고 난 7년 후에는 내가 숨만 쉬고 있어도 매달 1300만 원이 통장에 꼬박꼬박 찍힌다. 월 1300만 원. 사회초년생이 초봉을 대략 얼마 받는지 현실을 알게 된 후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숫자였다. 달콤했지만, 동시에 너무 큰 액수라서 현실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해주던 김모 씨(여·30)가 회심의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려울 것 같지? 아니야, 나 1년 만에 본사 자리까지 올라갔어.” 살아있는 성공 스토리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마음이 일렁였다. ‘어쩌면. 정말 잘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미팅 내내 김모 씨는 A사업체가 불법 피라미드가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상위 판매원은 하위 판매원(대리점)으로부터 얻는 모든 보상을 본사를 통해 받는다. 하위 라인의 이익을 뺏어가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 사업은 불법 피라미드와 절대 무관하다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하위 라인이 성공해야 결론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기 때문에 하위 판매원을 도와줄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상위 판매원과 하위 판매원은 상부상조 관계니까 잘 도와주겠다, 겁내지 말고 한번 해보자, 하며 사기를 북돋웠다.

2월 22일 선릉역 주변 센터에서 네트워커들을 만났다
2월 22일 선릉역 주변 센터에서 '네트워커'들을 만났다

 

같은 라인 판매원끼리 사적 만남 금지해

  보상 미팅을 마친 뒤 이모 씨와 ‘제품 체험방’이라는 작은 방에 들어갔다. “앞으로 네가 팔 물건이니 제품 공부도 필수”라며 직접 체험을 받게 했다. 자사 제품과 타사 제품을 리트머스지 위에 올려 자사 제품이 비교적 약산성을 띤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 나름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자사 제품의 탁월함을 입증하려 노력했다. 모든 사람이 다 써도 되는 제품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물어봤더니, 그런 건 잘 모르겠다며 얼버무렸다.

  이모 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상위 스폰서의 동행 없는 같은 라인 판매원의 사적 만남을 금지하는 내부 규율이다. “예전에 판매원 하나가 그만두면서 그 라인 전체가 퇴사했던 적이 있대요. 미리 방지해놓는다고 나쁠 건 없으니까요.” 첫 미팅에서 ‘경제적 자유’, ‘시간적 자유’를 위해 직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던 사람은 어디 간 건지, 자유를 위해 선택한 회사가 오히려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아이러니했다.

  네트워커의 일과는 7시 반 출근으로 시작된다. 강의, 미팅, 면담, 마케팅 등 끊임없이 업무를 본다. 가장 애를 많이 쓰는 작업은 마케팅이다. 이들의 SNS를 이용한 마케팅은 꽤 전략적이다. 판매원은 최소 4개 이상의 계정을 사용한다. 본계정은 제품 사진이나 자신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사진 등, 말 그대로 ‘상품 홍보용’이다. 어떤 사진을 올려야 하는지, 어떻게 사진을 보정해야 하는지,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메이크업 방법은 무엇인지, 그 비법이 상위 라인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져 온다. 나머지 3개 계정은 소비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는 용도다. 이를 ‘2363 계정’이라고 칭하는데, ‘하루 2명과 소통하면 30일 동안 60명과 소통해서 3명이 남는다’는 줄임말이다. 하루 2명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선 최소 수십 명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권유 메시지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답장이 오면 어떻게 연락을 이어가야 하는지 양식도 마련돼 있다.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내다 보면 SNS가 이를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인식하고 계정을 중지하는 경우가 있어 최소 3개 이상의 계정을 개설하는 것을 추천했다.

  댄서로 활동하면서 네트워커로도 일하고 있는 정모 씨(여·21)는 ‘2363’을 하면서 회의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댄서 일을 할 때는 하는 만큼 돌아오는 게 있는데, 이건 메시지를 하루에 몇십 통씩 보내도 답장이 없으니 내가 도대체 뭘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했다. “딱 한 명만 잡아봐, 그럼 감이 잡혀.” 김모 씨는 정모 씨를 다독였다.

  메시지를 보내는 소비자는 대학생들이 주로 활용하는 해시태그로 들어가 무작위로 뿌리는 경우가 많다. 굳이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계정 주인의 사교성이다. 이모 씨는 SNS에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많은 사람을 주로 공략한다고 했다.

  영업 비법이나 사업 정보 교류는 메신저를 통해 이뤄진다. 오프라인 미팅 후 내 위로 스폰서가 있는 단톡방에 초대받아 소통을 지속했다. 지정 강의를 보고 감상평을 써오면 간단한 피드백을 주는 식이었다. 전체 톡방에 들여보내 달라고 하니, 거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아니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A사에 1년간 몸담아오다 작년 퇴사한 서모 씨(남·35)에 따르면, 단체 채팅방에서는 스폰서의 신용을 얻은 판매원을 대상으로 사업 팁과 정보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종일 업무를 보다 보면 저녁 7시쯤 일과가 끝난다. 일반 직장보다도 업무 강도가 높은 것 아니냐는 물음에 이모 씨는 “미래를 위해 하는 거죠”라고 답했다. 대학교에서 보건계열 학과에 다니던 그가 휴학을 내고 사업에 뛰어든 지 6개월, 이모 씨의 한 달 수입은 100만원 내외다. 학교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과하면 벌 수 있는 평균 초봉 240만원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금액이다.

 

내부 감시채널 있다지만…

  프로그래머 일을 하던 서모 씨는 1년 전 SNS를 통해 A사를 접했다. 사업설명회를 들어보니 그들이 말하는 보상구조에서 불법적 요소나 논리적 허점을 찾지 못했다. 그는 “다단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제품 공부, 사업설명회 듣기, SNS 마케팅 활동, 오프라인 명함 돌리기 등 스폰서가 하라는 건 뭐든지 죽어라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수익’에서 성과를 얻지 못했다.

  무의미한 성과와는 별개로, 다단계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서모 씨는 “다단계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은 사람을 돈으로 봤다”고 말했다. “어차피 다음 달에 살 제품, 이번 달에 미리 사세요.” 그가 실제로 스폰서에게 들었던 말이다.

  다단계 판매 회사에서 판매원에게 구매를 강요하는 것은 방문판매법에 저촉되는 불법 행위다. 다수의 합법 다단계 업체가 법률문제에 어긋나지 않도록 다양한 감시 채널을 사용한다. 특정 회원이 갑작스레 다량 구매를 하면 조사에 착수한다거나, 구매를 강요하는 판매원을 신고할 수 있도록 장치한다. 하지만 서모 씨는 감시 채널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다. 그는 “다단계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일반인들이 판매실적을 유지하려고 너도나도 제품을 판매하는데 현실적으로 완벽한 감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다단계 업체는 판매원이 일정 수준의 판매실적을 유지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한다. 실적을 유지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내게서 제품을 구매하는 회원을 많이 만드는 것이지만, 실정은 그렇지 않다. 6개월 차 네트워커 이모 씨는 실적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뷰티 제품을 A사로 바꿨다. 매달 10만원 내외를 자사 화장품 구매에 사용한다.

 

“언제까지 일할 수는 없으니까”

  센터에서 총 스물세 명의 청년을 만났다. 이들이 다단계 업체에 발을 들이기 전 상황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모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결하고자 다단계를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모 씨(21·여)는 작년 9월 첫 미팅을 갖고 1주일 뒤 휴학을 결심했다. 신입생이었던 그는 “애초에 취업 때문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사이버 강의를 들으니 흥미가 사라졌다”며 “여기서는 친구들도 만들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했다. 박모 씨(남·28) 역시 2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6잡’을 뛰다 과로로 입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어 “일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몸이 망가질 때를 대비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댄서로 활동 중인 정모 씨(여·21) 또한 몸의 이상을 느끼고 다단계 회사의 문을 두들겼다. 그는 “인대가 늘어나 무대에 오르지 못했는데,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라도 남겨두려면 다른 일도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만났던 청년들은 모두 사업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 누구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들에게 다단계는 불안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돌파구였다.

 

글 │ 송다영 기자 foreveryoung@

사진 │ 박소정·서현주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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