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죄()란 무엇인가? 형법에서 죄는 범죄라는 개념으로서 형식적으로는 형벌이 과해지는 행위”, 실질적으로는 사회에 유해하거나 법익을 침해하는 반사회적 행위라고 정의한다. 두 개념은 모두 죄를 일종의 행위로서 해석하고 있는데, 법을 어겼을 때 행위자는 를 저지르게 되며, 이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에 대해 적절한 처벌이 보장되는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현대 사회 사법 체계의 원초적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상기된 정의에 의하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죄가 성립할 수 없으므로 죄책감에는 잘못된 행위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행위가 아닌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문명의 발달 이후에 인류는 농경지를 확대하며 다른 생명체들의 서식지를 침범하였고, 단순한 의식주를 넘어서서 더욱 고도화된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지구를 부식시키는 이기적인 면모를 보여왔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인류의 이러한 자기 파괴적인 면모를 지켜보며 전체 인류가 느껴야 할 죄책감을 대신하여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하여 피해입는 연약한 존재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보호해주고자 한다. 우리는 그들을 채식주의자라고 부른다.

 

  <채식주의자>는 만연한 죄가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누군가에게 죄의식은 피 냄새와 같이 선명하게 다가오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무지한 자들에게 채식주의자들은 헛것을 보며 불만을 토로하는 환자나 다름없어 보일 따름이다. 사회로부터 부정당한 죄, 어떠한 법 문서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죄, 그렇기에 언급되거나 지적되는 것만으로도 주변인들로부터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죄에 죄책감을 느끼는 영혜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홀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으러 채식의 순례를 택한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우리에게 육식을 끊으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연약하고 순수한 존재에게 가해지는 고통에 대한 죄는 영혜의 꿈처럼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아니면 영혜가 도망치고자 한 대상은 죄책감이 아닌 자기 자신의 동물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피만 목격하면 일렁이는 허기를 인내하는 영혜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그토록 부정하고 싶은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생은 일어나고 정신병동 바깥 세상은 별 탈 없이 돌아간다. 우리 사회의 냉담하면서도 당연한 현실이다.

  소설 초반에 영혜가 참새의 목덜미를 뜯어낸 후로부터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채식 그 너머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채식주의자>는 혼잡한 사회 속에서 홀로 끊임없이 아파하는 자들을 대신하여 외치는 한탄이다. 어쩌면 무의미한 아픔의 근원은 겉으로는 다양한 시각을 포용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불편해하는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한 면모일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존재들이 잊히지 않기를 소망하는 작가의 따듯한 시선이 더욱 값질 수밖에 없다.

정기준(경영대 경영17)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