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 대륙서점 내 ‘에너지슈퍼마켙’에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 대륙서점 내 ‘에너지슈퍼마켙’에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에너지 절감, 공동체 형성 기대

시민참여형 사업으로 나아가야

지역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관건

 

  2012년 성대골을 시작으로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이 시행된 지 올해로 9년째다. 에너지자립마을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리고 에너지 사용을 절약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여나가는 마을공동체다. 2020년까지 서울시 내에 133곳의 에너지자립마을이 조성됐으며 서울시에서는 올해 안으로 50곳을 추가로 늘릴 계획을 발표했다. 3인 이상의 주민이 모여 사업제안서와 실행계획서를 제출하면 이를 바탕으로 사업 대상지를 선정한다. 에너지자립마을로 선정되면 3년간 최대6000만 원의 지원을 받게 된다.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은 기후위기 대응에 유의미한 성과와 지역 공동체 활성화 효과까지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행 방식을 두고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 사업 현황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아봤다.

 

탄소중립에 발맞추는 자립마을 사업

  에너지자립마을에 대한 논의는 후쿠시마원전사고를 계기로 서울시에서 제안한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에서 시작됐다. 원전한 곳에서 생산하는 양만큼의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거나 그 소비를 줄이는 사업이다. 서울시는 2012년 성대골, 호박골 등7곳의 시범 마을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39억 원을 투입해 첫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을 진행했다. 각 마을은 해당 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모여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 백서’에 따르면, 2018년 8월 기준 서울시 내 에너지자립마을은 태양광 패널 설치를 통해 연간 482만kWh의 전기를 생산해냈다. 이는 4인 가족 기준 16만 66가구의 월 전기 소비량에 해당한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진행되는 ‘에너지자립마을 사업 2.0’에는 기존의 3배가 넘는 119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마을 단위사업에서 자치구 단위로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에너지자립마을 사업 2.0의 목표는 에너지혁신지구를 통한 에너지공동체육성이다. 박월진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환경시민협력과 에너지지원팀장은 “에너지혁신지구를 통해 민간기업과 자치구, 연구조직이 협력해 에너지공동체를 형성한다”며“서대문구 에너지혁신지구가 그 예”라고 말했다.

  기존 자립마을 사업이 에너지자립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부터는 여기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추가된다.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담은 ‘2050온실가스 감축계획’이 수립된 뒤, 그 계획을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에도 접목한 것이다. 박월진 팀장은 “올해부터는 제로에너지 건물을 확대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나가는 등의 온실가스 감축까지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사업을 확장했다”고 말했다.

 

‘에너지공동체’ 조성에 의의

  에너지자립마을의 성공을 위해서는 먼저 마을공동체 문화의 활성화가 전제돼야한다. 김해동(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대도시의 주민들은 마을이 살기 좋은 공간이 되길 바라기보다 개발 호재로 부동산자산이 증가하기를 기도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마을을 가꾸고 이익을 공유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점을 인식해 마을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재 진행하는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에서는 마을의 특색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경우를 우선 선발한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이사는 “에너지자립마을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사업들이 있었다”며 “이전 사업들이지원금,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은 공동체를 키우고 시민들이 스스로 실천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서울시 곳곳에는 에너지자립마을을 통해 공동체 문화를 형성한 사례들이 눈에 띈다. 석관두산아파트에는 주민들이 모여 에너지 절약 운동을 벌이고 집집마다 소형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이렇게 절감한 비용의 일부를 경비원 30명의 고용을 보장하고 임금을 19% 올리는 데 사용했다. 공동체 형성을 통해 나눔과 상생을 실현한 사례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에너지자립마을들은 서로 힘을 합쳐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을 통해 본받을 만한 각 마을의 에너지관련 활동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따라하는 방식으로 에너지공동체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통계에 기반한 눈에 보이는 성과들 외에도 나눔을 실천하고 에너지 문제에 대해 주체적으로 논의하는 공동체를 형성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중앙집중형’ 생산에서 ‘지방분산형’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생산체계는 ‘중앙집중형’이다. 서해안에 위치한 발전소에서 전기를 대량 생산해 전기가 필요한 곳에 나눠주는 방식이다. 에너지자립마을 조성에 필요한 설비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이승재 ‘㈜나무와 에너지’ 대표는 “중앙집중형 에너지시스템의 경우 에너지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새어나갈 뿐만 아니라 산지 개발의 피해, 주변 주민들의 항의까지 잇따른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나라는 ‘지역분산형’ 에너지사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그곳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

  에너지자립마을도 에너지 분권화에 기여할 수 있다. 김해동 교수는 “에너지자립마을은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소비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에너지분권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다만 에너지자립마을을 통해 에너지 분권을 시도하는 데는 수익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기존에 시행했던 중앙집중형 에너지사업에 비해 지역분산형 사업은 투자 대비 수익성이 높지 않다. 대기업은 지역 단위의 작은 사업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승재 대표는 “기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가 투자하고 운영하는 에너지 사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에너지 권한이 모두 중앙정부에 집중돼있다는 점은 에너지 분권 실현에 장애물이 된다. 지자체가 에너지 정책에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매우 미약하다. 김소영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 대표는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데이터조차도 긴 절차로 얻어야 할 정도로 에너지 정책에서 지방자치구는 홀대받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주도에서 시민참여형으로

  이승재 대표는 “지원기간 3년이 끝나면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이 종료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의 가장 큰 숙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전문가들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자립마을을 위해 정부주도형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주도하는 하향식 정책 체제에서는 주민들의 다양한 수요와 현장의 상황이 반영되기 어렵다.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주도 방식은 선진국이나 선두주자가 간 길을 빠르게 따라잡아야 할 경우에만 유효하다”며 “이제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경로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부, 주민, 기업 등의 다양한 주체들이 상호작용하며 사업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 중 하나가 ‘리빙랩’ 방식이다. 말 그대로 생활공간을 실험실 삼아 주민, 지자체, 연구조직 등이 모여 해결방안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다양한 소규모의 실험을 진행해보고, 성과가 있는 경우를 선별해 확대 적용한다. 성지은 연구위원은 “성대골은 리빙랩을 처음 도입한 사례로 주민들과 전문기관이 협업해 마을연구원을 만들었다”며 “주체적으로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사업의 규모도 확장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성대골은 다른 에너지자립마을과의 협업으로 이 경험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다양한 집단의 협력을 위해선 중간지원조직의 존재가 중요하다. 중간지원조직은 행정조직과 시민 조직을 연결해주는 집단을 의미한다. 주민들끼리 결합한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지역에너지센터가 그 예다. 이유진 이사는 “유럽의 에너지자립 사례를 보면, 특정 지역에 맞게 지역 주민들의 에너지 수요관리나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에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연구조직이나 NGO가 있다”며 “에너지 전환을 위해선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도울 중간지원조직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이승빈 기자 bean@

사진|김소현 기자 sos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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