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의 화폐적 안정성을 향한 도전과 한계
암호화폐의 화폐적 안정성을 향한 도전과 한계
  • 고대신문
  • 승인 2021.03.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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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연구실 ‘암호화폐의 안정성에 관한 이론 및 실증 연구’

 

백종성 경북대 경제학과, BK21 Post-Doc.경제학 박사
백종성 경북대 경제학과, BK21 Post-Doc.경제학 박사

 

  본고는 암호화폐(crypto-currency)를 신용의 위계에 기반한 화폐이론을 통해 고찰하고, 화폐적 안정성 측면에서 새롭게 등장한 암호화폐 중 하나의 유형인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을 해석한다.

 

화폐의 본성과 신용의 위계

  화폐의 기본적 특징은 보편적 수용가능성(acceptability)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상품화폐론과 신용화폐론의 주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경제적 교환에 초점을 둔 상품화폐론에 따르면, 어떤 상품이 교환에서 화폐의 구실을 하는 것은 그 상품 자체가 내재적인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화폐의 구실을 할 수 있는 상품은 복수로 존재할 수 있지만, 교환에 관련된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쟁을 통해 시장에서 교환에 용이한 특정한 상품이 화폐로 선택된다.

  하지만 교환이 아닌 사회적 관계에서의 화폐의 역할에 주목한 신용화폐론에서, 화폐는 상품이 아닌 신용으로 이해된다. 모든 경제주체는 화폐 매개를 통해서 교환을 실현하므로, 모든 교환은 지급을 내포한다. 각 경제주체는 수많은 채권-채무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데, 이는 경제 내에 다양한 화폐, 즉 지급수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신용화폐론도 복수 화폐의 존재를 전제한다. 더욱이 상품화폐론과 달리 신용화폐론에서는 화폐 사이에 불완전경쟁을 허용한다. 경제활동에서 각 경제주체는 차용증서를 발행할 수 있고, 이 차용증서는 지급수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수용가능성은 누가 발행했느냐에 따라 상이하다. 신용의 위계(the hierarchy of credit)에서 높이 위치할수록 다른 경제주체들에 의해 더 잘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에서의 역사적 과정을 보면, 민간은행이 중앙은행 없이 혹은 중앙은행과 같이 화폐를 발행하다가 점차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로 수렴하는 시기를 확인할 수 있다. 결국 화폐는 하나의 이상적인 형태를 유지한 것이 아니라, 지급결제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해왔는데, 이는 경제 내에 다양한 화폐가 존재할 수 있고, 이런 화폐는 수용가능성에 따라 위계를 형성한다는 점을 지지한다.

  또한 이런 다양한 화폐의 동시적 존재라는 분권적 흐름은 국가적인 청산과 지급결제체계의 중앙집중적 흐름과 따로 떼어 사고할 수 없다. 즉 화폐의 안정성은 위계에서 더 상위에 있는 화폐로의 태환과 지급시스템의 완결성 등으로 구체화된다.

이중 지급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비트코인 이후 다양한 암호화폐들이 등장했다.
이중 지급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비트코인 이후 다양한 암호화폐들이 등장했다.

 

암호화폐의 특징과 취약성

  암호화폐는 화폐로서의 가능성 측면에서 여전히 사회적으로 합의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여러 국제기구와 각국 중앙은행에서는 주로 암호자산(crypto-asset)이라고 통칭하는데, 이는 화폐가 아님을 강조함과 동시에 현실 경제에서 주로 투자의 대상이 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원장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시스템에 바탕을 두고, 중앙은행이 아닌 누구나 발행 가능하며, 중개기관이나 중개기관이 제공하는 계정 없이 누구나 직거래 가능한, 디지털화폐의 일종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디지털 형태의 지급수단은 복제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중지급의 개연성을 가진다. 비트코인(bitcoin)은 이중지급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는데, 최초 거래 이후의 모든 거래를 연결한 원장(ledger) 파일을 각각의 이용자가 보관하고, 그 원장에 근거하여 가상 공동체 내의 이체를 직접 검증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런 분산형 시스템은 중앙의 운영기관이 원장을 관리하고 모든 거래를 검증하는 시스템과 달리, 상당한 비용을 요구한다. 특히 확장의 제한, 불안정한 가치, 취약한 신뢰 등은 암호화폐가 지급수단으로서 기능하는 데에 장애로 작용한다. 거래 증가에 따라 각 거래기록을 합한 데이터 원장 처리가 정체되고, 거래 처리에 필요한 수수료가 증가하는 등 확장이 제약된다. 다음으로 안정성을 보장할 중앙기관이 부재한 상태에서, 작업증명과 유효성 검증이라는 정해진 규약에 따라 공급되므로, 수요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화하기 어렵다. 즉 암호화폐 가치가 매우 변동적이다. 마지막으로 지급의 완결성(finality of payment)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거래가 진행되어 원장이 업데이트되었다 하더라도 악의적인 공격자가 네트워크 전체연산능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 위·변조의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연산능력의 상당 부분이 소수 채굴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암호화폐 보유 역시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위험을 안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연구가 암호화폐의 화폐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으며, 그 이유로 화폐로서의 핵심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점이나, 체계적인 화폐시스템의 결여로 인해 신뢰가 부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암호화폐는 안정성이 낮고 가격변동이 심하여 거래의 지급수단으로서 한계가 있다.
암호화폐는 안정성이 낮고 가격변동이 심하여 거래의 지급수단으로서 한계가 있다.

 

스테이블 코인의 화폐적 가능성과 한계

  한편 비트코인 이후 다양한 유형의 대안적인 암호화폐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가치의 안정성에 초점을 둔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유형이 있다. 이는 암호화폐의 안정성이 낮고 가격변동이 심하여 경제주체들이 거래의 지급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가격변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화폐 또는 자산과 연동시켜 안정성을 보장하는 암호화폐다.

  스테이블 코인은 크게 법정화폐 담보형, 암호화폐 담보형, 그리고 무담보형 등으로 구분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법정화폐 담보형은 특정한 기업 또는 기관이 자신의 은행계좌에 달러 등의 법정화폐를 담보로 예치해두고 그에 상응하는 코인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테더(Tether), 트루USD(TrueUSD) 등이 있다.

  테더는 2019년 8월 기준으로 약 40억 개가 발행되어 있으며, 그 가치는 달러로 대략 40억 달러(USD)에 달한다. 달러에 대한 일종의 대체재로 이용되기 위해서 달러와 1:1의 교환비율이 유지되어야 하므로, 테더의 발행사는 테더 발행량에 상응하는 달러 예금을 보유하는 방식으로 교환비율을 유지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암호화폐 생태계 내에서 청산소와 최종대부자 구실을 할 공식적인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환비율의 고정을 위해 완전지급준비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발행사의 주장대로 테더 발행량에 상응하는 달러 예금이 보유되어 있다면, 테더는 달러화 예금에 대한 지급을 약정하는 증서로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테더 발행사의 대차대조표에는 자산 측면에 달러화 예금, 부채 측면에 발행된 테더가 기입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테더 발행사는 테더를 발행하면서 이를 달러로 태환해 줄 것을 약속한 것이다.

  이처럼 스테이블 코인은 기본적으로 다른 자산의 가치에 의존하는 방식을 통해 가치의 안정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신용에 위계에서 더 많이 받아들여지는 상위의 위치를 점할 수도 있다. 신용의 위계는 여러 차용증서, 즉 화폐들이 위계를 형성하는 일종의 피라미드라고 볼 수 있으며, 여러 차용증서는 수용가능성에 따라 층위를 형성한다. 가장 낮은 단계부터 가계-기업-은행-중앙은행의 차용증서가 순서대로 위치하고, 각 층위 차용증서의 청산에는 그보다 상위의 차용증서가 사용된다. 예컨대 가계의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회사채나 은행권이 이용되고, 기업의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은행권이 사용되듯이 말이다. 따라서 일부 스테이블 코인이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나 은행권으로 태환될 수 있다면, 이는 신용의 위계에 스테이블 코인이 자리잡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가계와 기업의 차용증서-스테이블 코인-은행화폐-법정화폐의 순서가 형성될 수 있다.

(그림) 피라미드로 표현된 신용의 위계
(그림) 피라미드로 표현된 신용의 위계

 

  하지만 테더 발행사가 과연 그만한 달러예금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보유한 달러는 어떤 은행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는지 충분히 확인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2017년부터 몇 차례에 걸쳐 발행량에 상응하는 예금 보유를 확인하는 회계와 법무법인 등의 보고서가 제출된 적 있지만, 이는 단지 확인 시점의 예금 액수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평균적인 잔고, 달러가 예치된 은행과 예금 방식 등에 대한 객관적인 확인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태환 비율의 유지와 가격 안정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갑자기 테더 보유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여 테더를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가 급증하면, 이는 태환 비율 유지에 장애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적인 교환 비율이 유지되지 않으면, 테더를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는 더욱 커지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게다가 주요 암호화폐 중의 하나의 위험이 다른 암호화폐로 전염되는 과정도 수반된다. 결국 이 과정에서 테더의 가격 안정을 통한 지급수단으로의 기능은 더는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가 될 수 있다.

  물론 테더가 특정한 기업의 통제 아래 다른 암호화폐에 비해 안정적으로 가격을 유지하고 있고, 암호화폐 생태계 내에서 안정적인 암호화폐로 인식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교환비율이 유지되고 적어도 거래소 단계에서 청산이 이뤄지더라도, 청산의 제도적 뒷받침이 없으며 최종대부자 기능이 부재하기 때문에, 뱅크런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테더만이 아니라, 스테이블 코인으로 통칭되는 여러 암호화폐 또한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테더를 필두로 한 스테이블 코인이 발행량만큼의 달러를 보유하려고 하는 이유는 암호화폐 생태계가 중앙은행을 비롯한 통화규제와 감독 기능에서 분리되어있다는 당초 비트코인의 설계사상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분권화되고 자율적인 지급시스템의 구축이라는 비트코인의 사상과는 달리, 암호화폐의 안정성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발행과 운영상에서의 중앙의 통제에 더해, 중앙은행과 같은 최종대부자 기능을 수행할 존재를 필요로 한다.

 

  본고는 백종성 (2020), <암호화폐의 안정성에 관한 이론 및 실증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에서 내용의 일부를 발제하였습니다.

 

 

KU연구실 너머

 

  이 연구는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화폐적 현상에서 화폐의 의미를 찾아보겠다는 목표를 갖고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편으로 화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화폐 이론을 공부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 암호화폐 가치가 급변하면서 화폐로서의 의미를 논하기가 어려워지는 곤혹스러운 상황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지도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의 가르침과 같이 공부하던 선후배들의 조언 덕에, 부족하나마 학위논문으로 쓰게 되었습니다만, 여전히 앞으로 채워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화폐 이론을 공부하며 접했던 아글리에따(Michel Aglietta)나 잉엄(Geoffrey Ingham)의 문헌들은 화폐의 성격에 관해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었음에도, 일부 문헌을 읽고 정리한 것에 그쳐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졸업한 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런 글을 쓸 기회를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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