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지은이), 백원담(옮긴이) <br>
<인생> 위화(지은이), 백원담(옮긴이)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한 노인이 지나가는 한 남성에게 자신의 인생을 서술하며 시작된다. 이 노인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젊은 날들을 도박에 바쳐 집안의 재산과 가족 모두를 잃어버렸다. 한평생을 누군가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돈에 대한 걱정조차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집안의 미래를 돌이켜 보상해야 한다. 하지만 삶은 그에게 소중한 존재들을 전부 앗아가 그를 인생의 끝으로 몰아버렸다. 뻔한 클리셰를 연상시키는 이 소설이 어떻게 많은 이들에게 삶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었을까.

  가족을 죽음이라는 존재에게 빼앗겨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삶은 어떠한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가족은 평안함과 행복을 주는 존재일수도, 누군가에겐 고통과 악몽을 연상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푸구이에게 가족이란 그저 자신의 삶을 빛내줄 장신구 그 이상 또는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재산을 탕진한 이후에서야, 그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내려 애쓰지만 그들은 전부 찰나의 순간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삶의 끝을 맞이하고 만다. '인생'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부여된, 삶을 살아가는 권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이 짊어지는 삶의 무게를 결코 평준화할 수는 없다. 살아갈 권리는 주어졌지만 우리 삶의 권리는 늘 환경과 운명에 의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다. 권리를 행사할 순간조차 우리 의지대로 온전히 살아갈 수만은 없다. 푸구이의 삶도 그러했다.

  “사람이란 말일세, 살아 있을 때 아무리 고생을 많이 해도 죽을 때가 되면 자기를 위로할 방법을 찾는 법이라네.”

  그는 본인의 의지대로 방탕한 삶을 살아왔지만 운명은 그를 결국 어두운 삶의 내막으로 내몰았다. 자신이 마음을 굳건히 먹은 순간부터는 지속적인 운명의 장난에 휘말려 그의 의지대로 평탄하게 진행되는 일이 드물었다. 비록 젊은 날의 실수로 인해 뒤틀려진 인생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인생이 더욱 찬란히 빛나는 이유는 비참하게 내몰려진 삶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지속적으로 되뇌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끝없는 비극의 굴레에도 푸구이는 운명을 거슬러 본인의 삶의 주도권을 되찾으려 노력했으며, 결국 운명은 그의 끈질김에 굴복했다.

  최근 수많은 이들이 스스로 하늘의 별이 되길 택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자주 일어나곤 한다. 어쩌면 삶의 벼랑 끝에 몰려있을 당신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이 소설의 유일한 모토, ‘삶을 포기하지 말 것’. 이기적인 모토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조차 우리의 의지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마당에 어찌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러나 살아나가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 비록 각자 주어진 인생의 시작점은 다르더라도 각자의 굴곡을 메꾸고 다듬어가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주도권을 다시 찾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송나영(미디어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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