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엮으며 책을 읽으며, 박완서를 만나다
책을 엮으며 책을 읽으며, 박완서를 만나다
  • 성수민 문화부장
  • 승인 2021.04.04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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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움마저 따뜻했던 우리들의 문인

출판사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 인터뷰

사진제공│정은숙 대표
사진제공 │ 정은숙 대표

 

- 박완서 작가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1993년, 벌써 30여 년 전이네요. 출판사‘세계사’의 편집장으로 일할 때, 선생님의 문학 전집 출간을 담당했습니다. 한번에는 출간할 수 없을 정도로 작품 수가 많았어요. 1차분부터 차근차근 내기로 하고, 선생님을 여러 차례 찾아뵀습니다. 디자인이며 교열원칙이며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상의를 했죠. 그때 선생님이 계셨던 방이동 아파트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후에 구리시 아치울이라는 마을에 노란 집을 지어서 이사 가셨는데, 업무차 방문이었지만 갈 때마다 소풍 가듯 기쁘고 좋았어요. 선생님을 뵙는다는 건 그런 설렘이 있었죠.”

 

- 출판인이 본 작가 박완서는

  “책 만드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셨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편집자 의견을 항상 귀담아 들으셨고, 마감 기한을 엄격하게 지키셨어요. 출판인 입장에서도 정말 최고의 저자셨죠.

  박완서 선생님은 ‘거절의 미학’을 아는 분이셨습니다. 출간하시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됐기 때문에 많은 매체에서 인터뷰나 칼럼을 청탁했고, 여러 출판사로부터 계약 관련한 연락을 자주 받으셨습니다. 제가 곁에 있을 때도 연락이 온 적이 있었는데요. 그 전화 통화에서 매우 정중하고 단호하게,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하실 수 없는 일은 거절하셨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거절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연락한 사람이 잠깐은 서운할 수 있겠지만 일을 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헛된 희망을 주지 않으니 ‘희망 고문’은 없는 셈이잖아요. (웃음) 마음은 따뜻하고, 일에는 철저하신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 2018년, 대담집 <박완서의 말>이 세상에 나왔다

  “박완서 선생님이 떠나신 직후 큰 따님인 호원숙 작가님께 박 선생님의 마지막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의 원고를 받아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이후 ‘선생님의 새로운 원고는 세상에 없겠구나’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지냈어요. 그러던 중 호원숙 작가님으로부터 선생님의 서랍에 생전 인터뷰하신 자료들이 정리돼 있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죠. 그래서 바로 <박완서의 말> 편집에 착수했습니다. 고정희 시인, 공지영 소설가, 피천득 수필가 등 선생님을 인터뷰했던 분들께 ‘박완서의 말’을 책으로 묶는 데 동의를 구했습니다. 모두 반가워하시고 좋아하셨어요. 그렇게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이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 출판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점은

  “어떤 인터뷰에서도 꾸며서 말씀하시는 법이 없었어요. 인터뷰 원고를 읽으면 선생님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말과 글이 같은 분이셨죠. 어떤 대담 진행자의 ‘저소득층 여성의 문제를 왜 다루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질문은 제 약점을 건드린 거예요. 제가 중산층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에는 언제나 승복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잘 아는 것밖에 쓸 수 없는 것이고, 제게 있어서 소설이란 뭔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저리고 아프면서 끓어오를 때 써지니 참 곤란하고 어렵네요’라고 답하셨어요. 이 대목에서 가슴이 쿵쿵 울리더군요. 자신의 한계와 소설관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답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 기일마다 아치울을 찾는 모임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2011년 1월 22일 장례식장에서 만난 문인들이 매 기일마다 아치울 선생님 댁에 자연스럽게 모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리워 찾아오는 문인들을 유족분들께서는 늘 기꺼이 맞아주십니다. 제사를 끝내고 나누는 식사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 무슨 축제 같아요. 기일에는 모이는 사람이 워낙 많아 좁혀 앉다 보면 생전 선생님이 사용하시던 침대까지도 침범해요. 선생님 침대에 앉아 문학 이야기도 나누고 선생님 생전에 함께 겪었던 일화도 소개합니다. 새롭게 판을 바꾸어 출간되는 선생님 신간을 함께 읽기도 하고요.”

 

- 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고정희 시인의 말을 인용할게요.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라는 말을 자주 되새깁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에는 어렵고 난해한 문장이 없습니다.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죠. 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세태 풍자나 해학, 날카로운 혜안은 문학적 깊이를 갖고 있습니다. 대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작품들이죠. 지금 읽어봐도 ‘낡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 영원히 새롭고 신선하다는 점이 선생님작품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을 대하는 성실한 태도, 자신의 작업에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웠던 삶의 자세는 후배 문인들이 높이 기리고 배울 만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영원한 현역’은 세대를 구분 짓지 않는다

필사 모임 ‘박완서가 그리울 때’ 류경희 독서활동가 인터뷰

사진제공 │ 류경희 독서활동가
사진제공 │ 류경희 독서활동가

 

- 박완서 작가의 오래된 독자라고 들었다

  “선생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30여 년 전, 시골에서 올라와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하던 20대 초반 때였어요. 매일같이 회색 도시의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을까’하고 생각했었죠. 청춘이라는 이름을 달고 무성한 고민을 하던 시기였어요. 그때 당시에 어렵지 않으면서도 설득되는 박완서 작가의 문체에서 위로를 받았어요. 편안한 사람과 수다를 떠는 느낌이었죠. 이후 작가님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무조건 사서 읽었습니다. 당시에 장편소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를 사서 소장했는데, 지금 꺼내보니 색이 다 누레졌네요.”

 

- 필사 모임은 어떻게 시작됐나

  “2018년에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거기서 박완서 선생님의 <그 남자의 집>이라는 작품을 소개하더라고요. 읽다 보니, 선생님이 유독 더 그리워졌어요. ‘그리움은 축복’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죠. 선생님 문학을 좋아하는 팬들과 이 그리움을 함께 달래보자는 취지로 2019년부터 필사 모임 ‘박완서가 그리울 때’를 운영했습니다. 지금까지 단편 소설 40편, 장편 소설 5권, 산문집도 5~6권 정도를 다뤘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인원을 모집하는데, 3월 30일이 15기 마지막 날이에요. 여태껏 150분 정도가 우리 모임을 거쳐 가셨네요.”

 

-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단체 채팅방에 필사할 내용을 알려드릴 때, 참여자분들께 작품 구절에 대한 분석과 단상을 함께 써보라고 미션을 드려요. 대전에 사시는 한 여자분이 매번 A4 1페이지 반을 넘길 정도로 길게 단상을 쓰시더라고요. 작문 욕구가 굉장히 강하신 분인 것 같아서 따로 말씀을 드렸어요. 글이 너무 좋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써보시고 공모전에도 내보셨으면 좋겠다고요. 그랬더니 이분이 정말로 공모전에 나가서 당선이 되셨어요.

  박완서 선생님도 오랫동안 집에서 살림을 해오시다가 40세의 나이로 여성동아에 이 당선돼서 등단하셨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살림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딘가 허전한 기분과 허기 같은 것들을 도저히 채울 수가 없으셨대요. 저희 필사 모임에 오시는 분들도 박완서 선생님께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문학적 허기, 글쓰기를 향한 욕망을 갖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만나면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결국은 본인의 글을 쓰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이에요.”

 

- 박완서 작가가 살아온 시기나 작품 속 배경이 현재 젊은 세대와는 괴리가 있을 텐데. 모임의 연령대가 궁금하다

  “2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까지, 스펙트럼이 넓어요.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다 젊은 분들만 있는 건 아닌 것처럼요. 젊은 세대도 박완서 작가를 읽어볼까 생각들 많이 하셔요. 오히려 나이가 있으신 분들보다도 30대, 40대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 주로 노년과 과거를 다루지만, 절대로 진부하거나 뒤처진 사회를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제가 필사를 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작품 중에 좋은 것들이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1977년도에 발표된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이에요. 선생님의 여느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게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차이가 있다면, 전쟁의 잔혹성이나 이데올로기적 비극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노년의 여성적 삶에 대한 인식을 다뤘어요. 우리 사회는 할머니라는 존재를 약간은 중성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반면 박완서 작가 작품에서 할머니는 ‘여성’이라는 성별로서 사회적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거든요. 21세기에 조명되는 이런 이슈들을 70년대 당시에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굉장한 선구안을 갖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 시대를 넘나드는 박완서 문학의 가치는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은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어요. 노년의 사랑에 관한 작품이라도 상실과 소외, 고독의 문제, 성과 사랑 정체성 찾기 등 세대와 관계없이 누구나 고민하는 지점을 다루고 있거든요. 단지 그 배경을 한국 전쟁이나 노년의 이야기로 설정해뒀을 뿐이고요. 공감을 부르는 박완서 소설은 물리적인 시간을 극복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 │ 성수민 문화부장 sky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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