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부름에 응답해온 고대

고대다움 본질 경시됐다는 비판도

뉴노멀 고대다움에 대한 논의 필요

 

본교 백주년기념관 뒤편에 위치한 호상. 지구 위에 호랑이가 앉아있는 형상으로,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라’는 호상비문과 걸맞는 위엄을 보여준다.
고연전에서는 승리의 순간, 뱃노래가 울려퍼진다. 학생들은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열띤 응원을 펼친다.
본교 사회공헌원은 봉사활동을 통해 공동체를 생각하는 고대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고대’. 우리를 가슴 뛰게 만드는 그 말. 고대만의 끈끈함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우리는 고대다움이라는 말을 쓴다. 즐거운 놀이판에서도, 불의에 항거하는 현장에서도 우리는 고대다움을 잃지 않는다. 각자가 생각하는 고대다움의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고대인이라면 누구나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 본교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고대다움의 저변을 살펴봤다.

 

  #1 ‘고대이름 아래 어깨를 나란히 하다

  고대의 끈끈한 정체성은 고대문화 곳곳에 깃들어 있다. 구성원들 간의 돈독한 정은 의리와 화합의 전통을 계승한다. 국내 대학 중 졸업생을 교우라고 부르는 학교는 고려대가 유일하다. ‘같은 학교의 우애 있는 친구라는 뜻의 교우는 고려대를 졸업하면 모두 서로의 벗이 된다는 단결력을 보여준다. 학교를 떠난 후에도 교우들은 교우회를 통해 졸업생들끼리 친목을 다지고 모교의 발전을 도모한다.

  교우회(회장=구자열)는 학교 건축기금, 발전기금 등 매년 20억 원 이상의 장학금을 후배들에게 지원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대외협력처와 함께 코로나 극복 고대사랑 기금 캠페인을 추진해 12억 원 이상의 기금을 모으는 등 어려운 상황 속 내리사랑을 보여줬다.

  응원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입실렌티와 고연전으로 대표되는 축제에선 모든 고대인이 하나 되는 총화의 장이 열린다. 올해로 6년째 본교 응원단(단장=노예찬)에서 활동하고 있는 노예찬 응원단장은 처음 응원문화를 접했던 새내기 새로배움터를 회상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낯선 노래에 맞춰 신나게 응원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지금은 응원의 열기를 피부로 느끼진 못하고 있지만, 응원이야말로 본교 구성원을 하나로 단결하게 만드는 끈끈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고연전에서 득점 후 뱃노래가 울려 퍼지면,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 붉은 물결을 만든다. 경기 후에도 열기는 지속된다. 고연전의 백미는 안암동 거리에서 펼쳐지는 기차놀이. 기차놀이를 하는 학생들이 서로를 얼싸안고 가게에 방문하면, 안암동 상권은 음식이나 물품을 나누며 한마음으로 학생들을 맞는다.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도 고려대학교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화합한다. 이은주(심리학과 84학번) 교우는 민주화 시위의 열기와 학구열이 뒤섞여있던 80년대 캠퍼스를 떠올리며 말했다. “조용히 학업에 정진하던 친구들부터 최루탄 연기 속에서 정의를 부르짖던 친구들까지. 그렇게나 다양한 생각들과 행동들이 고대에서는 아무런 배척 없이 공존했어요.” 이은주 교우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어울리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당시 고대다움을 몸소 체감했다고 전했다.

 

  #2 탁주 위에 민족의 고뇌를 띄우다

  “마셔도 고대답게 막걸리를 마셔라!” ‘막걸리찬가의 가사 중 일부다. 사발식 문화 역시 막걸리대학교라는 별칭에 걸맞는 고대만의 독특한 문화다. 사발식은 과거 신입생들이 막걸리찬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막걸리 한 사발을 비우던 전통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보성전문학교의 학생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종로경찰서 앞에서 민족의 울분과 함께 술을 토해내던 행동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다만 유래의 신빙성 자체에 대한 비판과 지나치게 야만적인 문화라는 지적이 제기된 이래, 사발식은 그 형태를 바꾸거나 사라져가는 추세다. 김진규 노어노문학과 학과장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는 반기지만, 사발식이 표방하던 민족정신의 의의는 후배들에게도 계승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이 많았던 과거에 가장 친숙하고 대중적인 술은 막걸리였다. 조용길(경영학과 69학번) 교우는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았던 학생들에게 막걸리는 안주 없이 싼 가격에 마실 수 있는 최고의 술이었다시위 현장에 나섰다가 경찰서에서 두들겨 맞고 돌아온 날에도 동기 자취방에 모여 막걸리 술판을 벌였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걸걸함이 우악스럽게만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묻자, 홍영기(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배들의 야성이 불의에 맞서 역사를 바꿔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족과 민주 정신이라는 무거운 사명을 막걸리에 녹여 호탕하게 풀어낸 멋과 풍류는 여전히 고려대의 전통으로 남아있다.

 

  #3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항거정신

  마동훈(미디어학부) 교수는 19852김준엽 전 총장의 졸업 축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역사의 신을 믿어라.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정의와 진리와 선은 반드시 승리한다.” 전두환 정권 치하 문교부의 강압에 의한 사퇴 전 마지막 연설이었다. 마동훈 교수는 졸업식에서 연설을 듣고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을다짐했다. 김진규 학과장은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선배들을 따라 김준엽 전 총장의 사퇴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부조리했던 시대상황과 정권에 대한 울분을 터뜨리며 대학생활을 시작했다아직까지도 그때의 깨달음을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고대 저항정신의 뿌리는 1960년의 4·18 의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 정의, 진리의 이념을 교시로 둔 본교 학생들은 당시 3·15 부정선거에 반발해 궐기했으며, 4·18 의거를 일으켜 대학은 자유와 반항의 표상이라는 문장 아래 새 역사를 썼다. 이는 대학 사회의 첫 번째 학생 시위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4·18 의거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행동성이 없는 지식인을 배격한다고 선언했을 만큼, 고대인에게 사회 부조리 앞에 행동하지 않는 지성이란 부정의한 것이었다.

 

  #4 공동체의 요구에 따라 실천지성 발휘

  야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과거 고려대는 반쪽짜리 인간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김상협 전 총장은 제6대 총장 취임사에서 치밀한 지성과 대담한 야성을 한 몸에 지녀야 한다며 비판을 수용하고 한 단계 발전된 고대다움을 제시했다. 또한 고대다움의 자긍심이 변색된 고뽕은 연고주의와 학벌주의를 심화시키기도 한다. 정과 끈끈함을 방패 삼아 행해지는 부조리는 여전히 고려대 안팎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김형남 전 국가브랜드위원회 자문위원은 이러한 양상이 끈끈함에 대한 협소한 이해와 고대다움의 본질인 공동체에 대한 경시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고대다움의 본질은 공동체 의식에 있으며, 여기서 공동체란 고려대 구성원만을 포함하는 게 아닌 민족과 세계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고대다움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홍영기 교수는 본교의 공동체 정신에 대해 자기 자신의 사소한 이해에 연연하기보다는,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자세라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독립과 교육을 위해 힘쓰는 것, 60~70년대는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이 한국 사회의 과제였으며, 이러한 시대정신은 80년대는 민주화, 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서는 현대화와 세계화의 형태로 변모해왔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고려대는 언제나 공동체가 요구하는 대학의 역할을 찾아 수행해 왔다. 김진규 학과장은 오늘날 고대인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생, 공영의 가치 실현을 위해 현시대의 우리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 찾는 노력이 바로 고대다움이라고 말했다.

  예로부터 고려대는 격변하는 역사 속 지성으로서 사회변화에 앞장섰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투쟁했던 고대정신은 작금에는 공동체의 안녕과 발전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본교 사회공헌원(원장=어도선 교수)실천적인 지성인의 양성이라는 목표 아래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본교 인근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교육멘토링 ‘KU 미래나눔학교와 비대면 화상교육 봉사 마이크책등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프로그램이 중심이 되며, 환경 보호를 위한 해외봉사 또한 기획 중이다. 어도선 원장은 변화하는 사회에서 잃지 말아야 할 가장 근본적인 가치는 인간성이라며 정진택 총장이 제시한 사람고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성은 지식과 다릅니다. 깊이 있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간성과 지성을 위해서는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죠. 대학사회에 사회적 책임의 선도적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고대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는 고대다움의 전승에도 장애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고대다움을 체득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뉴노멀 시대 고려대의 정체성 혼란을 걱정하는 것도 기우는 아니다. 하지만 고대다움의 형태는 시대변화에 발맞춰 달라져 왔고, 고려대는 위기의 순간에도 도전과 성찰을 거듭하면서 상황을 극복해 나갔다. 고대다움을 계승하는 고대인들이 있는 한 고대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맥을 굳건히 이어가는 것, 또 흐름에 맞춰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현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이현민·장예림 기자 press@

사진서현주 기자 z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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