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조앤 스콧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조앤 스콧

  대다수 사람에게 페미니즘은 사소하고 주변적으로 다가온다. ‘인류 보편’이 아닌 여성에게만 한정된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인권적 차원에서 페미니즘에 신경 쓰는 건 좋지만 누군가의 말마따나 다른 주류적 문제를 제쳐두고 다름 아닌 페미니즘에 주목하라 하는 건,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는 격이다.

  그러나 그간의 세기가 여성을 단순히 ‘놓치기만 한 척’ 하는 건 착각이자 기만이다. 역사는 철저히 여성을 고려해 왔으며 여성 없이는 전개될 수도 없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여러 제도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분리를 고집스럽게 주장해 젠더위계질서의 해체를 막았다. 이런 구성을 통해 여성은 포착되고 또 배제됐다. “그리고 페미니즘이 그 불안정한 존재 의미를 확인했던 것은, 여성을 배제하여 성차의 문제를 지워 버리려고 시도한 이론들에 비판적으로 개입했을 때였다.”

  여기서 ‘페미니즘 위대한 역설’이라는 원제의 의미가 드러난다. 페미니즘은 “자연이 부여하고 법이 비호한” 성차를 통해 구성된 모순된 구조 속에서 성차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동시에 성차가 부적절하다고 주장하려 애쓰는 모순을 말하는 역설적 표현이다. 페미니즘은 개인의 ‘창의성의 산물’이거나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역설만을 던지는 페미니즘이 사실은 우리 세계의 모순, 역설, 모호성이 빚어낸 결과임을 보여준다. 드로앵은 부성뿐만 아니라 모성 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된 의무임을 강조해 의무로부터 비롯되는 시민의 권리를 얻고자 했다. 오클레르는 가부장 아버지를 자처한 국가와 그 관심 대상이었던 사회(여성)의 관계를 전복시키려고 했다. 펠티에는 여성성이 격하되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위해 여성성을 버리고 남성성을 얻고자 한다. 모순된 구조를 짚고자 하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역설을 남긴다.

  즉 페미니즘은 해일 앞 조개 줍기처럼 선심 쓰듯 탐구되어야 할 독립적이고 주변적인 주제가 아니다. 거시적인 시류를 보지 못하고 땅바닥에 허리를 굽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시대마다 달리 몰아치는 물살로부터 등장해 그 너머를 간파하려는 대안적 현실 인식이다. “페미니즘이 역설을 구현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이 재현하는 모든 현재 상태의 토대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사소하거나 주변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책은 왜 여성이 제기한 골치투성이 역설을 보는 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를 보는 것인지 역설한다.

  현재 한국도 여성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법에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보부아르의 말대로 부분적 성취일 뿐 실질적 평등의 단계는 아니다. 여성할당제의 존재로 여성 비례대표 국회의원 비율 30%가 겨우 지켜지는 현재 한국에서, 그리고 대의제 실시 이후 여성 피선거가 금지된 적 없었음에도 여성 대통령은 아직까지 남성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세워진 1인에 불과한 현재 한국에서, 페미니즘 리부트는 이 사회의 어떤 고유한 모순을 폭로하는가?

 

백지은 (문과대 철학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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