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화사업 관련 자료 추가 공개
강제징집 후 총탄 맞아 의문사

본교 민주광장에 설치된 김두황열사추모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김두황(경제학과 80학번) 교우 사망 사건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본교 학생운동을 이끌다 군에 강제징집된 김 교우는 1983년 6월 의문사했다. 2002년 이후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시도가 세 차례 있었으나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최근 보안사의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공작 기록이 다수 발견되면서 지난 1일에 조사개시가 결정됐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새롭게 발견된 자료들이 진상규명 결정에 중요한 근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1983년 3월 김두황 교우는 학내시위를 모의한 혐의로 성북경찰서에 연행돼 신체검사도 받지 않고 강제징집됐다. 이후 입대 90일 만인 6월 18일 머리에 총탄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군 당국은 김 교우가 애인의 변심 등 신변 비관을 이유로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족은 그가 운동권 주요 인물이었다는 점과 훈련 우수상을 받을 만큼 군 생활에 잘 적응했다는 점을 근거로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2002년과 2004년 두 차례 이뤄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 조사에서 군 당국이 사건의 경위를 조작한 정황이 확인됐다. 수사기록 상의 사망 장소와 시간이 실제와 다르다는 증언이 여러 차례 나왔고, 유서로 지목된 글은 김 교우의 필체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의문사위는 사인을 확정할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2002년과 2004년 각각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2010년 1기 진실화해위 활동 당시에는 유가족이 조사 미진을 이유로 진상규명 진정을 철회하면서 조사가 무산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5월 27일 제1차 진상규명 조사개시 결정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근 조사개시를 결정한 2기 진실화해위는 김두황 교우가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의 ‘녹화사업’에 의해 사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 중이다. 녹화사업이란 1980년대 보안사가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징집한 뒤 사상교육을 시행하고 대학 내 ‘프락치’로 활용한 정부 차원의 공작이다. 피해자 증언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고문 등 육체·정신적 가혹행위가 가해졌다. 의문사위는 2004년 보고서를 통해 보안사가 김두황 교우에게 강도 높은 녹화사업을 실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근거로 사망 시점에 정보기관이 그가 활동하던 학회를 집요하게 수사했다는 점, 보안부대 활동관이 그에 대한 동향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양창욱 김두황추모사업회 회장은 “김두황의 죽음이 자살로 치부되는 것이 가슴 아프다”며 “이번 조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우와 함께 강제징집된 녹화사업 피해자이기도 한 그는 “학생들이 80년대 엄혹했던 시대적 상황을 기억해주길 바란다”며 녹화사업 관련 사건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글 | 김선규 기자 starry@

사진 | 서현주 기자 zmong@

사진제공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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