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공학의 만남

융합적 사고는 가장 필요한 역량

 

 

  본교 공과대학과 박물관이 협업한 <첨단×유산> 프로젝트가 지난 201910월부터 12월까지 이뤄졌다. 프로젝트는 문화유산과 첨단기술의 교차점에 대해 소개하는 인문학-공학 융합 대중 강연회, 본교 박물관에서 총 10회 진행했다. 강연에서는 인문학과 공학 각 분야의 전문가가 과거의 유산과 현대의 과학기술을 하나씩 선정해 소개했다. 프로젝트 총괄 기획자인 이준호(공과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인문학과 공학의 융합이 활성화되길 바라며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준호 교수를 만나 <첨단×유산> 프로젝트의 시작 계기부터 완료 소감까지 들어봤다.

 

  - 강연회를 제작한 의도는

  “‘융합적 사고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특정 분야의 지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학문이 상호작용해야, 복잡한 문제들을 다각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게 되고 최선의 방안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공학을 전공한 사람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하고,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도 과학적인 지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대학 현장에서 융합에 대한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학문 간 융합이 대학 사회에 활발해지길 기대했고, 이를 위해 시도한 방법이 바로 인문학자와 공학자 간에 대화하는 시간이 포함된 강연회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 강연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였습니까

  “사학과 조명철 교수님을 따라 박물관을 관람한 경험이 있습니다. ‘동궐전이라는 전시였는데, 조명철 교수께서 재미있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동궐도를 설명하면서, 동궐도가 오늘날로 치면 드론의 원리를 똑같이 이용한 작품이라고 하셨습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법으로 그림을 그린 점이 마치 드론과 같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건축사회환경공학부 주영규 교수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때마침 주 교수께서 드론 연구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순간 머릿속에서 조명철 교수와 주영규 교수를 연결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과거의 문화유산과 현재의 첨단기술의 연결고리에 대한 강연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강연은 총 10회로 정하고, 전통유산과 과학기술의 접점을 설명할 수 있는 10가지 사례를 고려대 박물관에서 찾았습니다. 주제가 <첨단×유산>인 만큼, 문화유산과 첨단기술을 어떻게 엮을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 강연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전통 칼인 사인검을 만드는 이은철 도검장의 작업장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은철 도검장은 채광부터 칼에 글자 모양을 새기는 입사까지 칼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직접 관여하는 분이십니다. 실제로 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니, 문득 사인검과 제가 개발한 내진 철근의 조직 구성이 굉장히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인검과 내진 철근의 미세 조직을 살펴보면, 둘 다 내부는 말랑말랑한 페라이트계의 물질로 이뤄져 있고 바깥 부분은 딱딱한 마르텐사이트 물질로 구성돼 있습니다. 사인검과 내진 철근을 함께 소개해, 과거와 현재 우리나라 철강 기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10장의 인명원과 태항아리강연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매번 강연이 끝난 후엔 참여하신 두 교수님과 토론회를 진행했는데, 그때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철학적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강제훈 한국사학과 교수께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삶과 죽음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특정 인물이 사회적으로 기억되면, 물리적으로 죽었어도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산 사람처럼 기억하기 위해서 조선시대 때 유교적인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오민규 화공생명공학과 교수께선 냉동인간과 복제인간 연구를 통해, 현대 과학자들의 고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해 인간의 영원한 삶이 가능해진다면, 앞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복잡한 사안들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없는 상황이라, 인문학자와 공학자 모두가 모여 서로의 다채로운 생각을 나눌 자리가 꾸준히 필요하다고 느낀 주제였습니다.”

 

  - 프로젝트를 통해 기대하는 바는

  “인문대 교수들과 공과대 교수들이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협력할 단초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의의입니다. 두 학문이 예전에는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이번 기회를 통해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됐고 서로의 분야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학문을 전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더 많이 마련돼야 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우리 학교가 대한민국 융합 연구의 선구자가 되길 기대합니다.”

 

| 진서연 문화부장 standup@

사진 | 최혜정 기자 joy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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