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전 깃발 아래에서 한국 스포츠의 뿌리를 찾다
보전 깃발 아래에서 한국 스포츠의 뿌리를 찾다
  • 윤혜정 기자
  • 승인 2021.09.1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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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스포츠 역사 특별전 스케치

  고려대학교 스포츠 역사 특별전 ‘보전 깃발이 날리는 곳에’가 9일부터 본교 박물관(관장=송양섭 교수)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특별전은 보성전문학교(보전) 운동부가 공식대회에 처음 출전한 지 100년이 되는 기념으로 기획됐다. 운동부의 우승 깃발과 유니폼, 사진을 전시해 그들이 스포츠계에 남긴 발자취를 보여준다. 서명일 기록자료실 과장은 “학생들이 이번 특별전을 통해 고려대학교 스포츠의 뿌리인 보성전문학교의 스포츠 역사를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반전: 운동부의 시작
  1921년 10월, 보전친목회 소속 6명이 제1회 전조선정구대회에 참가한 것으로 고려대 운동부의 역사는 시작된다. 보전친목회는 1907년에 결성된 현재 교우회의 뿌리이다. 박상근, 오병근 교우가 출전한 이 대회를 계기로 정구부를 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1924년 제2회 전조선전문학교 연합정구대회에서 승리하면서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보전 깃발이 처음으로 휘날렸다. 전시회 벽면에는 당시 우승컵 사진과 이를 형상화한 그림이 붙어있다. 1925년 제5회 전조선정구 대회는 보성전문학교가 처음으로 연희전문학교와 대결한 경기다. 보전 정구부는 이 대회에서 3:1로 승리하며 고연전의 뿌리가 된 최초의 보연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정구부 코너를 지나면 축구부의 역사가 눈 앞에 펼쳐진다. 축구부는 1922년에 창설된 이래 명실상부 조선 축구의 기둥으로 성장했다. 1928년 전조선축구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이후 1931년까지 4연패를 달성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승리한 팀에게 주어지는 우승기는 다음 경기를 위해 개최 기관에 반납해야 했고, 한 팀이 3연패를 달성해야 영구보관이 가능했다. 당시 보전 축구부가 4연패를 이루면서 우승기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번 특별전에서 축구부 최초의 우승기를 관람할 수 있다. 고려대 축구부는 수많은 축구 스타를 배출했다. 2005년 대한축구협회에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 7명 중 김용식(30학번), 김화집(29학번), 홍덕영(1947년 졸업), 차범근(체육학과 72학번) 선수는 본교 축구부 출신이다. 김용식 선수가 영국의 선덜랜드의 유니폼을 모델로 제작한 보전 축구부의 실제 유니폼을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이 유니폼 디자인은 90년이 지난 지금도 고려대 축구부의 유니폼으로 사용된다. 

  1928년에 창단된 농구부의 역사 또한 볼 수 있다. 연희전문 농구부와 더불어 한국 농구의 양대산맥으로 자리한 본교 농구부는 1938년부터 1940년까지 전일본농구선수권대회에서 3연패하며 한국 농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 대회에 출전한 상과 선수들과 김광진(보성전문학교 상과) 교수와 김영주(보성전문학교 상과) 교수가 2연패 직후 찍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1929년에 창단된 보전 럭비부는 한국 최초의 럭비팀이다. 럭비부의 로고가 담긴 페넌트 사진이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1930년 전국추계리그에서 처음 우승한 이후 럭비부는 ‘무적함대’, ‘힘의 보전’으로 불리며 한국 럭비를 이끌었다. 페넌트 사진 옆으로 그 당시 보전 럭비부의 기량을 보여주는 신문 기사를 읽을 수 있다. 1934년 3월호 <신동아>에 “오사카 정거장에 내리니까 벌써 ‘에구 키도 크다’하고 모두 놀라면서 어떤 사람은 와서 키를 비교해 보기도 합디다”며 보전 럭비부를 보고 놀란 일본인들을 표현했다.

  이 외에도 1939~41년 세단뛰기 세계랭킹 1위 김원권 교우가 속한 육상부와 훗날 고대 교우회장을 역임한 김성곤 교우가 속한 탁구부 등 15개 이상의 운동부가 보성전문학교에서 활약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는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는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다.

후반전: 보성전문학교와 올림픽
  고려대와 올림픽의 인연은 보전 시절부터 이어졌다. 전시회 벽면에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37학번) 교우가 뛰고 있었다. 그는 1937년 보전 상과에 입학했다. 그러다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민족 영웅이 된 손기정 교우는 모든 학교생활에서 총독부의 감시를 받았다. 결국, 그는 한 학기 만에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이후 계속해서 한국마라톤 발전에 기여한 손기정 교우에게 1997년 고려대는 제1호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태극기를 들고 출전한 1948년 1월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도 보성전문이 함께 했다.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 보전 출신 독립운동가 이원순(12학번) 교우는 스웨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 참석해 조선올림픽위원회의 IOC 가입을 성사시켰다. 덕분에 대한민국 선수들은 생모리츠 동계 올림픽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 올림픽에 총 3명의 선수가 파견됐고 그중 2명이 보전 재학생이었던 이효창(43학번), 문동성 교우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태극기를 들고 위풍당당하게 입장하는 한국 선수단의 사진을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맞이한 두 번째 올림픽인 1948년 7월 런던올림픽에서도 보전 교우들의 활약은 이어졌다. 52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25명의 선수가 재학생 혹은 졸업생이었다. 농구부 안병석(47학번) 교우는 선수단의 기수를 맡았고, 최성곤(41학번) 교우는 올림픽 축구의 첫 골을 넣었으며 역도 선수 김성집(41학번) 교우는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에 첫 메달을 안겨줬다. 

‘보전 깃발이 날리는 곳에 불공평한 사회라도 공평케 되도다’
‘보전 깃발이 날리는 곳에 불공평한 사회라도 공평케 되도다’

연장전: 고려대가 잇는 보전의 열망

  전시실에 들어오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큰 보전 깃발. 프랑스 국기와 같은 색 배치를 보인다. 보전 깃발의 의미를 설명하는 공식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당시 학생들이 기록한 자료에는 보전 깃발과 정의의 여신상 디케가 든 저울이 그려져 있으며 하단에는 ‘보전 깃발이 날리는 곳에 불공평한 사회라도 공평케 되도다’는 구절이 적혀있다. 식민지를 살았던 청년들이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삼색기에 정의와 평등에 대한 열망을 투사한 것이다. 보전 운동부는 스포츠를 통해 식민지 상황 속에서 당대 조선인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지켰다. 서명일 과장은 “나날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장 공평한 분야는 스포츠였다”며 “적어도 경기 규칙이 유지되는 한, 땀 흘린 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1년 지금의 우리는 특별전을 통해 보성전문 시절 운동부의 열정을 마주 본다. 특별전은 10월 30일까지 본교생 모두에게 열려있다.

 

글 | 윤혜정 기자 samsara@

사진 | 문도경 기자 d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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