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꿈 같던 추석 연휴가 끝나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올 때다. 바쁜 일정에 누적된 피로는 여전하고, 연휴 동안 과식한 몸은 무겁게만 느껴진다. 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건만 침대 위에서 꼼짝 못 한다. 안 되겠다. 당장 일어나 몸과 머리를 맑게 하자.

  학교에서 멀지 않은 제기동 약령시는 어르신들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약령시에는 어르신들의 활기와 한약재 향이 가득하다. 그곳에서 청바지에 책가방을 멘 대학생인 나는 도리어 이방인이다. 낯선 거리를 걷다 보면 알록달록한 외관의 깔끔한 전통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차가 아름다운 집, ‘다미가’. 한의원과 연결된 한쪽 벽면에는 한자가 빼곡히 적혀 있다. 국악 선율과 어르신들의 담소가 정겹게 어우러져 들려온다. 일반 카페 음료도 판매하지만, ‘다미가’의 트레이드마크는 사상 체질에 맞춘 한방차다. 네 가지 체질과 여섯 가지 차, 맑은 몸과 마음을 위한 스물네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면 나무 쟁반 위로 정갈한 구성의 음료가 놓인다. 쨍한 색감의 체질별 베이스 약물과 보약의 골수만 골랐다는 약재, 더위를 식히기 위한 냉차까지. 차의 쌉싸름함을 달랠 달콤한 한과도 함께 나온다. 약물이 담긴 주전자에 약재를 우리고, 모래시계가 흐르는 동안 한약재 냄새가 나는 뜨끈한 주머니를 안고 기다리면 차가 완성된다.

  긴장이 풀린 몸에 나른한 졸음이 밀려오던 것도 잠시, 선뜻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까 마신 총명차의 효능이 나타난 걸까. 가을하늘처럼 청명해진 기분을 느낀다. 누군가는 플라시보 효과라 하겠지만, 차를 마시며 보낸 시간은 분명한 회복의 시간이었다. 가게를 나서는 길, ‘얼죽아’를 외치던 이방인의 발걸음은 따뜻한 차에서 우러나오는 그윽한 맛처럼 약령시에 녹아든다.

 

이현민 기자 never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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