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다 알았다 하기엔 스물두 살은 아직 어리다. 그래도 돈 없이는 모든 게 빠듯한 현실임을 안다. “넌 얼마나 모았어?”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듣는 질문이다. 이에 확인해 본 통장 잔고는 거의 ‘0원’에 수렴한다. 버는 족족 써버리던 지난날의 소산이었다.

  꾸준히 돈을 모으고 불리는 친구들도 있다. 수중에 재산이 많으면 안정적이라는 생각에서다. 저위험 혹은 고수익 중, 무엇을 선호하는지에 따라 주식, 투자, 적금 등 재산 불리기 방식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결국 공통된 목표는 종잣돈 모으기다.

  '"월급에 기대 사는 것도 리스크"… 나이 40, 오늘 퇴사합니다'란 기사를 보았다. 중년에 은퇴해 자신의 로망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어느 '파이어(fire)족'의 이야기였다. 젊을 때 바짝 벌어 경제적 여유를 갖춘 뒤, 조기 은퇴하여 여유를 누리는 모습이 꽤 멋져 보여서일까.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파이어족을 꿈꾸는 이들은 전문서적과 유튜브 등을 참고하며 선험자의 삶을 그대로 좇기 바빴다. 파이어족이 되기 위한 기본조건은 ‘짠내 나게’ 살기다. 주식도 하고, 적금도 넣어야 하니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남지 않는다. 소득을 최대한 많이 투입해야 목표한 금액을 빨리 모을 수 있어 검소함은 자연스레 몸에 밴다.

  하고 싶은 일, 사고 싶은 것을 나중으로 미뤄야 한다니. ‘지금의 시간’이 뒷전에 놓이는 것이 나는 싫다. 소소한 수입들이 한 번에 모이는 가장 부유한 때에 잔고의 3분의 1가량을 몰아 쓴다. 시간 되는 친구를 불러 백화점에 들르고, 돈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던 뮤지컬 공연도 예매한다. 몇십만 원이 잔고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 심장이 철렁하지만, 즐거운 경험들이 주는 행복에 후회는 금세 잊는다.

  TV 속 ‘나 이렇게 산다’의 연예인들처럼 주머니 사정이 풍족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일단 즐기고 봐야 할 것 같다. 먼 미래의 해방감을 얻으려 지금의 자유를 포기하기란 참으로 아쉬우니 말이다. 이런 소비도 나름의 투자이고, 씨앗 뿌리기이다. 다양한 곳에 돈을 쓸수록 나의 완성에 다가간다고 생각한다. 체험을 불리는 과정이 넉넉한 통장 잔고보다 더 값진 대가와 배움을 주지 않을까. 씨앗으로 뿌려진 체험들은 길고 긴 인생에서 풍성한 수확으로 돌아오리라 믿는다.

 

정채린 미디어부장 ch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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