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통영까지 4시간. 고향집에 가려면 적어도 4시간을 버스 안에서 꼼짝없이 보내야 한다. 출발하기도 전에 겁부터 났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핑계로 내려가지 말까 하는 고민도 잠깐. 그래도 별수 있나, 추석인데.

  늘 북적이던 외가댁 앞이 도리어 적막하다. 조용히 현관문 번호를 누르니 할아버지가 마중 나오신다. 부엌에 있던 할머니는 손주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겠다고 문 여닫는 소리도 못 들으셨단다. 우리 가족, 할머니, 할아버지만 앉아 있는 거실이 텅 비어 보였다. 코로나 전에는 세 명의 삼촌과 그의 가족들까지 함께했는데.

  할아버지를 만나면 밀린 숙제를 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내게 연락처 정리를 맡겼기 때문이다. 곧 여든이 되는 당신은 휴대전화 사용에 미숙하다. 거기다 글자를 크게 키워도 찡그리며 읽기에 ‘단축번호’ 설정은 필수적이다. 내가 지인들의 번호를 단축번호로 저장하고 나면, 당신은 수첩에 손으로 옮겨 적는다. 수첩에서 찾은 숫자 두 개를 누르면 쉽게 전화가 걸리도록 말이다. 다음은 단축번호 87번, 43번 삭제. 오래전에 “왜 삭제해요?”라고 물었을 때, 당신께선 그 번호가 세상을 떠난 이의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 후로 난 더는 묻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와 바닷가를 산책했다. 밝은 보름달 아래에서 최근 할아버지의 우울에 대해 들었다. 그들은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낸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함께 걷고, 식사를 한다. 그리고 오후 3시가 되면 각자의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 할머니는 아파트 아래 평상으로, 할아버지는 ‘사무실’이라고 부르는 단골 장소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와 함께 모이는 친구들은 스물여덟 분이었다. 하지만 해가 지날 때마다 세상을 떠난 이와 병원 침상에 누운 이들이 늘어났다. 두 자리의 숫자는 이제 한 자리로 줄었다.

  나이가 들수록 이별은 잦아진다. 자식들이 둥지에서 떠나고 가까운 친구와 작별을 하다 보면, 외로움과 상실감이 그 자리에 남는다. 이것은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명절만이라도 그들의 손을 잡아 드리는 따뜻한 날이 되었으면 한다. 4시간을 버스에서 버티며 내려온 보람이 있다. 이렇게 2021년의 추석이 지나갔다.

 

서현주 기자 z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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