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 위해 시작, 이제는 어엿한 동네 인기 명소
경계인 위해 시작, 이제는 어엿한 동네 인기 명소
  • 유승하 기자
  • 승인 2021.10.03 2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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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아자라마’ 스케치

경계선 지능 청년들의 자활 공간

카페운영부터 소통창구까지

 

  관악구 봉천동에는 조금 특별한 카페 ‘아자라마’가 있다. 이곳에서는 음료 제조, 계산과 청소를 비롯한 모든 업무를 경계선 지능 청년들이 직접 해낸다. 아자라마의 초성 ‘ㅇㅈㄹㅁ’는 ‘우쥬럽미(would you love me?)’에서 나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줄 수 있냐는 의미다. 아자라마는 경계선 지능인들을 포함해 독특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공존하는 공간을 꿈꾼다.

 

아자라마를 지키는 경계 청년들

  카페가 위치한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 벽에는 만화가 줄지어 있다. 개업 소식부터 카페에서 진행한 행사까지 만화는 아자라마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모두 담고 있었다. 만화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아자라마 캐릭터가 그려진 유리문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서는 조원준(남·27) 씨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외운 티가 물씬 풍기는 어투로 봉천동 주민인지, 어떤 메뉴를 원하는지, 쿠폰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조원준 씨는 주문을 받은 후 “잘 만들어 가져다드리겠다”고 당차게 외쳤다. 카페를 돌아보며 구경하니 그는 가까이 다가와 “아자라마의 대표 캐릭터와 웹툰 모두 직접 그렸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직접 그린 그림을 올리는 SNS 계정을 자랑하는 것은 덤이었다.

  아자라마에서 일하는 경계 청년들은 서로를 ‘가디언’이라고 부른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주인공들이 우주를 지키는 것처럼 이 공간과 경계선 지능인들을 지키겠다는 의미다.

 

자립의 터전이 되는 곳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에코백부터 비누, 쿠키까지 가지런히 놓여있는 잡화 매대가 눈길을 끈다. 비누들은 아자라마 캐릭터부터 이니셜까지 가지각색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쿠키는 모양이 제각각이긴 하지만 인기가 많아 이미 몇 종류는 다 팔린 상태였다. 모두 경계 청년들이 직접 만든 것으로 수익은 이들의 경제적 기반이 돼 자립을 돕는다.

  아자라마는 잡화점을 운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턴십을 진행하면서 경계선 지능인들의 자립을 돕는다. 경계선 지능 청소년들은 아자라마의 선배 가디언들로부터 카페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를 지도받는다. 인턴십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인턴 가디언이 되어 음료를 만들고 청소하는 법을 배우고 손님들과 소통하며 자립에 한발 더 다가간다.

아자라마에서는 경계 청년들이 직접 만든 물품들을 판매한다.

 

지역주민들에게도 소중한 공간

  카운터 오른쪽 창가에는 ‘앉으면 합격하는 자리’가 있다. 몇 달 동안 같은 자리에서 공부하던 대학생 손님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생긴 명당자리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아자라마는 공부하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났다. 카페에 방문한 날도 합격 명당에서는 과외수업이 한창이었다. 처음엔 경계인들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제 아자라마는 봉천동 주민들도 사랑하는 공간이 됐다. 이에 부응하듯 아자라마에서는 동네 주민들에게 음료 가격을 할인해주는 등 지역사회와 공존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라며 괴로워하기 일쑤였는데 오늘 나눈 이야기를 계기로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카페를 나서려 할 때 화장실로 향하는 길 구석에 적힌 글귀가 눈길을 붙잡았다. 아자라마에서 열렸던 ‘배규하 가디언의 책모임’ 소감이었다. 아자라마에서는 책모임뿐만 아니라 친구 초대의 밤, 자살예방 건강세미나 등의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이날의 아자라마는 경계인의 안식처이자 어엿한 동네의 인기 카페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경계인들과 지역 주민들은 이들이 생각하는 아자라마에 대한 메모를 남긴다.

 

글│유승하 기자 hahaha@

사진│강동우 기자 elli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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