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이 복원된다.

서울이 조선의 수도가 된 이후, 수도의 하수구 역할을 혼자서 도맡아 했을 청계천에 언제 맑은 물이 흘렀으랴 싶지만, 경영인 출신 신임 서울 시장은 청계천을 맑은 물이 흐르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다며 임기 초부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일보」 인터넷 홈페이지 한국i  닷컴에서 회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76%가 청계천 복원에 찬성한다고 한다. 청계천을 복원할 경우 얻게 되는 환경적 효과 만으로도 청계천 복원은 반길만하다. 종로에서 저녁을 먹고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가를 산책하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우니 말이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청계천 복원은 서울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조선시대 청계천에 놓인 다리는 모두 25개. 얼마 전 청계천 지하 탐사를 통해 50년 전 어둠 속에 묻혀버린 광교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청계천을 복원하는 일은 바로 사람을 위한 일이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 후의 모습을 보고 쉬이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청계천을 터전삼아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오늘도 청계천에서 상점을 지키며, 노점을 하며, 수레를 끌며 그리고 오토바이를 몰며 살아가고 있다.

상점들의 갖가지 전시물과 물건들이 인도를 차지해, 인도 위 마저도 지그재그로 걸어야 하는 청계천 상가. 청계천에는 인도 위에 손수레길이 따로 표시돼 있다. 별로 지키는 사람은 없지만 그 만큼 오토바이와 손수레가 많이 오간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신없이 오가는 이것들에 신경쓰며 걸을 필요는 없다. 사람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운전자의 솜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말이다.

분주히 움직이는 다른 사람들의 풍경에 잠시 걷는 사람 마음마저 분주해질 양이면 어느 샌가 수많은 전동 공구들과 기계들이 쭉 늘어선 상가가 나타난다. 그것은 청계 2가에서 3가에 위치한 공구 상가 및 모터 상가들이다. 민소매 티셔츠만 걸친 남자들이 계속해서 공구에 기름칠을 하고 이고 나른다. 그들의 땀 냄새와 기름 냄새가 뒤섞여 사람 사는 냄새가 거리 전체에 가득하다.

한 공구 상가 주인은 청계천 복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바쁘니 다음에 물으라고 답하고는 옆 가게 주인과 청계 고가도로를 먼 산 보듯 바라보며 얘기를 나눈다. 주변 여건의 큰 변화도 잠시나마 고민하기 힘들 만큼 그들에겐 바쁜 나날이다.

그렇게 기름 냄새를 맡으며 청계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기름 냄새는 새 수건을 처음 쓸 때 맡는 내음으로 바뀐다. 동대문과 가까워지면서 의류, 피혁 상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분주함은 공구상가보다 덜하지만 노점상과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곳은 더욱 활기차 보인다.
 

광교에서 황학동까지 상권 형성

복원에 대한 상인 반응 부정적


예전부터 헌책과 고서적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동대문 근처 청계천 헌책방들이었다. 국보급 고서까지 발견됐다는 헌책상가에는 요즘도 작은 돈이나마 아끼려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30년 째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헌책방 주인은 “예전에는 가난한 지식인이나 교수들이 하루종일 이 책, 저 책 보기도 했다”며 “복원을 한다면 조금 더 깨끗한 환경에서 책을 팔 수 있게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청계천 인근의 상인이라도 도시의 환경과 문화를 복원하겠다는 사업의 비전에는 동감하고 있는 것이다.
동대문을 지나면 번잡함은 조금 덜해진다. 바로 옆 동대문 근처 동평화 시장과 달리 약간 후미진 청평화 시장의 의류상가는 오후 7시가 안 된 시간임에도 문을 닫은 상점이 많았다. 아직 문을 안 닫고 손님을 기다리던 한 상인은 “동평화 시장과 달리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아 오후 7시면 문을 닫는다”며 “요즘과 같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옷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 더 빨리 문을 닫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복원과 재개발이 아니더라도 이미 청계천 주변 상인들의 삶이 만만하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황학동을 지난 후에는 상가가 뜸한 업무지역이 주를 이룬다. 그렇게 청계천 상가는 청계천 8가에 즈음해서 끝난다.


그 날, 평소 벼룩시장으로 유명한 황학동 일대는 유달리 조용했다. 반면, 청계 4가 교차로는 잔치라도 벌인 듯 소란스러운 가운데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다. 꼬리에 꼬리를 문 자가용과 버스 안에서는 정체로 인해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사람들의 시선이 창 밖의 한 무리 사람들에게 그리고 경찰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집회’였다. 청계천 상가를 거닐다 갑작스레 행렬을 만나 습관적으로 따라갔다. 노점상인들의 행렬이었다.


종묘에서 시작한 전국노점상연합회(이하 전노련)의 행렬은 중구청으로 향하고 있었다. 종로 3가를 지나 청계 고가도로 아래를 지난 행렬은 중구청 앞에서 멈춰섰다. 중구청 정문 앞에는 전투 경찰들이 겹으로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중구청 앞에서 더욱 흥겨워진 풍물은 상황을 더욱 역설적으로 만들었다. 흥겨운 풍물판 앞에는 전경들, 뒤에는 대낮부터 셔터를 내린 상점들뿐이었다.

이 날 집회는 지난 달 23일 중구청장실에서 분신한 노점상 박봉규 씨에 대한 책임자 처벌 및 노점상탄압 중지 규탄대회였다. 청계 3∼4가에서 공구 노점상으로 근근히 생활하던 박 씨는 지난 달 21일과 23일 단속에 의해 물품을 모두 빼앗기자 분신을 감행했다. 그리고 지난 6일, 숨을 거두었다.
청계천 인근 노점상인들은 시에서 ‘청계천 복원’을 천명한 뒤부터 노점상 단속이 심해졌다고 한다. 전노련 중구지역 위원장 이영환 씨는 “노점이 불법인 이상, 단속이야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청계천 복원 계획 발표 이후에 더욱 심해졌다”며 “시에서 청계천 복원공사 시작 이전에 노점상을 대책도 없이 모두 몰아내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청계천 인근에서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을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대략 2000여 개의 노점상이 청계천로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하루 벌이는 대략 2∼3만원 선. 그나마 날씨가 궂거나 단속이라도 ‘뜨면’ 하루 장사를 ‘공’치기가 일쑤다.


황학동이 아닌 중구청 앞에서 만난 노점상인 안병택(가명, 62) 씨와 한영덕(가명, 53) 씨는 근처를 서성이던 기자에게 사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안 : 시에서는 (노점상) 대책도 없이 복원하겠다 이거야. 우리 생존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영세민들 생각을 하나도 안했다는 얘기 아니겠어? 완전히 안하무인이지. 서울시민들에게 좋은 일 하겠다는데 서울시민이 우리지 누구야?

청계천 복원은 상인들에겐 '삶'의 문제

교통, 환경 보다 상인 대책 논의 우선돼야


한 : 외국인들도 (한국에) 오면 황학동을 찾는다구. 솔직히 우리가 애국자지. 버리는 물건들 모아다가 팔고 있잖아. 이게 바로 재활용이지.
안 : 먼저 이곳에 생활터전을 일궈놓고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복원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안그래도 어렵게 살면서 서러운 사람들 더 서럽게 하는 일이야.

한 : 그, 정치하고 행정한다는 사람들이 어렵게 안 살아봐서 그래.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며 사는 걸 알아야 돼.

서울 시의회 부두완 의원의 지적에 따르면 청계천 복원을 위해 철거해야 할 건물이 6026동, 협상 대상자가 1만여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에서 조사한 청계천 주변 건물 1만6489개 중, 약 30%가 철거 대상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청계천 상인들의 삶은 간과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시와 언론, 전문가들도 하루 차량 12만대가 다니는 고가도로의 철거로 예상되는 교통문제만 이야기할 뿐 살고 있는 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 없이 단순히 ‘피해 최소화’라는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

아직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청계천 복원에 대한 인근 상인들 대부분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청계 3가에서 모터상점을 운영 중인 피종식 씨는 “안그래도 주차비가 비싸서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다”며 “복원을 하면 오랫동안 공사를 할 것이고 그것은 아주 이곳을 떠나라는 얘기”라고 시의 복원사업을 평했다.

오랜 세월동안 형성된 상권에 변화가 온다는 것은 그 곳 상인들에겐, 삶에 변화가 온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환경.생태계 복원, 역사성.문화성 회복 같은 가치로 상인들을 설득하기엔 힘들어 보인다. 그들에겐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청계천 복원추진본부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이 적혀있다.

‘청계천 복원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나 환경.생태계복원, 역사성.문화성 회복 등을 위해 꼭 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 우리 시대의 숙명적 과제다’

청계천 상점 주인들과 노점상에겐 청계천이 바로 삶이다. 청계천에는 도시의 생태계 복원, 서울의 역사와 문화보다 서럽게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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