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 능력주의와 공정성의 역설
[탁류세평] 능력주의와 공정성의 역설
  • 고대신문
  • 승인 2021.10.1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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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작년 5월부터 시행 중인 채용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회사가 구직자에 대하여 본인의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본인의 출신 지역·혼인 여부·재산, 본인의 직계존비속 및 형제자매의 학력·직업·재산 정보를 수집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2017년부터 시행 중인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출신지, 가족관계, 학력, 외모를 인사자료로 삼을 수 없게 하고 있다. 로스쿨 입시에서도 출신학교나 부모의 직업을 명시·암시하는 기재는 금지되고 있다.

  이런 블라인드 인사는 채용이나 입학 과정에서 편견이나 부당한 영향력이 개입되어 불합리한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을 막고 능력에 따른 인사를 함으로써 채용, 입학 과정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공정성이란 차별의 제거와 능력주의 원칙(meritocracy)의 관철을 의미한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부여되는 사회를 추구하는 이념이다. 최근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대변인을 선출한 30대 제1야당 대표는 선거 공천에도 자격시험을 도입할 계획을 밝힌 바 있는데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의 사례이다. 

  그러나 능력주의에 대한 반론도 상당하다.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1958년 펴낸 <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Meritocracy)>에서 1860년 영국인에 대한 보통교육이 시작된 후 노골적인 계급사회였던 영국이 능력주의를 내세운 위선적인 계급사회로 바뀌는 과정을 묘사했다. 개인의 타고난 소질과 노력을 합쳐 ‘능력’이라고 하지만, 소질은 유전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고, 노력도 이를 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다르다. 결국, 능력주의는 능력자들을 위한 신분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작년에 발표한 <능력주의의 폭정(the tyranny of merit)>에서 아이비리그라고 하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SAT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체험과 봉사 경험이 필요하다. 결국, SAT 고득점은 능력보다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같은 행운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이처럼 연고주의(緣故主義), 엽관주의(獵官主義)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도입된 능력주의가 공격받고 있다. 우선 지나친 능력주의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할 수 있다. 예컨대, 채용, 입학 과정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편견의 여지가 있는 정보를 배제하다 보면 결국 아무런 정보 없이 채용과 입학을 결정하게 된다. 사용할 수 있는 정보는 소위 객관식 시험이라는 정량적 지표인데 지표의 고득점은 부모 찬스 때문인 경우가 많아서 결국 객관적 지표에 대한 과신은 오히려 불평등을 구조화할 수 있다.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블라인드 인사가 거꾸로 공정성을 저해하는 역설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능력주의는 개인의 소질과 노력을 발휘할 동일한 기회를 보장한다고 하지만, 주어진 여건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한 결과를 치유하지 못한다. 이에 마이클 샌델은 기회의 평등이나 결과의 평등이 아닌 ‘조건의 평등(equality of condition)’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공공의 삶 속에서 이해관계를 공감하며 공동선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존재 방식과 문화를 익히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승자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운과 사회적 요구 등 다른 요소임을 자성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편견이나 연고를 배제하고 공정성을 이루기 위한 능력주의가 타당하지만 이의 지나친 강조는 오히려 공정성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구체적이고 타당한 결정을 하기 위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으며, 성공한 사람들이 공동체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가지고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도 포용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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