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를 형사정책의 목표로 삼아야”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를 형사정책의 목표로 삼아야”
  • 장예림 기자
  • 승인 2021.10.10 2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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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와의 티타임(48) 김일수(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범죄유발요인 복잡해져

법감정과 국민여론은 달라

“형법, 보복보단 회복 지향해야”

 

김일수 명예교수는 "회복적 사법이 형사법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범죄와 형벌의 의미를 새롭게 재구성할 준거점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법은 사회에서 국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동시에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중 형법은 형벌권이라는 국가권력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그 제한 범위를 필요한 범위에서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지지를 받아온 형사정책 이론들은 형벌을 통한 범죄통제를 주된 목표로 삼았다. 이에 김일수(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범죄자를 벌하면서 피해자를 중립지대로 몰아넣는 현행 형사사법제도의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회복적 사법을 제시한다. 김일수 명예교수를 만나 그가 그리는 형사정책의 방향을 물었다.

 

- 형벌의 목적은 무엇인가

  “형벌의 목적은 불법을 공적으로 부인하고 법질서를 확립하는 데 있습니다. , 법익을 해하는 범죄 행위를 통제하고, 이와 더불어 범죄인을 규범에 맞게 생활하는 사회인으로 교화시켜 사회로 복귀시키는 재사회화 역시 형벌의 중요한 목적이 됩니다.

  과거 전통형법은 죄를 지으면 그에 상응한 벌을 꼭 줘야 한다는 응보사상에서 출발했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형벌의 목적 역시 범죄행위에 대한 보복일 것입니다. 오늘날까지도 형벌의 응보적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형사정책은 점점 탈응보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범죄유발요인은 복합적인 양상을 띠기에 죄가 단순히 범죄인만의 책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통사고의 예를 보면 운전자의 과실뿐 아니라 차량 구조도로 사정, 다른 교통참가자와 보행자의 문제, 자동차 정비, 속도제한 등 교통법규의 문제 등등 다양한 책임 소재가 얽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책임소재를 찾으려면 복합적인 상황의 여러 요인을 살펴보고 그 관계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응보주의는 범죄인 개인에게 그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입니다. 그러나 범죄가 야기한 법질서의 동요 및 사회적인 불안과 갈등을 해결하려면 범죄인을 처벌하는 문제 못지않게 다양한 사회정책과 형사정책적인 해결방안을 우선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요된 법질서를 안정시키고 범죄자를 사회에 정상적으로 복귀시킬 수 있는 제도는 전통적인 형벌 집행의 방법 외에도 오늘날 덜 진압적인 우회로가 있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어떻게 제도화할는지 전향적으로 고려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최근 형사정책에서 중벌화경향이 나타나는데

  “오늘날 형사정책에서 나타나는 중벌화 경향은 양형기준을 강화하거나 특별법을 제정하는 사례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형벌 중 가장 문제가 많은 것이 자유형인 징역형과 금고형입니다. 자유형의 경우 형 집행의 사회적 비용은 높은 데 비해 범죄자 교화 등의 효율은 낮다는 것입니다. 교도소 수감 이외의 방법으로 우리가 벌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 시민에게 일벌백계의 본보기로 삼거나 범죄자를 장기간 구금상태에 둠으로써 사회 안전을 도모하려는 것은 책임원칙에 위배될 수 있고 또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오히려 형벌의 예방기능을 약화시키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일반 시민에게 형량이 무거워야 하는 이유를 물으면 범죄자를 격리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범죄자를 평생 외딴 무인도에 가둬놓을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사회로 복귀할 범죄자라면 완전 격리나 중형보다는 사회화할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자유형은 범죄자의 사회적응능력과 규범 위반에 대한 자기책임 의식도 약화시킵니다. 범죄자는 교도소 내부에서 다른 범죄인들과 주로 교제하기 때문에 가해자로서의 자기인식 대신 자유를 박탈당한 피해자 의식을 갖게 됩니다. 또 자기 처지에 대한 비난을 외부 사회로 돌리기도 하죠. 피해자와 피해자단체들의 목소리와 국민여론에 따라 중형으로 범죄인을 오래 가두어 놓는 것은 범죄 문제의 치유책이 되지 않고, 그 문제를 일시 연기시키거나 사회적인 엄벌 요구를 잠시 진정시켜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 국민여론이 엄벌주의로 과열될 때 어떤 우려가 있나

  “엄벌주의로의 회귀는 사회적 불안사조에 대한 감정적 대응의 일환입니다. 이때 가해자 처벌이 과잉 부각되면서 엄벌이 정의감의 충족, 피해자의 만족, 재발 방지를 동시에 이뤄낸다는 착각을 유발합니다. 범죄에 대한 사회통제의 최후수단이자 보충적 수단이어야 할 형법이 최우선수단처럼 여겨진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형법은 어떤 수단을 통해서도 법익을 보호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다른 규범에 대해 보충적인 기능을 갖고 있어야 할 형법과 형벌이 사회통제의 중심수단이 되면 그 목적을 상실하게 됩니다. 국가는 범죄피해자를 대신해 흥분하거나 복수를 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여론의 압박이나 범죄자에 대한 피해자들의 복수심이 형사사법절차에 반영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이때 유념해야 할 점 중 하나는 시중의 여론을 법감정과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법감정은 부도덕과 패륜에 대해 일반 시민이 느끼는 도덕적 분노가 법과 정의의 영역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종종 시중에서 법감정이란 용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반적인 국민정서와 법감정이란 용어의 구분이 필요해 보입니다. 법감정은 자기 인격에 대한 침해까지 발생했다고 생각할 때 흘러나오는 정의감정입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권리 혹은 법질서의 공공성을 찾아야겠다는 목적 아래 등장하는 정의감이죠. ‘중형을 때려라’, ‘범죄자 얼굴을 공개해라등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무조건적인 엄벌 요구나 피고인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법감정의 표출이라고 이야기하기엔 어폐가 있습니다.”

 

- 피해자의 재판 절차 참여 확대를 주장하셨습니다

  “전통형법은 피해자중립화 원칙에 따라 피해자의 지위를 가해자와 대칭된 자리에서 지워버렸고, 피해자를 형사사법절차에서 멀리 떨어진 중립지대로 추방했습니다. 개인의 사적 보복을 차단하기 위해 피해자의 지위를 국가가 대신하고 전면에 나서서 국가와 범죄자의 양자구도를 성립시킨 것입니다.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의 존재의미가 약해지면서 피해자는 범죄피해로 상처 입은 법감정 회복의 기회 없이 가해자의 처벌을 멀리서 잠자코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범죄로 입은 내상을 치유 받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기회가 오면 그 분풀이를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쏟아 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범죄의 악순환이 되는 셈이죠.

  그래서 앞으로 형사정책의 최종 목표를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로 보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회복적 사법을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복적 사법은 범죄자를 처벌해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피해자를 형사사법절차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절차의 처음부터 완결 시까지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과 대화, 원상회복적인 속죄와 용서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범죄자는 속죄 및 재사회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피해자는 그로부터 정서적, 경제적 보상을 받아 범죄로 입은 내상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범죄로 입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재판 결과에 대한 이해와 만족이 중요한 만큼, 형사사법 절차에 적극 참여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찍부터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피해자 형사소송 참가제도를 도입해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피해자의 재판 참여권을 사법적 기본권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있고 피해자의 진술권 역시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더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봅니다. 법률가의 주도 아래 심문으로 진행되는 재판이 아닌 심리 전문가 등 합리적인 소통 매개자의 역할 아래 피해자와 피고인의 만남과 대화가 공식적인 절차 전후로도 이뤄져야 합니다.

  물론 강력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범죄자와 대면하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재판과정에 피해자의 보복 감정이 개입될 우려가 있기도 합니다. 이에 공판절차를 사실확정절차와 양형절차로 분리하여 진행한다면 사실확정절차에서 피해자의 보복감정이 개입할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행 공판절차에서는 유무죄 확정과 양형절차가 동시에 이뤄집니다만 공판절차 이분화를 통해 증거 조사와 사실확정과정이 끝나면 판사가 중간 판결로 피고인의 유무죄를 선고하고 이후 양형을 결정하는 과정에 피해자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역할을 담당하게 할 수 있습니다. 범죄자가 피해자와의 대화 끝에 반성의 태도를 보였는지, 원상회복조치에 애를 썼는지 여부는 판사의 양형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재판 절차 참여 확대는 양형절차에서 피해자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피해자와 범죄자의 소통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활성화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회복적 사법의 실현을 위해서는 경찰, 검찰이나 법원이 소통 창구의 매개자로서 전문가적인 역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장예림 기자 yellme@

사진김예락 기자 emancip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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