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 역사물 존치 논란

유산의 가치, 변화 가능해

“부정적 역사 교훈 삼아야”

 

  일제 식민통치와 수탈의 본거지로 사용된 조선총독부는 오랜 기간 철거·보존 논쟁에 휩싸였다. 민족의 모욕적 역사인 만큼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과 역사를 잊지 말고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조선총독부 철거에 경복궁 복원이라는 과제가 더해지며, 여론은 철거로 기울었다. 결국 광복 50주년이던 1995, 광복절을 일주일 앞두고 조선총독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조선총독부와 같이 아픈 역사를 가진 유산을 학계에선 네거티브 유산이라 칭한다. 이를 둘러싼 철거·보존 논쟁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논쟁이 활발한 부평 캠프마켓과 철거가 확정된 미아리 텍사스, 그리고 철거 대신 보존과 활용의 길을 택한 구서울역을 직접 찾았다.

 

외세 역사를 간직한 캠프마켓

  부평구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높은 담과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이질적인 풍경이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엔 일본 육군 조병창으로, 해방 후엔 미군기지로 사용된 부평 캠프마켓이다.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 체결에 따라 2019년 캠프마켓의 소유권이 반환된 후, 인천시에서는 지난 5월부터 캠프마켓의 B구역을 일반 시민들에 개방했다. B구역 개방 부지 입구에 들어서자, 미군 부대 내 야구장으로 사용됐던 광활한 잔디가 눈에 보였다. 각기 다른 색의 잔디 위론 토양오염을 정화하는 인부들과 덤프트럭이 지나다녔다. “토양오염을 제거하느라 8m 아래의 땅을 파낸 탓에 잔디색이 군데군데 달라요.” 캠프마켓 역사해설로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는 송덕순 문화관광 해설사가 설명했다. 미군기지로 사용된 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토양오염 문제로 개방된 구역에서는 잔디 대신 인공 구조물 위로만 다닐 수 있었다. 

  개방된 부지에는 이외에도 미군 부대에서 이용하던 다양한 여가 시설이 자리했다. 물이 바싹 마른 야외수영장부터 샤워실, 바비큐장의 버려진 화덕까지 캠프마켓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부평 캠프마켓 구역별 위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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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일본 육군 조병창과 2020년 부평 캠프 마켓 위성사진

 

  캠프마켓에는 미군 부대의 흔적뿐 아니라 일제 조병창의 잔재도 남아있다. 당시 부평이 경인선으로 인천항과 연결된 탓에 일제는 태평양전쟁 시기 이곳을 군수물자 생산지로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1만여 명의 조선인이 조병창에 강제 동원됐다. 무기 생산을 위한 강제동원 흔적은 캠프마켓이 유일하다. 한국전쟁 시기 폭격을 맞아 2층과 1층 일부분이 소실된 이후 미군이 연회장과 사무공간으로 증축한 S1780 건물이 그 흔적으로 남아있다. 일제 조병창과 미군 주둔의 역사가 공존하는 핵심 공간이다.

 

B구역 내 S1780 건물
B구역 내 S1780 건물

 

철거와 보존 기로에 선 조병창

  최근 S1780를 비롯해 캠프마켓에 남은 건물들의 보존, 철거를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오랜 외국군 주둔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과 토양 정화를 위해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대립한다. 국방부와 한국환경공단에서는 높은 비용과 시간을 근거로 건물을 존치한 채 토양을 정화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 6월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가 철거를 결정했으나, 문화재청이 건물의 역사성을 고려해 결정을 재고할 것을 요청했다. 인천시는 최종 결정을 유보한 상태지만, 반발이 거세다. 인천시 시민청원에서 김모 씨는 독립투사의 건물도 아닌 일본군이 썼던 건물에 어떤 가치가 있냐일제와 미군이 주둔한 치욕을 보존하는 것은 부평구의 수치라고 완전 철거를 주장했다. 3086명의 청원인이 동의한 상태고, 첨예한 대립 구도가 지속되고 있다.

  캠프마켓을 산책하던 인근 주민 A씨는 부평 주민 여론은 반반으로 갈라졌다조선총독부는 철거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좋지 않은 기억도 역사의 한 부분이므로 보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송덕순 해설사 역시 우리의 아픈 역사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필요하기에 이번 달부터 해설사들이 근무하게 됐다만약 이 건물들이 철거돼 서류로만 남는다면, 후손들에게 강제동원 역사는 단군신화처럼 멀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캠프마켓 관련 정책의 기본방향을 가능한 모든 건물의 존치로 설정한 인천시는 시민안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면 일부 건축물을 철거할 것이라며 이 경우 건축물의 가치와 의미를 살릴 복원 방안을 찾겠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오염정화로 온전한 보존이 어렵다면 건축물의 부분 철거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수(동아대 건축학과) 교수는 문화재라고 해서 꼭 원형으로 보존할 필요는 없다갈등이 길어질수록 현실적 방안에 대해 논의할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아리 텍사스의 낮과 밤

 

미아리 텍사스의 한산한 낮. 삐끼이모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정오에 찾은 미아리 텍사스의 풍경은 여느 평범한 동네와는 사뭇 달랐다. 성매매 업소들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었고, 사람보단 길고양이를 자주 마주쳤다. 한적한 거리를 걸어가던 중 불이 켜진 가게 한 곳이 눈에 띄었다. 허름한 간판의 선영 란제리에 들어서자 아동복부터 속옷까지 다양한 옷이 진열돼 있었다. 한창 점심을 먹던 사장이 기자들을 맞이했다. “이곳에서 일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재개발이 빨리 됐으면 좋겠어.” 가게 주인 김숙자(·80)씨가 말했다. 미아리 텍사스의 일반 상인들은 재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길 바란다.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 주 고객이었던 성매매업소 손님의 발길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성북구 재활용 센터를 운영 중인 오영석(·60) 씨는 손해가 누적되고 있다차라리 재개발이 진행돼 영업손실보상금을 받고 떠나길 원한다고 말했다.

  미아리 텍사스 바로 앞 고가도로 주변엔 허름한 집창촌과 대비되는 대단지 아파트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교육 환경 개선, 주변 집값 상승 등의 이유로 미아리 텍사스 재개발을 원하고 있다. 음혜경 신월곡 제1구역 도시환경정비 사업조합 이사는 아파트 주민 5000명 이상이 미아리 텍사스가 없어지길 바란다는 민원을 냈다고 전했다.

  미아리 텍사스가 가장 활발히 운영된다는 오후 10시가 되자, 낮과는 다른 어수선함이 미아리 텍사스에 자리 잡았다. 20~30대로 추정되는 젊은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성매매업소를 드나들었다. 성매매를 알선하는 일명 삐끼이모들이 업소 앞 천막에 진을 쳤고 업소 입구에는 현금 10만원, 카드 11만 원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이를 노리듯 미아리 텍사스 곳곳에 현금 인출을 위한 ATM기가 배치돼 있었다. “예쁜 애들 많고 서비스도 잘해줄게.”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끌기 위한 외침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거리를 두리번거리는 기자에게도 구경이라도 하고 가라며 업소 내부를 보여줬다. 입구에 들어서자 철문에 가려졌던 사창가의 홍등이 비쳤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삐끼이모'들은 업소 앞 천막 안에 앉아 호객행위를 한다.

  그들의 호객행위는 기자임을 밝히고 나서야 끝이 났다. 성매매 종업원을 고용하는 업주’ B씨는 업주나 종업원이 성매매 관련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며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일한다고 말했다. 88정화위원회 유태봉 위원장은 성매매방지특별법으로 인한 미아리 텍사스 사람들의 고충을 전했다. 그는 법 시행 후 성행위를 하고도 금액을 지불하지 않는 손님이 늘거나, 손님에게 폭행을 당하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아리 텍사스 입구에 '미성년자 출입금지'를 알리는 안내가 붙어있다.
성매매업소의 철문이 열리자 홍등가 특유의 조명이 비쳤다.

 

철거 후 계속 될 공간 보존 논의

  사다리꼴 모양의 좁은 면적에 낮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미아리 텍사스는 1980년대 청량리 588’, ‘천호동 텍사스와 함께 3대 집창촌으로 불리며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으로 급격히 쇠락했고 재개발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서울시에서는 이 일대를 미아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하고 대규모 개발을 계획했으며 2009년에 신월곡 1구역도시환경정비사업추진을 결정했다. 하지만 성매매업소 폐쇄에 대한 업주들의 반발, 재개발조합 내 갈등으로 인해 사업은 답보 상태에 빠졌었다.

  새로운 재개발조합이 조성되고, 지난해 3월 미아리 텍사스의 재개발 논의는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6월엔 사업 시행 인가가 나며 사실상 재개발이 확정됐다. 음혜경 이사는 현재 분양신청을 완료하고 관리처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영업 손실 보상금 산정을 위한 총회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미아리 텍사스를 포함한 신월곡 1구역에는 10개 동 규모의 아파트 2200여 가구, 오피스텔 700여 실을 갖춘 복합주거단지가 구성될 예정이다.

  미아리 텍사스에 앞서 재개발된 집창촌 청량리 588의 경우, 서울시는 해당 장소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일부 골조를 남겨 문화공간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입주예정자를 비롯한 지역주민들의 반대 의견으로 사업이 무산됐다. 재개발이 결정된 미아리 텍사스는 공간 보존을 둘러싸고 어떤 입장차가 생길까. 대부분의 재개발 관계자들은 공간 보존에 반대하거나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성매매 업주 C씨는 그다지 좋은 일도 아닌데 보존할 필요가 있냐우리에게 직접적 이득이 되지 않기에 큰 관심은 없다고 말했다.

  김기수 교수는 역사물 보존은 사람들의 시대적 판단으로 결정되는 문제라며 집창촌의 불편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와 함께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모이면 보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오랫동안 집창촌이 있었던 대전 정동의 쇠락한 지역은, 보존을 통해 문화 재생의 거점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일부 주민들도 보존 필요성에 공감한다. 업주 B씨와 유태봉 정화위원장은 성 착취가 이뤄진 불편한 장소지만, 일부 공간이 보존돼 아픈 역사를 기억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소 치유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구서울역, 활용보존의 선례

 

1925년 준공된 경성역 신축 역사와 광장 일대
최주현 도슨트가 1960년대 서울역 3등 대합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구서울역을 보존한 현재 '문화역 서울 284'의 전경

 

  서울 도심 한복판, 높은 현대식 빌딩 사이에 낮은 건물이 있다. 서울역 광장 왼편의 구서울역, 지금 이곳은 문화역 서울 284’라고 불린다. 1925년 일제가 지금의 구서울역인 경성역을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 건물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수탈과 전쟁물자 운송의 거점으로 아픈 역사의 상징과도 같은 구서울역사를 찾았다.

  문화역 서울 284에 들어서자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자연광을 그대로 받아 고귀한 분위기를 풍기고, 알록달록한 선들과 함께 태극 문양이 조화를 이뤘다. 문화역 서울 284 내부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최주현 도슨트는 우리 전통춤인 강강술래에서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면서 도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며 한국전쟁 시기 파괴되기 전까진 봉황 문양이었던 것을 새롭게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건물 1층엔 열차 승객들이 사용했던 대합실이 있었다. 3등 대합실과 1·2등 대합실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도슨트가 보여준 당시 대합실 사진엔 비루 스탠드라는 일본식 맥주와 커피 판매점이 있었다. 1925년 준공이 끝나자 조선총독부 고관과 일본인들이 많이 사용했다. 작가 이상은 이곳에서 매일같이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돈이 한 푼도 없었다는 글을 남겼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레드카펫이 깔리고 천장엔 고급 샹들리에가 달린 방이 나왔다. 최주현 도슨트는 덕혜옹주가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나기 전 머물렀던 귀빈실이라며 옹주를 모시던 시녀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2층으로 올라가자 구서울역 복구·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과 건축 자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벽엔 적색 벽돌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었고, 배수관이 있던 통로와 타일들도 남아있었다. 강화유리로 보존된 벽체에는 한국전쟁 시기 폭격으로 생긴 탄흔들이 남아있었다. 서울역은 남행 피난민들의 행렬이 이어진 아픔의 현장이었다. 서울역사는 1981년에 사적 284호로 지정됐으며, 이후 서대문형무소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 수탈 관련 지정문화재가 됐다. 그러나 2004KTX 개통과 함께 지금의 서울역 민자역사가 들어서면서 운영을 중단했다.

  이후 구서울역사는 2011년 복합문화공간 문화역 서울 284’로 재탄생했다. 현재 이곳에선 문화예술의 창작과 교류가 이뤄지며 전시, 공연, 워크숍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역사물들과 함께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작품들이 뒤섞여 전시된 점이 인상 깊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근대건축물과 함께 미래 문화예술까지 볼 수 있다는 점은, 기존의 문화시설과는 다른 매력을 풍겼다. 문화역 서울 284의 박여진 주임은 구서울역이 다른 네거티브 유산의 활용 선례로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고 전했다.

문화역 서울 284에서 국제 타이포그래피 거북이와 두루미 비엔날레가 진행 중이다.
문화역 서울 284에서 국제 타이포그래피 <거북이와 두루미> 비엔날레가 진행 중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좋지 않은 기억이 담긴 건물이라면 무조건 부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엔 아픈 역사도 역사라는 인식이 퍼지며 여론이 점차 바뀌고 있다. 인천 조병창 건물 역시 8월 철거 예정이었으나, 미디어를 통해 공간의 역사성이 알려지며 그때의 시간과 장소,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 것이다.

  최근 학계에선 불편 유산이라는 표현이 주목받고 있다. 역사물을 네거티브라는 부정적 틀에 가둬놓지 않겠다는 의도다. 역사는 지속되니 시간이 남긴 유산들에 대한 가치판단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 이연경(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교수는 불편 유산 개념은 네거티브와 달리 유산이 긍정적인 장소로 전환될 가능성을 함의한다변화하는 유산을 잘 활용해 미래 세대에 좋은 장소로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재·류요셉 기자 press@

사진강동우·김예락 기자 press@

사진제공부평 홍보관·서울역사아카이브·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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