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에게 ‘좋은’ 마음보듬사가 되고 싶어요”
“모든 이에게 ‘좋은’ 마음보듬사가 되고 싶어요”
  • 이현민 기자
  • 승인 2021.11.07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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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블라인드 마음보듬 마음보듬사 인터뷰

어둠 속 이뤄지는 힐링 대화

도움 ‘받는’ 존재에서 ‘주는’ 존재로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은 씨는 "상담 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를 항상 명심한다"고 말했다.
좋은 씨는 "상담 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를 항상 명심한다"고 말했다.
내담자는시야를 아래로 향하게 하는 안경을 착용하고 상담실로 향한다. 상담 중 불편한 곳이 생기면 리모콘을 누르고, 끝난 후에는 그날의 대화를 마음보듬지에 기록할 수 있다.
내담자는 시야를 아래로 향하게 하는 안경을 착용하고 상담실로 향한다. 상담 중 불편한 곳이 생기면 리모콘을 누르고, 끝난 후에는 그날의 대화를 마음보듬지에 기록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 한구석에 걱정을 지닌 채 살아간다. 속 시원히 마음속의 우울을 드러내 나누고 싶지만, 깊은 고민을 남에게 꺼내 보이기란 어려운 일이다. 선뜻 입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따뜻한 대화로 내담자의 마음을 보듬는 이들이 있다. ‘블라인드 마음보듬’의 마음보듬사는 내담자와 50분간 1대1로 대화를 나누며, 내담자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을 마련해준다. 6명의 마음보듬사는 모두 시각장애인으로, 청각이 예민하다는 장점을 살려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과 위로로 답한다. 본격적인 상담 전, 내담자는 시야를 아래로 향하게 하는 안경을 쓰고 어두운 상담실로 들어간다. 익명성 보장을 위해 서로 별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상담 중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리모콘을 누르고, 끝나고는 그날의 대화를 마음보듬지에 기록할 수 있다. 2018년부터 마음보듬사로 활동하고 있는 ‘좋은’(남·27) 씨는 “마음보듬사로 활동하며 사람들에게 힘이 돼 주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를 만나 마음보듬사가 ‘답’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자립훈련 중 상담의 힘 알게 돼

  식품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 좋은 씨는 2017년, 갑작스럽게 시각장애 1급 판정받았다. 군 복무 기간에 생긴 원인 모를 희귀병 때문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장애는 절망스러웠지만, 제대 후 4개월간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기초자립훈련을 받으며 보이지 않는 삶에 차츰 적응했다. 그는 보행을 위한 흰지팡이 사용법, 컴퓨터 스크린 리더기 사용법, 점자까지 걸음마를 떼듯 하나하나 배워갔다. 훈련 과정 중, 같은 시각장애인 6명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료지지상담’ 프로그램에서 그는 따뜻하게 오가는 지지와 응원에 큰 힘을 얻었다. 상담에 흥미를 가지게 된 그는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블라인드 마음보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많은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별칭도 ‘좋은’으로 정했다. “도움을 받는 존재로만 보이던 제가 상담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경청은 암흑에서 더 빛나니까

  좋은 씨는 어둠에 익숙하고 청력이 예민하다는 점을 살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도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간다. 그는 미묘하게 변하는 숨소리, 목소리의 떨림까지 알아채, 내담자의 심리변화를 헤아리고 그에 알맞은 공감과 위로를 이어간다. 좋은 씨의 노력 덕에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서 불안해하던 내담자들도 어느새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마음보듬사는 내담자를 분석하거나 질문하려 하지 않는다. “어둠 속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담자들에게 큰 의지가 돼요. 시각이 차단되니 목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죠.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내면의 이야기를 더 솔직하고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어요.”

  좋은 씨는 상담 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를 항상 명심한다. 장애 판정을 받고 힘들었던 시절을 극복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다. “무거운 이야기들을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오히려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개인적인 궁금증을 걷어내고, 내담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것도 중요하다. “궁금증이 생긴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상처가 될 수 있어요. 또 제가 어떤 말을 하면 그게 해결책처럼 받아들여질까 봐 조심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나로 인해 내담자가 달라질까?’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경청만으로도 그분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당신과 나의 마음을 보듬으며

  어느덧 4년 차,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답하는 베테랑 마음보듬사인 좋은 씨에게도 나름의 고민은 있다. 블라인드 마음보듬의 내담자로 상담을 받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장애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답했다. “장애가 생긴 후 그 삶을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장애가 저의 약점인 것처럼 느껴져요. 어쩌면 처음 누군가를 만날 때부터 제가 장애라는 벽을 세우고 상대를 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어요.” 좋은 씨는 그 해답을 내담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찾아가고 있다.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준 것처럼, 그는 자신에게도 귀 기울이고 고민을 거듭하며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빛나는 존재인 줄 몰랐다”며 “덕분에 어둠이 포근하게 느껴졌다”는 반가운 내담자는 지속적으로 좋은 씨를 찾아와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첫 방문 시 심한 우울감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는 어느새 한층 밝아진 모습으로 센터를 찾아온다. 그의 긍정적인 변화를 함께하며 지켜본 좋은 씨는 “내담자들이 자신을 찾아올 때마다 뿌듯하다”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내 성격이 이렇다, 이게 문제다, 맘에 들지 않는다 등 자신이 판단한 기준에 얽매인 분이 많아요. 스스로를 옥죄지 말고 더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수많은 마음들을 보듬으며, 좋은 씨는 그가 바라던 ‘좋은 사람’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 

 

글 | 이현민 기자 neverdie@

사진 | 최혜정 기자 joyce@

일러스트 | 장정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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