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4주년, 고대신문의 내일을 묻다
창간 74주년, 고대신문의 내일을 묻다
  • 이정우·이시은 기자
  • 승인 2021.11.0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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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편집국장 4인 인터뷰

줄 서서 받던 신문에서

많이 읽히고픈 신문으로

지면의 선택과 집중 강구해야

 

 

  사랑받는 신문이 되고 싶다. 많은 독자들과 함께하고 싶다. 본지는 ‘읽히고 싶다’ 는 일념 하에 시대별 편집국장 4인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80년대 편집국장으로는 이용백 동인(1983년 2학기), 90년대 편집국장으로는 성기영 동인(1990년 1학기), 00년대 편집국장으로는 김대원 동인(2002년 2학기), 10년대 편집국장으로는 조재석 동인(2017년 2학기)의 의견을 들어봤다. 과거의 고대신문은 시대의 굴곡을 따라 변화해오고 있었다. 과거를 돌아보며, 편집국장 출신 동인에게 고대신문이 향할 ‘내일’을 물었다. 

 

- 고대신문의 영향력을 회상하자면

  이용백│ “일간지 기자와 논문 대필 문제에 대한 공동취재를 진행하기도 했고, 기성 언론에서 우리 기사를 그대로 받아쓰는 일도 잦았다. 학보가 발간되는 날 아침이면 사람들이 민주광장에 길게 줄을 서서 받아갈 정도였다.” 

  성기영│ “제가 신문사에 들어갈 당시만 해도 서관 대강당을 기자 모집 논술 시험장으로 사용할 만큼 기자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경쟁률이 세 자릿수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당시 전통 중의 하나로, 미팅이 끝나고 각자 다니는 학교의 학보에 연락처를 적어 우편으로 보내곤 했다. 이처럼 대학 신문은 학교를 대표하는 콘텐츠이자 자부심이었다.” 

  김대원│ “고대신문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고 있기는 했지만, 월요일에 신문을 학교 곳곳에 배치하면, 늦어도 화요일에는 가판대에 남은 신문이 없었다. 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도권은 아직 종이신문에 있었기에, 인터넷 매체로 인한 타격이 크지 않았다.” 

  조재석│ “10년대 들어 학보사의 영향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정말 열심히 신문을 만들었는데, 가판대에서 일주일간 절반도 나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신문을 가장 많이 가져가는 사람은 다름 아닌 미화노동자 분들이었다. 쓰레기통 밑에 신문을 깔아두려고 가져가신 거였다. 충격이 컸다. 그나마 영향력이 강해지는 순간은, 고려대 자체의 아이덴티티가 강조되는 새터나 고연전 진행 시기였다. 반면 기성언론과 같은 영역을 취재하는 기획이나 시사, 정치나 문화 기사는 독자 타깃이 모호했다. 학생들에게는 관심 없는 주제일 수 있고, 외부의 사람들은 같은 주제를 다룬 기성언론을 읽으려 하기에 고대신문은 일종의 모호한 ‘그레이존’에 위치했다.”

 

- 당시 고대신문이 주력했던 것은 무엇인가

  이용백│ “80년대는 정보를 얻기 힘든 시대였다. 지금처럼 온라인에서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없다 보니, 신문의 역할이 컸다. 또 당시에는 군부 정권의 통제가 심했다. 편집국장으로 있던 6개월간 서너 번은 배포금지 처분이 내려지기도 했고, 검열당한 기사 지면을 백지로 내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대학신문은 기성 일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정도가 덜했다고 기억한다. 권력이나 자본과 얽히기 쉬운 상업언론에서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비교적 자유로이 다룰 수 있었다. 검열이 덜한 편이었던 학술 칼럼을 통해서도 비판적 목소리를 내곤 했다.”

  성기영│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절차적인 민주주의 제도가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군부 퇴각 이후 언론 자유가 형식적으로 퍼져나가고, 다양한 매체들이 생겨 자연히 고대신문이 갖는 대사회적 영향력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학생들의 관심이 학교 내부의 등록금, 커리큘럼, 교수 임용 문제 등으로 옮겨 가면서 고대신문 역시 학내 사안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됐다. 또 대학 신문의 정체성을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조화에서 찾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1면에 학술논문을 싣는 내부 전통이 있었다. 대학사회를 지탱하는 학문 탐구를 제1의 정체성으로 유지하면서도, 신문이라는 저널리즘적 특성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김대원│ “00년대의 경우, 대학사회가 갖는 공통 관심사가 점점 사라지는 분위기였다. 민주광장에서 학생운동이 있었는데, 당시 재학 중이던 연예인이 지나가 몰린 인파가 학생운동으로 몰린 인파보다 많았던 일이 기억난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인터넷으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정기전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것이 대표적이다. 돌이켜 보면 고대신문은 인터넷 생중계 형식을 굉장히 빨리 도입한 편이다."

  조재석│ “10년대 당시 학보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저조했던 탓에,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대학 신문의 특징을 잘 반영하는 취재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학내 언론에서만 다룰 수 있는 이슈를 깊이 있게 싣는 대학부를 신설했다. 기성언론과 겹치는 영역을 다루는 기획부서는 사회부 하나로 통폐합했다. 유튜브나 SNS로 뉴스를 보는 시대에 맞게 영상부도 만들었다. 또 신문 자체를 무겁게 만들지 않으려고 구성원들이 편히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코너를 마련했다. 지면 구성의 경우 여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다. 사진이나 인포그래픽 등 디자인적 요소에도 집중했다. 긴 텍스트를 읽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생겨나기도 했고, ‘읽고 싶은’ 느낌을 주는 것은 지면에 실린 미디어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현재 고대신문을 평하자면

  이용백│ “요즘은 학생기자들이 학점관리나 취업준비처럼 많은 곳에 신경을 써야 하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관심사에 밀착한 내용을 다루기 어려워 보인다. 당시에는 수업을 포기하고 현장을 나가는 식으로, 신문사 활동에만 집중하는 기자들이 많았다.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학사경고를 받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현장을 지키려 애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기사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물론 이전에는 취직도 어렵지 않고, 학점이 중요하던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방식이었을 거다. 전문성과 현장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성기영│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봤을 때, 짧은 텍스트 메시지 중심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대학생들의 문장이 생경할 때가 있다. 직업 언론인처럼 쓰지는 못하더라도, 문장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마감 과정에서 적절한 피드백을 주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문장이 깔끔해진다면 신뢰도도 올라가지 않을까.”

  김대원│ “항상 편집국에 전통에 대한 강박이 묻어있는 것 같다. 바쁜 일정 속에서 신문을 찍어내는 데만 집중하지, 근본적 의문을 던지지 않는 것 아닌가. 주간지 형식이나 16면 발행을 유지하는 것도 관성일 수 있다. 많은 기사 중에 중요한 것만 선별해 1면만 발행해도 충분할지 모른다. 전통을 고수하려 한다면,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조재석│ “고대신문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점이지만, 이는 미디어 산업 전체의 위기에 더 가깝다. 또 고대신문은 시대의 변화에 충분히 발맞추지 못했다고 본다. 더 이상 학생기자들이 16면을 채울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면이 줄면 더 질 좋은 콘텐츠가 나올 것이라고 봤다. 절대적인 분량을 8면 정도로 줄이고 싶었지만, 구조상 불가능했다. 기자들의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면서 독자들의 니즈를 파악할 수가 있겠나.” 

 

-시대의 변화 속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용백│ “고대신문은 정제되지 않은 정보의 유통이 일상화된 시대에,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고대신문이 먼저 나서서 대학사회의 공통 의제를 설정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내부 문제에서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가령 시간강사 처우 문제나, 논문 관련 비리의 경우 대학 내의 문제임에도 학교 밖의 매체에서 더 심층적으로 다루곤 한다. 대학 신문이라는 위치를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 또 주위를 둘러보면 기성언론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다뤄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다. 포털이 가진 문제점이 대표적 예시다. 기존 언론은 포털과 얽혀 있기 때문에 포털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운 대학 신문의 역할은 바로 기성언론의 빈틈을 찾아내 보완하는 것이 아닐까." 

  성기영│ “소셜 네트워크나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화제성을 높일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요즘은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정보가 있으면 인터넷으로 손쉽게 공유하는 시대다. 대학생들이 의사소통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방법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주간교수도, 간사도 아닌 학생기자들 본인이다. 인터넷상에서 흥미를 유발하고 많은 ‘공유’를 이끌어낼 방법을 고민해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면 좋겠다. 또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 제작에 용기 있게 뛰어들면 좋겠다. 글쓰기 능력과 기획 능력은 다른 모든 콘텐츠 창출의 기본이 된다."

   김대원│ “본인들의 시대에는, 본인들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좋겠다. 선배들의 평가에 집중하기보다는, 만들고 싶은 대로 다양한 시도를 했으면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상하게 만들다가 한 번 망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제 경우를 생각해 보면, 총학선거 보도는 주간지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영상으로 일간 뉴스를 만들기도 했다. 전통에 대한 강박을 버려야 한다. 시대의 문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시대 기자들이다. 또 여러 가지를 다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나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유튜브 영상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 영상이 100만 뷰 이상 나온다면 많은 걸 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모든 독자층을 다 잡으려고 하는 것보다, 특정 타깃에 집중해 팬층을 형성해도 좋겠다. 구색 맞추기 식으로 모든 부분을 얕게 다루는 신문보다 훨씬 질이 좋아질 거라고 본다.” 

  조재석│ “고대신문의 영향력이 가장 확실히 드러나는 순간은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가 아닌가 싶다. 서울권 대학언론연합회에서 진행한 대선 후보 정책 토론회 기사, 총장 후보 검증 기사 등이 좋은 사례다. 지금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불확실한 장래에 관한 것인데, 이런 부분을 다루어도 좋겠다. 이전에 대기업 인사 담당자를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 있었는데 꽤 인기가 좋았다. 

  많이 읽히는 신문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훨씬 무거워지거나, 가벼워지는 방향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본다. 취재부와 학술부를 강화해 대학사회에 날선 비판의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고, 대학의 특성을 살려 좋은 학술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향이 전자일 것이다. 혹은 그런 부분을 전부 내려놓고, 학내 정론지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편하게 읽을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정치 이슈를 억지로 끄집어내서 ‘청년의 눈으로 바라봤다’는 기사를 쓰기보다는 휴 머니티를 강조한 소소한 기사를 쓰는 게 더 나은 방향일 수 있다.”

1986년 4월 2일, 고대신문 기자들이 게시한 대자보 '이 땅의 진정한 언론 자유를 갈망하며'에는 배포금지 처분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언론 자유화를 요구하는 내용이 실렸다.
1986년 4월 2일, 고대신문 기자들이 게시한 대자보 '이 땅의 진정한 언론 자유를 갈망하며'에는 배포금지 처분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언론 자유화를 요구하는 내용이 실렸다.
1990년 4월 9일자 신문 1면에 학술논문이 실려 있다. 본지는 지령 100호(1956년 4월 16일자)를 기점으로 40년간 1면에 학술논단을 게재하는 '권두논문제'를 실시했다.
1990년 4월 9일자 신문 1면에 학술논문이 실려 있다. 본지는 지령 100호(1956년 4월 16일자)를 기점으로 40년간 1면에 학술논단을 게재하는 '권두논문제'를 실시했다.
2003년 9월 리뉴얼 진행 이후 고대신문 홈페이지의 모습이다.
2003년 9월 리뉴얼 진행 이후 고대신문 홈페이지의 모습이다.

 

 

글 │ 이정우·이시은 기자 press@

사진 │ 고대신문

일러스트 │ 장정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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