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  

이효원

 

  결정장애가 한 집안을 망하게 한 최초의 기록은, 전주이씨영응대군대파 이풍진공일가 임진년피난행록(全州李氏永膺大君派 李風塵公一家 壬辰年避難行錄)에 나온다.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때 상께서 의주로 피난을 갔다는 말을 들은 이풍진공은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자손들에게 물었다. 이때 이공의 첫째 아들이 말했다. “상께서 의주로 피난을 가셨다하니, 우리도 신하된 자로서 상과 함께 의주로 가서 함께 죽는 것이 진정한 사대부가문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둘째 아들이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 앞에 나섰다. “차마 입에 올리기 민망하오나 이제 전주이씨의 세상은 끝이 나고, 덕수이씨 순신이 남쪽 바다에서 수많은 왜적을 물리치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있으니 그에게 의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풍진공의 부인이 말하기를, “사내대장부라고 하는 자들이 이런 국난의 시기에 어찌 자기 한 몸 살아날 생각만 하고 있느냐? 아녀자도 저 무지막지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치마를 찢어 돌을 나른다고 하는데 참으로 부끄럽고 또 부끄럽도다.” 하면서 탄식을 했다. 그런데 이런 탄식은 이풍진공이 어떤 결정을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말은 화려하고 명분도 훌륭했으나, 그냥 탄식은 탄식으로 끝났을 뿐 어떤 대안도 없었다. 이풍진공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왜군이 우한 고개를 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풍진공이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제 우리가 여기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모두 죽을 판이니, 어떤 방향으로든 결정을 하도록 하자. 나는 이 엽전을 던져서 앞쪽이 나오면 상을 따라서 의주로 피난을 가고, 뒷면이 나오면 덕수이씨 순신이 있는 남쪽으로 가겠다.”라고 말했다. 모든 집안의 사람들이 이풍진공의 그 뛰어난 결정에 감탄하고 있을 때, 막내아들이 앞으로 나섰다. “아버님. 그러면 그 엽전의 앞면은 어디이고 뒷면은 어디입니까?”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여쭈었다. 그 순간 이풍진공의 결정장애는 되살아나서 막내딸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 집안에서 결정장애를 앓지 않고, 현명하게 말을 해줄 수 있는 것은 너뿐이다. 이 엽전의 앞면은 어디로 하고 뒷면은 어디로 하는 것이 좋겠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막내딸은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양지수를 가리켰다. 양지수의 집안은 원래 명문거족의 학식 있는 집안이었으나, 온 백성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매리수(梅梨水)사태로 풍비박산이 나서, 이풍진공의 집에 의탁하여 살고 있었다. 매리수(梅梨水)사태는 매화꽃이 아름다우냐 배꽃이 아름다우냐로 조선 건국 이전부터 싸워오던 해묵은 논쟁이었다. 그러나 끝내 어떤 꽃이 더 아름다운지는 결정하지 못하고 결국 처절한 피바람을 일으키면서, 양씨 집안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양지수가 말했다. “제 생각에는 그 동전의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독단적인 생각으로 결정하기보다는 이 마당에 모여있는 33명의 의견을 모아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사료되옵니다.”라고 말했다. 이풍진공은 양씨 집안의 학식을 일찍이 존경하고 있던 터라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그럼 투표로 결정하자.”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기는 했는데,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피난을 갈지 결정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때 바깥마당에서 노비 한 명이 달려와서 “지금 적군이 우한 고개를 넘고 진천 냇가를 가로질러… 아산 뜰에까지 밀려왔다고 합니다.”라고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이풍진공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자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아 이제 결정을 미룰 수는 없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결정하는 일에 대해 빨리 의견을 모으도록 하자. 그런데 의견을 모으는 방식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 손을 들어서 결정하는 것이 좋겠느냐 아니면 종이에 써서 내는 것이 좋겠느냐?”라고 물었다. 사람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자 이풍진공이 큰아들을 가리켰다. “너는 집안의 장남으로서 내가 잘못되었을 때, 이 집안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손을 드는 것이 좋겠느냐 종이가 좋겠느냐?” 큰아들은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자칫 잘못된 결정으로 온 집안을 죽게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벌벌 떨면서 주변 눈치만 살펴보았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대문 옆 담벼락의 작은 개구멍 사이로 순수 잡종 개 누렁이가 기어들어 오고 있었다. “아버님. 일찍부터 개는 명물이라 하오니, 이 중요한 결정을 사람이 내리는 것보다는 저 누렁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큰아들의 말을 듣고 있던 이풍진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지금 이 다급한 시기에 저까짓 똥개에게 무엇을 물어서 결정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저 담장 위에서 낮잠을 자는 고양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러자 큰아들은 개와 고양이를 번갈아 보다가 끝내 결정하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풍진공의 부인이 답답하다는 듯이 안뜰로 내려왔다. “지금 사느냐 죽느냐 하는 이 시기에 그런 사소한 것 하나를 결정하지 못해서, 이렇게 망설이기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동전의 앞쪽이 나오면 상을 따라가고, 뒷면이 나오면 순신을 따라간다는 대감의 결정은 근래에 보기 드문 아주 훌륭한 결정이었습니다. 또한 저기 지수라는 아이가 한 사람의 의견보다는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결정도, 역시 양씨가문의 사람답게 의미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또 우리 큰아들이 섣부른 사람의 판단보다는 누렁이에게 물어보자는 의견도 훌륭하고, 개보다는 담장 위의 고양이에게 물어보자는 대감의 말씀도 훌륭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때 부인의 말이 길어질 것을 염려한 이풍진공이 마루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주 점잖은 말로 이르기를 “그러면 부인께서는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부인께서 결정을 내려보세요.” 라고 말했다. 이풍진공의 입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말에 공의 부인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는 사이에 다급한 비명이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지붕 위에 올라가서 고구마를 먹으며 이풍진공 집안의 결정 사항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마당쇠가 소리를 질렀다. “어이! 이제 그만들 허셔야겄네. 이제 다 끝났어!” 라고 말하며 마당쇠가 손에 들고 있던 고구마를 집어던졌다. 노비답지 않게 아주 건방진 말투에 이풍진공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허 저 버릇 없는 놈 같으니라고! 지금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어디 감히 끼어들어!” 그러자 마당쇠가 피식 웃었다. “결정은 무슨 개뿔! 지금 왜군이 코앞에까지 왔어. 이제 어떻게 죽을지나 결정허시라구. ”마당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왜군들이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그러자 이풍진공이 소리를 질렀다. “앞대문은 단단히 닫아버려라. 그리고 우리는 저기 서문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좋겠느냐? 북문이 좋겠느냐?” 그러자 큰아들이 아버지 앞으로 급히 다가오다가, 마당쇠가 던진 고구마를 밟고 미끄러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버님. 북문은 죽은 사자들이 드나드는 문이고, 서문은 종놈들이나 드나드는 문인데, 우리가 어찌 그 문으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결정은 받아들이기 민망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붕 위에 있던 마당쇠가 일어섰다. 그리고 고구마를 집어던지고 나서 시원하게 들이마시던 동치미 사발을 큰아들에게 집어던졌다. “다 끝났어. 이 개새끼야!”라고 말했다. 

  전주이씨영응대군대파 이풍진공일가 임진년피난행록은 여기까지 기록되어 있다. 결정장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이 뛰어난 명문대가의 집에서 누가 이런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는지, 그리고 이 점잖은 집안의 기록에서 ‘개소리. 개구멍, 개새끼’ 같은 말이 어떤 연유로 기록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결정장애 분야 고문서에 조예가 깊은 국문학 박사 박연경 교수는, 이 기록은 후대에 가필되었거나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박연경 박사가 『결정장애 연구』 겨울 특집호에 기고한 「결정장애가 공동체의 삶을 파괴하고 한 집안을 콩가루로 만든 사례연구」에 따르면 결정장애는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피난행록에 나오는 전주이씨영응대군대파 이풍진공일가도 충청도 사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정장애는 개인적 성향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적 성향도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종로로 갈까요? 영등포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라는 노래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것을 보면, 근대화 이후에 한양 사람들의 결정장애 수치도 매우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한양을 벗어나 수원과 안성에서도 한참을 내려와 천안 삼거리까지 왔을 때, 바로 이 지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오른쪽으로 가면 전라도, 왼쪽으로 가면 경상도를 갈 때의 결정장애는 차라리 천안 능수버들에 목을 매고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종로나 영등포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죽음을 생각할 정도의 결정장애가 주는 압박감은 산업화 이후에는 대전 쪽으로 더 내려가서 회덕분기점에서 발생한다. 직진해서 경상도로 갈 것이냐 우회전해서 전라도로 갈 것이냐로 확대되고 있다. 이것은 자동차가 빨라지면서 순간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천안 삼거리에서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잠시 멈춰 서서 목을 축이며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회덕분기점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면서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차라리 자동차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을 정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의 어정쩡한 유배지 형벌 문제, 근대화 이후의 천안삼거리에서 좌우 노선 문제, 그리고 산업화 이후의 회덕분기점에서의 방향성 문제까지 겹치면서 충청도 사람의 결정장애 수치는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충청도 지역에서 태어난 셋째들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첫째는 부모님이 알아서 잘해주는 경향이 있고, 둘째는 공격적으로 빼앗아서 쟁취하는 경향이 있어서 결정장애가 심각하지 않다. 하지만 셋째는 첫째의 눈치도 봐야 하고 둘째의 눈치도 봐야 한다. 첫째에게 붙어서 떡볶이 한 개 더 집어먹었다가, ‘너만 입이냐’며 날리는 둘째의 강력한 등짝 스매싱에 앞으로 고꾸라지기도 하고, 둘째에게 붙어서 게임을 하다가 부모님의 감독 권한을 위임받은 첫째의 권력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한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다 보면 셋째가 갖는 결정장애의 압박감은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울 정도이다. 청소년기 충청도 셋째들이 갖는 결정장애는 이제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이 심각한 결정장애 문제는 개인의 성향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제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때가 되었다. 

박연경 박사의 이 논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결정장애는 한 개인의 기질보다는, 선천적인 유전요소와 후천적인 사회화 요인에 의해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청소년들의 상담사로 유명한 심유준 교수에 의하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청소년들의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제 이름이 심유준입니다. 있을 유(有)에 깊을 준(濬). 나에게 있는 것을 깊이 생각하라.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냐 하면···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른들은 자기들도 결정장애가 있으면서 자꾸만 우리 아이들을 다그치는 경향이 있어요. 짬뽕을 먹을까 짜장면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 결정장애를 해결해주기 위해 짬짜면이 나오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결정장애가 해결되기는커녕 이제는 짬뽕을 먹을까 짜장면을 먹을까 짬짜면을 먹을까로 결정장애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요? 막상 어른들은 자기들도 결정하지 못하면서 하나만 결정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입시에서 수시 원서를 쓸 때··· 이때 청소년들의 결정장애로 인한 압박감은 거의 재난 수준입니다. 자기 인생을 결정짓는 일을 왜 여섯 개만 쓰라고 하나요? 어떻게 수시 원서를 쓸 때 여섯 곳만 골라서 결정하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말이 좋아서 여섯 개지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이걸 어떻게 제한된 시간 안에 결정하라고 하나요? 사실 그건 우리 청소년들은 자기 의지대로 고를 수가 없습니다. 마감 당일 날. 3분을 남겨두고 고르는 학생들의 그 피 말리는 결정장애 압박을 경험해보셨나요? 이건 말이 좋아서 선택하는 것이지, 최종 결정은 마감 압박의 시간이 결정해주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마음껏 고를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앞에 언급하신 박연경 박사님의 논문을 보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청소년들의 결정장애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그런데 뭐라더라··· 충청도 셋째들의 결정장애가 심각하다구요? 그건 박연경 박사님이 충청도 셋째니까 그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학생이 결정장애로 죽어가고 있어요. 제주도에 사는 열다섯 고정해 학생이 앓고 있는 중2병이, 개인만의 질병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게 다 어릴 때부터 누적된 결정장애가 사춘기가 되면서 폭발을 해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중2병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결정장애만 미리미리 치료를 해줬더라면 얼마든지 슬기롭게 넘길 수 있는 병입니다. 경상도에서 소를 키우는 고1 장한우 학생은 결정장애가 없을 거로 생각하시나요? 그냥 마음 편하게 넓은 초원에서 소를 키우고 마냥 낭만적인 생각만 하면서 미래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고··· 아무런 결정장애도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거냐구요? 전남 담양에서 대나무 밭을 지나 학교를 오가는 장녹죽 학생은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대나무처럼 올곧게 살아간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그 학생이 쭉쭉 뻗은 대나무 숲길을 걸어가면서, 자신의 짧은 다리를 보며 느꼈을 비애와, ‘키큰잘’ 젤리와 ‘키잘큰’ 알약 중에서 무엇을 먹어야 더 키가 클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았다고 누가 감히 확신할 수 있을까요? 청소년들의 결정장애 이건 지역적 문제가 될 수 없어요. 어느 지역에 살건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수능 문제를 한 번 보세요. 

 

36. (가)와 (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나)는 (가)와 달리 동일한 종결 어미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보아 운율감을 높이지 않은 것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② (가)는 (나)와 달리 자연물에 인격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대상과의 교감을 일방적으로 피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통해 시적형상화의 과정이 생략되지 않을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

③ (가)와 (나)는 모두 색채어를 활용하지 않으려는 화자의 부정적인 태도를 긍정적 시각에서 살펴보지 않음으로써 공간에 대한 제한적 인식을 부정적 관점에서 긍정적 효과의 극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④ (가)와 (나)는 모두 공감각적 심상을 제시하여 대상이 갖는 속성의 단편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긍정의 효과를 부정하면서 대상에 입체감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⑤ (가)는 계절의 변화를 통해, (나)는 공간의 이동을 통해 상호간의 비판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비판의 요소를 하나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시상을 구체화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

 

  이 다섯 개의 답지 중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찾으라고 강요합니다. 어떻게 달랑 시 두 편을 읽고 가장 적절한 것을 결정하라고 강요할 수가 있나요? 도대체 ‘가장 적절'···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차라리 틀린 것을 고르라면 그냥 어떻게 해보겠어요. 가장 적절하다는 것은 다른 것도 적절한데, 그중에서 더 적절한 것을 고르라는 말이잖아요. 게다가 ‘(나)는 (가)와 달리 동일한 종결 어미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보아 운율감을 높이지 않은 것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건 운율감을 높였다는 건가요? 아니라는 건가요? 어떻게 오지선다형을 통해 하나의 인생을 결정하라는 거죠? 이렇게 결정장애를 유발하는 시험을 보게 하면서 왜 우리 청소년들이 자기 결정권이 없네, 주체성이 없네 이렇게 걱정만 하는 거냐구요? 이런 식으로 우리 교육이 결정장애를 유발하는 방향으로 가면 진짜 안 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만은 없지 않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심유준 교수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없지 않지만, 우리 청소년들의 교육과 결정장애는 매우 연관성이 깊지 않다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만은 없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정신과 의사인 최수연 박사는 완전히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결정장애 요인을, 자연과의 공감 단절과 음악적 감수성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 지난 3일 결정장애 치료의학회 강연에서 밝힌 최수연 박사의 발제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여러분들은 혹시 벌새의 날개가 팔락거리는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벌새는 자세포가 700나노초(nanoseconds)··· .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나노초는 백만분의 1초보다도 작은 수치입니다. 이 700나노초 안에 자세포를 발사하여 꽃잎 위에 앉아있는 경쟁상태를 물리칩니다. 이때 폭발력은 그 찰나의 시간 동안 5,410,000G(중력가속도)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무기의 무게가 단지 10억분의 1g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단단한 갑각류의 껍질을 뚫을 만한 15 기가파스칼(giga-pascal, 총알의 압력과 같은 수준)의 엄청난 압력을 방출하는 것입니다. 이걸 인간의 눈으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1초당 1,430,000번의 프레임을 찍는 초고속 촬영으로만 가능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그러니까 벌새는 인간은 상상할 수도 없는 아주 찰나의 순간에 단호하게 결정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망설임도 없습니다. 그냥 결정하는 겁니다. 사실 인간은매우 빠른 결정능력을 갖추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도구가 발명되면서 자꾸만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총이 발명되면서 인간의 결정장애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총은 한 번 발사하게 되면 사냥감들이 무서워서 도망치게 됩니다. 총은 놀라운 살상력을 갖고 있지만 한 번 실패하면 사냥감을 찾기가 정말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옛날 우리 조상들은 그 무지막지한 매머드를 어떻게 사냥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갖고 있었던 것은 돌창이나 막대기가 전부였습니다. 매머드를 만나면 어떻게 사냥을 하느냐, 작전이고 뭐고 없습니다. 매머드를 보면 창을 막 던지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든 집어던지는 것입니다. 결정이고 뭐고 없습니다.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죽이지 않으면 잡아먹히게 생겼는데, 무슨 결정을 하고 말고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대상을 포착하고, 바로 던지고, 성공하면 고기 파티! 실패하면 죽어라 도망치기! 사냥은 그냥 이렇게 하는 겁니다. 생각, 결정 뭐 그런 복잡한 단계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무기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인간의 결정장애는 심각해집니다. 돌멩이로 매머드를 공격할 때는 막무가내 공격이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핵무기는 막강한 살상력을 가졌지만, 그걸 쉽게 결정해서 공격을 감행할 수는 없습니다. 결정하는 순간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데 쉽게 결정할 수는 없지요. 빠른 이동수단도 인간의 결정장애를 유발합니다. 옛날에 걸어 다닐 때는 어떤 길로 가야 할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조금 가다가 아니다 싶으면 방향을 바꿔가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KTX 고속 열차를 잘못 탔다고 합시다. 아주 순간적인 결정의 잘못으로 부산에 가야 할 사람이 목포에 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비행기 한 번 잘못 타면, 눈을 뜨자마자 원하지 않는 알래스카에서 눈보라를 맞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결정장애는 어떻게 치료해야 하냐?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문명의 편리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결정장애 유발 요인이 무엇이겠습니까?
 -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바로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기요 거기요’ ‘배달의 겨레’ 이런 배달 앱들은 우리를 도와주지 못하고, 편리함이라는 악마의 탈을 쓰고 우리의 결정장애를 질병 수준으로 심화시키는 무서운 바이러스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무인도에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냐면 그 배고픈 시간에 눈에 띄는 것을 먹으면 됩니다. 산으로 올라가서 더덕을 캐면 그게 바로 그날의 저녁거리가 됩니다. 바닷가에 가서 상어가 다가오면 상어지느러미라도 뜯어 먹으면 됩니다. 결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행동으로 바로 옮기면 됩니다. 뭐라고요? 상어에 잡아먹히면 어떻게 하냐고요? 3일간 굶주리다가 바다에서 상어를 만나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경험이 없으시면 말을 하지 마십시오. 지금 선생님께서 하신 질문은 지극히 도시 문명적 발상이십니다. 배가 고파서 눈이 뒤집히면 보이는 것이 없는 법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비참하게 바닷가에 쓰러져 죽는 것보다는, 상어에게 달려들어서 지느러미라도 뜯어 먹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냥 있으면 죽는 것밖에 없지만, 상어에게 달려들면 상어를 잡아먹거나 잡아먹히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배우자를 고르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택지가 많아서,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이상형이라는 것이 생겨납니다. 성격 좋고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그런 왕자님이 뭐가 아쉬워서 여러분을 배우자로 맞이하겠습니까? 돈 많고 사회성 좋은 공주님이 왜 여러분의 손길이 다가올 때까지 미혼일 거로 생각하십니까? 무인도에 떨어져서 거들떠보지도 않은 초등학교 동창밖에 없다면 선택은 아주 간단합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배고플 때 잡아먹거나, 아쉬운 대로 결혼해서 같이 사는 겁니다. 
 우리는 자연과의 공감 능력을 살리고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에 심취해야 합니다. 파도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파도 소리는 일정한 주기를 따라 매우 단순한 소리가 반복됩니다. 그 단순한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여러분이 지금 앓고 있는 이 결정장애는 자연스럽게 치유될 수 있습니다. 제 말에 공감하셨다면 오늘 이 강연장을 나가시기 전에 여러분이 갖고 계신 모든 소지품을 이곳에 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보세요. 휴대폰, 반지, 지갑 모두 이곳에 놓고 나가면, 완전히 새로운 천지의 세계가 열릴 겁니다. 여러분은 저 연수원 밖으로 나가는 순간, 체면이고 뭐고 없이 보이는 차만 보면 태워달라고 손을 들게 되실 겁니다. 결정장애가 한방에 치유되는 그 놀라운 경험을 한번 해보세요. 여러분들이 놓고 가시는 소중한 물건들은 아주 좋은 일에 쓰이게 될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최수연 박사의 강연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은 결정장애로 소지품을 놓고 갈 것이냐 말 것이냐로 고민을 하다가, 중증환자로 분류되어 격리병동에 갇히는 불행한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최수연 선생의 말만 믿고 소지품을 모두 홀가분하게 버리고 연수원을 떠난 사람들은, 배고픔과 후회와 자책 속에 다섯 시간을 걸어서 오한시에 도착했으나, 그곳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텅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결정장애가 한 집안을 망치고 한 사회를 마비시키고 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사람이 결정장애라는 질병에 걸려 있으면, 그 사회와 국가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도 가혹하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대개 결정장애 4급의 질환을 앓고 있다. 이 단계는 감염력도 그렇게 높지 않아서 
 “쟤 왜 저래?”
이런 정도의 눈총은 받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떤 물건을 살 때마다 단 한 번도 속 시원하게 질러본 적이 없는 사람은 결정장애 3급에 감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결정장애 3급의 단계에 이르렀으니 조심해야 한다. 바로 지금 자가진단을 해보도록 하자.

▶ 고등학교 때 수능 국어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답지를 무엇을 고를지 몰라 고민하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뒷부분은 그냥 막 찍은 적이 3번 이상 있다.                         ……… ( ◌  ☓ )

▶ 볼펜 하나를 고를 때도 검은색에 흰색 배열의 볼펜을 고를지, 빨간색에 흰색 배열의 볼펜을 고를지 3시간 동안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사지 못한 경우가 있다.         ……… ( ◌  ☓ )

▶ 이른 봄에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낙엽이 질 때 간신히 옷을 하나 고르고 여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 ( ◌  ☓ )

▶ 홈쇼핑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어떤 물건을 주문하고, 상담원과 언쟁을 벌이다 결국에는 반품과 환불에 악순환 속에서 살아간다.                                                         ……… ( ◌  ☓ )

▶ 가족들이 라면을 끓여 먹으면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눈치를 보며 젓가락을 들고 달려들다가 ‘아 저 한 입만충’이라는 구박을 받은 적이 있다.    ……… ( ◌  ☓ )

 

이 중에서 3개 이상 해당이 된다면 당신은 결정장애 3급으로 위험군에 들어가 있다. 결정장애 3급 이상이 되면 감염력도 매우 높아서 밀폐된 공간에 30분 이상만 같이 있어도 80% 이상의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이 단계에서 발 빠른 격리치료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타이밍을 놓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퍼져나갈 수가 있다. 
 위 질문에서 4개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은 결정장애 2급으로 보아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공권력을 동원한 격리치료가 필수적이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강력한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 이 단계에서 인권이 어떻고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고를 떠드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구속해야 한다. 망설일 단계가 아니다. 박연경 박사가 주장한 것처럼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위 질문에서 5개에 해당하는 사람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즉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이건 결정장애 1급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인류의 암적 존재다. 결정장애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온 인류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심각한 질병이다. 5개에 해당하는 사람을 그래도 인류애적 관점에서 태평양 한가운데 섬나라로 추방을 해서 살게 하자거나, 우주선에 탑승시켜 화성으로 보내버리자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도 같이 우리 사회에서 매장을 시켜버려야 한다. 결정장애는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추방해야 할 국가적 최우선 과제이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전주이씨영응대군대파 이풍진공일가 임진년피난행록(全州李氏永膺大君派 李風塵公一家壬辰年避難行錄)은 과거의 기록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왜군이 코앞에 쳐들어왔는데도 동전의 앞뒤 문제를 개와 고양이게 묻고자 했던 심각한 결정장애의 비극적인 역사. 우리 시대에서 반드시 끝을 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적폐 청산의 사명이다.

 

  저기 그런데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그러니까 그게··· 이 소설은 어떻게 끝내야 할까요?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끝냈다는 의미의 종(終)이 좋을지 마무리 완료를 했다는 완(完)이 좋을지 모르겠는데··· 그냥 영어로 End··· 네? Endless··· 저기 선생님! 저보고 지금 어쩌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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