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판야무 금배섭 안무 연작솔로 작품 <오> 리뷰

 

  판소리 완판 공연은 적잖게 있으나 무용계에서 혼자서 5시간 30분 동안 공연한 사례는 없었다. 현대무용 안무가인 금배섭이 자신이 창작했던 솔로 다섯 편을 재구성하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 올려 일을 낸 것이다. 장시간 동안 과거 작업을 복기하며 관객에게 전하고자 한 의도는 무엇일까? 그는 우리 사회에서 기댈 곳이라곤 없는 이웃들의 현실을 무대로 소환하고, 온몸을 던져 그들의 삶을 환기한다. 

 다섯 편(<?>, <니가 사람이냐>, <미친놈널뛰기>, <섬>, <포옹>)은 ‘홀로 버티다 사라지는 사람들’이란 일관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니가 사람이냐>에서만 연극배우 김석주가 출현하고 나머지 4편은 금배섭이 홀로 퍼포먼스를 소화한다. 금배섭은 근 8년간 우리 주변에서 절망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관찰하며 작품으로 환원했다. 금배섭의 사회적 약자를 향한 올곧은 시선은 작업으로 이어져 <오>라는 사상 초유의 작품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작품 <오>는 우리가 느끼는 내적 고독과 슬픈 개인의 서사와도 맞닿기도 하고, 기댈 곳 없는 청년들의 사회에 대한 불안으로도 해석된다. 사실(현실)을 무대로 옮기며 적절하게 객관화한 작품이기에 <오>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공감과 연민의 정서가 확보된다.

  <?>에서 퍼포머가 범죄자처럼 몽타주 사진을 찍는 첫 장면은 이주여성이 타자가 되어 분리된 존재임을 암시한다. 퍼포머는 작은 아크릴 박스 안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데, 사회적 시선은 그를 전시장 안에 있는 대상으로 관찰한다. 여기에는 후진국에서 온 여성들에게 마치 결혼상품처럼 값을 매기는 우리의 모습이 반영됐다. 퍼포머는 다시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 <니가 사람이냐>에도 사회의 집단적인 폭력의 시선이 담겨있다. 퍼포머는 라텍스 장갑과 갈고리를 이용해 동작과 감정은 배제된 채로 모빌의 흐름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은유한다. 동시에 이 장면은 군중 속 외롭고 억울한 개인의 심정을 조명한다. 소품이 하나의 오브제로 작동해 전체 주제에 동화되는 과정이 실험적이고 신선하다.

 

<니가 사람이냐>

  <미친놈 널뛰기>는 금배섭이 서울역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을 관찰하며 만든 작품이다. 작품은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미친놈처럼 널을 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다리에 천이 묶인 퍼포머는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의 일상이 반복되듯, 널판을 메고 등퇴장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어지는 탈북민의 이야기인 <섬>에서 퍼포머는 각목으로 쉴 공간을 만들고 이동해 다시 집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 자신만의 고립된 공간으로 숨을 수밖에 없는 고독과 황폐한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절망적인 현실은 세월호 당시 구조원의 얘기를 모티브로 한 <포옹>에서도 이어진다. 무대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춤은 전혀 없이, 에어캡을 롤러로 미는 행위가 반복되며 노동의 현장처럼 그려진다. 이는 살아있는 자의 죄의식을 노동으로 환원하여 그 고통을 대신하는 것이다.

  다섯 작품에서 금배섭은 각기 다른 삶의 이유와 모습으로 등장한 사람들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이웃임을 이야기한다. 무심하게 그려내는 이웃의 고독과 절망은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한 작품이 끝나면서 남겨지는 소품들이 천장에 전시될수록 그가 춤춘, 홀로 견딘 사람들의 서글픔도 남는다. 5시간 30분이라고 체감하지 못할 만큼 금배섭의 집중력과 지구력은 놀라웠다. 다 함께 공평하게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역설한 <오> 솔로연작을 통해 금배섭은 예술가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능동적인 사회적 참여와 실천’을 한 것이다. 금배섭이 무대에서 보여준 이들은 이 순간도 어디에선가 벼랑 끝을 걷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이웃으로 따스하게 바라보는가? 아니면 나와는 무관한 타자로 보는가? 금배섭의 작품을 보고 난 후 관객들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봄 직하다. 

 

김혜라 춤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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