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든든한 아역배우 보호자

무대 아래 모든 순간에 동행

“내일 또 봐, 사랑해!”

샤프롱은 동선 숙지, 연기 연습, 동작 등을 세세하게 챙기며 무대 뒤 아역배우들을 살뜰히 보살핀다.
샤프롱은 동선 숙지, 연기 연습, 동작 등을 세세하게 챙기며 무대 뒤 아역배우들을 살뜰히 보살핀다.

 

  1980년대 영국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 '빌리'는 현실의 어려움을 딛고 아름다운 희망의 몸짓을 선보인다.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국내에서는 2010년 초연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수십 명의 아역배우들은 무대의 주인공이 돼 극을 이끈다. 과거 아역배우들이 귀여운 매력을 보여주며 비중이 낮은 조연을 주로 맡았다면, 최근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이 인기를 끌면서 실력 있는 아역배우들이 주연으로 활약하고 있다. 

  멋진 공연을 위해 힘쓰는 배우, 연출가, 감독 외에도 무대 위의 주인공인 아역배우들을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연극계에서 샤프롱은 아역배우와 관련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스태프를 일컫는다. 그들은 작품의 연습 단계부터 끝나는 날까지 아역배우들의 안전과 건강, 심리까지 책임지고 관리한다. 무대 뒤에서 배우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원활한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 밖 아이들의 동선과 스케줄, 식사까지 챙기며 친밀한 관계를 맺어 돌본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이예은, 최재석 샤프롱은 “아역 배우들과 단순한 선생-제자 관계를 넘어 가족 같은 유대감을 쌓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예은, 최재석 샤프롱의 일과를 재구성했다. 

 

아역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샤프롱의 일과는 아역배우보다 한 발 일찍 시작한다. 먼저 출근해 하루 치 동선을 미리 체크하고, 의상 등 연습에 필요한 소품들을 챙긴다. 아역배우들이 출근하자, 본격적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샤프롱의 하루가 시작됐다. 출근한 아역배우들에게 샤프롱은 가장 먼저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을 묻는다. 최재석 샤프롱은 원활한 연기를 위해 적절히 긴장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잘할 수 있다”며 배우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연습 중간중간, 아이들이 잊을 수 있는 세세한 부분들은 하나씩 메모해 알려주기도 한다. 식사 시간에는 배우들과 함께 이동해 밥을 먹고, 이후 이어진 연습 중에도 체력 보충을 위한 간식을 가져다주는 등 아역배우들을 옆에서 보살핀다. 샤프롱은 아역 배우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안전이라고 말했다. 이예은 샤프롱은 “아이들에게 녹음기를 튼 듯 무한 반복으로 안전에 대한 주의를 준다”며 “아역배우가 갑자기 아프거나 다치게 되는 상황을 최대한 막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일과 중 틈틈이 대본과 안무를 숙지하고 복습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아역배우의 모든 것을 관리하기에 기본적인 공연 현장의 모습부터 담당 배우의 대사와 동선까지, 자세한 사항을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예은 샤프롱은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공연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공연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역들이 고민하거나 헤매고 있는 부분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없어요. 아이들이 놓친 무대의 작은 요소까지도 설명해줘야 해서 완벽한 숙지가 필요하죠”라고 말했다. 그렇게 긴 하루가 지나고 맞이한 퇴근 시간, 샤프롱은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에게 배우가 숙지해야 할 부분을 다시 한번 전달한 후에야 일과를 마무리한다. 

 

백스테이지의 진정한 조력자

  무대에 오르는 날, 백스테이지의 샤프롱은 더욱 바빠진다. 연습 때와 마찬가지로 아역배우들의 출근을 확인하고, 건강 및 심리상태를 점검하는 것 이외에도 연출팀에게 배우의 컨디션을 틈틈이 보고해야 한다. 본격적인 공연 시작 전, 아이들의 머리를 빗겨주며 마이크를 채우고, 의상을 입히기도 한다. “아이들이 좋은 기분으로 공연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최재석 샤프롱은 ‘화이팅’을 외치며 배우들의 자신감을 북돋아 준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소품이나 약을 챙기고, 등장 위치에 배우를 대기시키자 공연의 막이 오른다. 

  공연 중에도 샤프롱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계속해서 모니터를 주시하며, 담당한 배우의 몸짓을 부지런히 좇는다.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배우의 몸 상태를 다시 확인한 후, 소품팀과 의상팀을 도와 신속하게 장면을 전환시키기도 한다. 1막과 2막 사이 쉬는 시간이 주어지자 샤프롱은 각자 담당한 아역 배우의 컨디션을 면밀히 관찰하며 휴식을 돕는다. 최재석 샤프롱은 ‘빌리’ 역을 맡은 배우의 다리를 마사지하며 다음 막까지 집중하게끔 간식을 먹인다. 이예은 샤프롱은 ‘데비’ 역을 맡은 배우에게 대사를 맞춰주고, 실수했다고 자책하는 아이를 격려한다. “괜찮아, 잊어버려. 그건 지난 일이야! 털어버리고 다음 무대를 더 잘하자.” 이외에도 틈틈이 무대의 세부사항들까지 신경 쓰며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어느새 공연이 끝난다. 공연이 끝난 후에 샤프롱은 그날의 공연 내용을 되짚어보고, 부모에게 관련 내용과 다음 출근 시간을 공지한 후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 

 

“선생님 잘하고 올게요!”

  아역배우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이예은 샤프롱과 최재석 샤프롱은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깊은 애정을 갖게 됐다. 이예은 샤프롱은 “아역들이 저를 엄마라고 부른 적도 있다"며 웃었다. “제 앞에선 생리현상도 거리낌 없이 하던 아이들이 다른 사람 앞에서는 부끄러워하거나, 제 담당이 아닌 다른 배우를 챙겼을 때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너무 재미있고, 아이들이 더욱 귀엽게 느껴져요.” 최재석 샤프롱은 아역배우들과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가 행복하다. “아이들이 아프면 저도 너무 걱정되고 힘들어져요. 반면 “선생님, 잘하고 올게요!”라는 아이들의 한 마디나 공연이 끝나고 저에게 폭 안기는 모습이 큰 보람을 주기도 하죠.” 

  국내의 경우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 아역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작품이 많지 않은 편이라, 해외에 비해 샤프롱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 이예은 샤프롱은 “샤프롱은 공연의 전반적인 사항을 모두 검토해야 하는 회사 매니저나 공연 경험이 없는 부모들보다 아역배우만을 전담해 제대로 돌볼 수 있다”며 “국내에서도 체계적인 채용기준이 마련돼 샤프롱이 전문성을 갖춘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샤프롱은 <빌리 엘리어트>의 관객들에게 즐거운 관람과 따뜻한 응원을 부탁하며, 함께하는 아역배우들에게도 애정이 가득 담긴 말을 전했다. “공연 끝나는 날까지 다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내일 또 봐, 사랑해!” 

아역배우들이 공연 중에도 샤프롱은 모니터를 주시하는 등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역배우들이 공연 중에도 샤프롱은 모니터를 주시하는 등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글 | 이현민 기자 neverdie@

사진제공 | 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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