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용산을 떠올릴 때 전자상가를 먼저 떠올리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세대를 떠나서 용산은 우선 비싼 동네. 용산 참사가 있던 곳이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화려한 주상복합 아파트가 높이를 자랑하는 그곳을 지나, 서울타워를 마주하며 이동하다 보면 경리단길이 등장한다. 골목 사이에는 코로나는 출입 금지인 곳인 것 마냥 자유로운 이들의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경리단길과 해방촌의 이태원이다. 한남동에는 압구정 백화점 내 푸드코트, 초호화 빌라 단지, ‘트렌디한디저트 가게들이 한 이들을 반긴다. 한강 변의 유엔빌리지는 이제 명실상부 고급주택의 상징이다. 그 유명한 동부 이촌동과 고상한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용산은 서울에서 주목받는 생활공간이다.

  하지만, 한 용산 동네의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담벼락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운치 있게 키보다 훨씬 높고, 군데군데 담쟁이로 분위기를 더하던 붉은 벽돌 담벼락. 그 너머에 미군이 있던 군사기지의 경계이다. 지금은 대부분 평택으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한국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미군기지는 81만 평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용산 면적 662만 평의 약 8%이다. 미군 장교 및 그 가족들이 거주했던 유엔 빌리지와 미군 병사들이 여가 및 유흥을 즐겼던 이태원 쇼핑센터는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지 생활권이었다. 용산기지 반환 및 이전 결정 이후 미군 골프장 부지가 용산가족공원으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변모하는 동안 기지 주변 고도제한이 해제돼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고, 이제 일부는 개방돼 새로운 포토존이 되었다.

  물론 미군기지의 흔적은 용산뿐만 아니라 동두천, 군산, 원주 등 전국에 남아있다. 왜 미군은 한국 정부의 역사보다 긴 시간을 주둔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미군의 대외군사전략과 중국 견제 및 동아시아 군사 질서 관리에서 찾든, 북한견제라고 하든, 분단모순이라고 하든, 전시작전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는 미군의 주둔에 의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쌍팔년도운동권식 인식이라고 외면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사람도, 운동권도 아니었지만, 다시 물음을 던진다. 이건 우리의 생활권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화문의 주한 미국 대사관은 용산 미군기지 부지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의 한 생활공간이 어떻게 다루어질지는 용산 미군기지의 부지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지역사회의 이해(利害)와 연관 지어 이해하는가에 달렸다. 반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늘품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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