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라이즈>

별점: ★★★★★

한 줄 평: 단순히 들어주는 것이 아닌, 귀담아 들리는 말들


  1996, 비포 선라이즈가 개봉한 지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뭘까. 파리로 돌아가는 셀린(남자 주인공)과 비엔나로 향하는 제시(여자 주인공)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짧은 시간 동안 빠져든다. 그렇게 둘은 함께 비엔나에서 내린다. 그림같은 도시와 꿈같은 대화 속에서 서로에게 스며든다. 여행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조금은 클리셰적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새롭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무수한 대화 때문이다.

  그들의 첫 만남은 기차 안 커플의 싸움이다. 화난 여자는 열차를 나가버리고, 이에 남자가 따라 나간다. 셀린이 제시에게 묻는다. “저 둘 왜 싸우는지 알아요?” 이에 제시는 모른다고 하며 대화가 끝나가려는 찰나, 말을 덧붙인다. “나이가 들수록 커플이 상대의 얘기를 듣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소리 들어본 적 있어요? 남자는 고음을 듣는 능력이 떨어지고 여자는 저음을 듣는 능력이 떨어진대요. 서로가 서로를 중화시키는 거죠.” 이에 남자는 그러네요. 서로 죽이지 말고 함께 늙어가라는 자연의 처사예요라고 답한다. 이들의 첫 대화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진정성있게 서로와 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그들은 충동적이고 즉흥적이기보다는, 짧은 대화만으로 서로의 감정에 닿고, 단순히 공감하는 것이 아닌 귀담아 들리는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에 충실했다.

  이후 이 남녀가 걸으며 나누는 대화들은, 롱테이크로 담긴다. 두 사람의 표정과 제스처, 웃음소리와 눈빛에 주목할 수 있다. 감정이입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마치 저 두 인물 중 한 사람이 된 것과 같은 기분도 낼 수 있다. 그중 인생에 대한 두 남녀의 시각은 주목할 만하다. “나에게 인생은 마치 조용히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어느 할머니의 추억 같은 거라고 생각해.” 이에 제시는 난 항상 13살짜리 소년 같은데.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되는지도 모르면서, 어른스럽게 사는 척 흉내나 내고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거지.”라고 답한다.

  두 인물의 상반된 견해를 들으며 잠시 내 생각을 속으로 말해 봐도 좋다. 나 또한 어떤 때에는 행복한 순간, 불행한 순간마저도 죽기 전에 지나가는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또 어떤 날엔 제시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스스로가 어른인 척 겉모습만 흉내 내는 미성숙한 어른 같기도 하다. 무엇이든 좋다. 가까운 친구와도 하기 어려운 깊은 대화라면, 이 영화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마음과 소통해보길 바란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아름답게 여길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이 영화를 통해 조금씩 배워가는 좋은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김연서(문과대 영문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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