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환상문학으로 보는 북한

‘청년’ 수령 김정은 집권 정당화

유토피아의 도래로 인식하게 해

서동수 교수는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에는 현재의 결핍과 북한이 욕망하는 세계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했다.
서동수 교수는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에는 현재의 결핍과 북한이 욕망하는 세계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은 급변하는 북한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된다. 수년째 북한 과학환상문학과 그에 반영된 북한사회의 모습을 연구하고 있는 서동수(신한대 리나시타 교양대학) 교수는 “북한문학 연구는 주로 북한의 과거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둔다”며 “현재 김정은 시대가 욕망하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오늘날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을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동수 교수를 만나 김정은 시대에 발표한 북한 과학환상문학에 드러난 북한사회의 현실과 특징을 물었다. 

 

-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이 가지는 의의는

  “과학환상문학은 ‘지금 여기’가 아닌 ‘먼 미래의 그때’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현재의 결핍이 만들어낸, 북한이 욕망하는 세계는 현실과 중첩된 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즉, 북한 과학환상 문학은 오늘의 결핍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미래의 희망을 고백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분야입니다.” 

 

- 과학환상문학 속 당과 수령은 어떻게 묘사되나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이 여타의 북한문학과 가장 다른 점은, 수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북한문학 전반에서는 수령이 존재하고, 그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서사 속 문제해결의 중심에 수령의 존재와 교시가 놓여있는 것이죠. 특이하게도 과학환상문학에는 수령이 등장하거나 그의 말씀이 전해지는 경우가 없어요. 오로지 인민들의 조국애와 과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죠. 

  수령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미래의 최고 존엄을 형상화하는 데에 따른 제약 때문으로 추측합니다. 수령은 어디까지나 현존을 바탕으로 한 재현의 대상이지 가상의 존재를 바탕으로 한 상상의 대상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로동당’이라는 표현도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오히려 상급기관의 결정에 오류가 있음을 비판하는 작품들도 간혹 등장하곤 합니다.”

 

- 김정은 시대 과학환상문학의 특징은

  “이전의 과학환상문학에서 체제와 수령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소재였는데, 김정은 시대에는 작품 속에서 체제가 전면에 등장해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서는 등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여요. 또 김정일 통치 시기에는 혁명 세대였던 김일성 시대의 고난을 강조하고 그들이 일궈놓은 북한을 칭송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반면, 김정은 시대에는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청년세력’ 담론이 부각되기 시작해요. 북한의 각종 미디어는 청년들이 사회를 이끌어갈 주요 동력임을 조명하죠. 

  과학환상문학 역시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김정은 집권 초기에 발표된 과학환상문학 속 ‘청년’ 인물들은 모두 ‘위기상황을 해결하는 구원자’로 등장했습니다. 이는 20대 후반의 김정은, 즉 ‘청년’ 김정은을 ‘수령’ 김정은으로 전환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어요.” 

 

- 김정은 시대 발표된 대표적인 과학환상문학 작품은

  “2014년 발표된 리금철, 한성호의 <P-300은 날은다>는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조선의 선박을 탈취하려는 해적 떼에 맞서는 이야기로, 모든 인민을 응시하는 자애로운 면모로서의 국가를 그려내면서도, 한편 악에 대해서는 철저히 응징하는 무서운 면모의 국가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며 체제의 우수성을 강조해요.

  한편, 김정은 시대의 또 하나 흥미로운 작품은 2017년 발표된 과학환상그림책 <싸우는 지혜동산>입니다. 2017년은 과학환상문학의 주제가 ‘청년’에서 ‘체제’ 문제로 전환되는 시점이었어요. ‘청년’ 김정은을 ‘수령’ 김정은으로 안착시키는 작업이 마무리되고,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로 북미 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체제결속’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주제로 부상했죠. <싸우는 지혜동산>는 이러한 체제에 의문을 가지고 논의한 산물로 등장한 작품이었어요. 이는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현 북한체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독특해요. 무서운 ‘아버지’의 존재가 아닌, 위계 없는 다수의 리더십에 운영되는 세계를 열망한다는 점에서요.” 

 

- 과학환상문학의 상상력이 김정은 시대에 불러온 변화는

  “김정은 시대가 들어서고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역시 평양의 스카이라인입니다. 예컨대 미래과학자거리, 창전거리, 려명거리와 같은 신도시, 초고층의 화려한 건물과 문수물놀이장 등의 문화시설은 김정은 시대가 주장하는 ‘사회주의 문명국’의 표상이 됐어요.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 달리, 김정은의 강성국가는 관념적으로만 혹은 과학환상문학에서나 볼 수 있던 사회주의 낙원이 현실 속에 재현된 것입니다. 과거엔 과학환상문학이라는 상상 속에서 그려지던 유토피아가 김정은 시대에는 평양을 필두로 실제 구현된 것이죠. 이러한 행보는 인민들에게 ‘유토피아’는 ‘알 수 없는 먼 미래’가 아니라 ‘곧 도래할 가까운 미래’로 인식하게끔 의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글 | 박다원 기자 wondaful@

사진 | 문도경 기자 d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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