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서머싯 몸은 가난에 대한 낭만적 통념을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경고한 바 있다. ‘(가난은) 사람을 끝없이 비굴하게 만드네. 사람의 날개를 꺾어버리고, 암처럼 사람의 영혼을 좀먹어 들어가지.’ 우리가 먹고 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가능할까? 나는 지금 천년왕국과 같은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먹고 입고 자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적절한 나이에 배움을 받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아도 좋을 그 최소한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에 합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 현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한국이 OECD 중 노인빈곤율이 1위라는 사실을 거론할 수 있다. 조금만 둘러 보더라도 우리는 사각지대에서 삶을 감내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공적연금 역시 심각한 쟁점 중 하나다.

  가장 많은 가입자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경우, 평균소득 대비 연금 비율을 의미하는 소득대체율은 현재 40년 가입자 기준 40%로, 가입 기간이 줄어들면 지급 비율도 감소한다. 최소 노후생활비가 월 108만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갈수록 소득과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지금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경력단절 여성이나 플랫폼 노동자 등 이전 체계에서 포섭되지 않는 자들은 배제되기 일쑤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이 2040, 50년대엔 고갈된다는 예측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복지는 땅 파서 하는 사업이 아니니, 재원의 문제는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맞다. 다만, 재정적 건전성에 지나치게 기울어 본래의 취지를 잊지는 않았으면 한다. 설령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필요한 지출을 걷어 재분배하는 부과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운영은 가능하다.

  이는 유사한 연금제도를 가지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미 활용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다행히도 기금 고갈까지 아직 시간이 남은 만큼,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사회보장망의 구조를 재설계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다. 우리와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누군가 죽어가고 있단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빈곤이 암처럼 우리의 삶을 집어삼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너무도 쉽게 잊는 사실이다.

 

문석민(문과대 철학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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