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가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노화가 개인에게 피할 수 없는 위험이라는 데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안정성이 담보되어야 하고, 노동력의 재생산에 있어 시장에서의 생산성을 상실할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노동력은 은퇴 이후에도 연금으로 탈상품화되어야 한다. 원론적으로, 제도의 성패는 구체적 생애를 살고 있는 인간 개개인에 대한 신뢰에 있으며, 이는 전 생애에 걸쳐 산업 자체의 관계자로서 살아온 것에 대한 보장으로 달성된다.

  한국은 그 대신 가정으로의 부양의무를 전가해 지급 비용의 최소화를 지향하는 잔여주의적 기조를 바탕으로 한다. 한국 복지 체계는 직능 부문의 유지를 기조로 국가공무원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제하고 지급 비용이 최소화된 국민연금을 운용한다. 잔여주의에 충실히 따른 논의에 따라 국민연금은 잔액 고갈 연도가 관건이 된다. 결국, 논의는 생산의 총량이 정해져 있고 모든 변혁은 을들 간의 싸움이라는 구호 아래, 공무원과 군인 연금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부정해야 하는지의 여부로 치닫는다.

  그러나 사실 이 공정 싸움은 자본의 성격과 그 분배 구조에 철저히 의존하며, 자본주의하에서의 한계생산성에 좌우된다. 위험 부담이 각자도생으로 이어질 때 개인은 전 생애과정의 목표를 자본소득을 통한 위험대비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목표는 끝내 배타적 생산수단으로서의 ‘부동산 자산을 통한 지주 되기’로 귀결되고는 한다. 이 ‘지대’를 향한 열망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새로운 복지를 제시하려는 한 개인의 시도를 가로막는데, 여기에는 가족과 가정이 크게 작용한다. 곧 보편적 성원권은 해체되고, 가족 내에서의 상속과 부양권의 싸움이 노인의 지위를 좌우하게 되기 때문이다.

  당장 선진 조합주의 국가들이 마주한 국고 고갈문제를 떠나서, 가정의 상속 소음 사이에서 성원권을 잃어가는 을들의 힘없는 이 논쟁은 곧 그 의미를 잃는다. 그래도 원한다면, 공무원 연금과 군인 연금을 통폐합하겠다는 논의를 전개하는 것을 기꺼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는 한국 빈곤율의 3분의 1가량이 가정에서 자리를 잃은 독거노인 가구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정윤석(문과대 사회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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