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숨을 쉬는 방법을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다 숨을 쉬며 살아간다. 굳이 숨을 쉰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아도 숨을 쉬며 살아간다. 그런데 나는 숨 쉬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있다. 중학생 때 체육 시간에 국학기공을 했다. 전통적인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름을 가진 이 과목을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반 친구들과의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댄스반 대신 국학기공반에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나는 국학기공을 무척 아끼게 됐다.

  국학기공을 할 땐 체조를 한 후 ‘숨만 쉬는’ 시간이 있다. 편안한 체육복을 입은 우리는 다 함께 무용실에 눕는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강사는 “들이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한다. 평소보다 숨을 길게 뱉어보기도 하고, 뱉는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며 생각은 비워버린다. 떠오르는 생각에 잠기는 게 아니라, ‘생각이 나고 있구나’하고 관망하면 된다. 잠들어도 상관없다. 누구는 잠든 대로, 누구는 눈만 감은 대로 누워있는다. 시간이 끝나면 다 함께 박수를 치며 일어났다.

  이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중학생 땐 요가 동아리를, 최근까지는 필라테스를 했다. 요가와 필라테스를 할 때도 강사들은 ‘호흡’을 가장 강조한다. 요가를 끝낸 후에 모여서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며 쉬는 그 시간이 무척 좋았다. 가끔 피워주시는 아로마 향도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만, 내 호흡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그 이후로 숨을 쉬는 방법을 따로 배운 적도, 쉬는 시간을 가진 적도 없다. 일주일 내내 달리다 보면 한 달이, 어느새 일 년이 지나가 있다. 강박이 심해져서 끝나지 않은 일이 있을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사소한 일들마저 과제처럼 느껴졌다. 모든 걸 급하게 느끼는 나에게 동생이 물었다. “언니, 그러다가 숨 쉬는 것까지 과제처럼 느끼면 어떡해?” 아니나 다를까 스트레스가 심할 땐 숨쉬기가 어려웠고, 공기의 무게가 무척이나 무거웠다. 그 모습을 본 친구는 “숨은 잘 쉬어지냐”고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도 그 말은 숨통 트이는 위로였다.

  사람들은 일하지 않을 때, ‘숨쉬기 운동만 하는 중’이라 한다. 진정으로 쉬는 건 ‘운동’이라 부를 만하다. 들이마시는 숨과 내뱉는 숨에 집중해보자. 숨 쉬는 건 어렵고 쉬는 건 더 어렵다. 온전히 숨만 쉰 게 언제였던가. 미세먼지들도 좀 치워버리고, 청정한 공기를 맡아볼 날이 오길. 잘 쉴 수 있어야, 살아 있음도 느낄 것이다.

 

이성현 기자 saint@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