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어 아담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아담이 잠 든 틈을 타 갈비뼈를 빼서 여자를 만들고 이브라 하였다.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에서 나온 존재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실은 하느님은 이브를 먼저 만드셨다. 그리고 이브의 갈비뼈를 빼서 아담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왜 하느님은 남자를 먼저 만들었다고 했을까? 그건 남자가 잘 ‘삐치는 존재’여서 하느님이 이브와 짜고 아담의 자존심을 살려주기로 밀약을 했기 때문이다. 출처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느 유머 싸이트에서 본 적이 있는 이야기이다.

남자는 대범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옹졸하고 여자는 옹졸할 것 같지만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넓은 아량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는 점에서 유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성경에 전하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만 해도 이미 가부장적 이념이 개입된 흔적이 역력하다. 본래 민속과 신화의 세계에서 여성은 풍요와 생산의 표지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관념은 출산을 통해 새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생물학적인 조건에 기반한 원초적 사유체계라 할 수 있다.

생명과 생성의 이미지인 물과 달과 여성을 동격으로 인식하는 민속적 관념 또한 풍요로운 힘 혹은 생산력의 근원으로 인식되고 있는 여성의 상징적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동, 관북 지역에서 행해지는 나경속(裸耕俗)은 남성이 발가벗고 밭을 갈면서 땅의 신을 기쁘게 함으로써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祈豊祭)인데, 풍요를 가져다 주는 지신(地神)이 바로 여성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암수의 연결을 상징하는 줄다리기는 농경자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원시적인 성행위가 변형되어 전승된 민속놀이인데, 남성과 여성이 대결하는 줄다리기에서는 여성이 이겨야만 풍년이 든다고 한다.

이처럼 여성이 풍요를 가져다 주는 신적 존재로 인식되는 관념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바,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또한 여성이었다. 창조신으로서의 여성의 신적 형상은 설문대할망신화에 잘 나타나 있다. 제주도 설문대할망은 오줌 줄기의 힘으로 제주 섬 한귀퉁이를 동강나게 해 소섬이라는 섬을 생겨나게 하고, 바다나 내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같은 창조신·생산신으로서의 여성의 신적 면모는 후대로 갈수록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층차를 드러내며 변주되어 나타나는바, 기본적으로 여성은 주인공에서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는 부차적 인물로 변모되어 간다.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웅녀나 유화, 알영 등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건국신화는 건국시조에 관한 이야기로, 영웅적 주인공이 국가를 창건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함으로써 개국의 정당성을 드러내고 나아가 집단 구성원의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형성되고 전승?유포된 것이다. 그리고 국가 권력의 형성과 재편 과정을 형상화한 신화에는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이념체계가 반영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건국신화의 주인공은 철저히 남성중심적이며, 여성은 건국시조의 어머니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 보조적 인물로서만 기능한다. 그렇다고 해서 본래 여성이 지녔던 신적 요소가 완전히 소거된 것은 아니며, 지모신 혹은 곡모신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집을 떠나는 주몽에게 오곡의 씨앗을 싸서 주는 유화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건국시조인 남성은 하늘에 혈통을 두고 있는 데 비해 그 배우자 혹은 건국시조의 어머니는 땅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는 ‘天父地母’의 관념이 투사된 결과이다.

건국신화에서 보이는 또 한가지 중요한 특징은 ‘여성 수난’ 모티프이다. 삼칠일 동안 굴에 갇혀 쑥과 마늘로 연명한 후에 여자로 태어날 수 있었던 웅녀나, 우발수가에서 입술이 늘어나는 아픔을 겪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가 금와왕에게 발견된 뒤 방안에 유폐되어 주몽을 낳은 유화 등에게서 그러한 모습이 잘 나타난다.

단군신화에서 춘향전에 이르기까지 서사문학사에서 그 유형적 동질성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져 왔던 ‘여성 고난’ 모티프를, 신으로 좌정하기 위해 치루어야 하는 입사식으로서의 통과의례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남성중심적 지배질서가 확립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하락하면서 신적 면모 또한 점차 약화되어 간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온당할듯하다.

신으로 좌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노래한 무속신화에 있어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바리데기나 당금애기, 감은장아기 등은 모두 고난을 겪고 나서야 스스로 신으로 좌정하거나 자신의 아이들이 신으로 좌정된다. 철저한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여성 주인공의 고난은 죽음, 유폐, 감금, 어둠, 빈곤 등 불모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고난을 겪고 난 여성은 생명, 출산, 밝음, 풍요로움으로 상징되는 구원의 이미지로 거듭 난다. 이렇듯 신화 속의 여성은 비록 통과의례처럼 고난을 겪어야 했지만, 주체적으로 이를 극복하고 인간의 구원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오늘날 전쟁, 환경파괴 등으로 인해 인류가 심각한 생존 위기에 봉착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절제되지 않은 남성적 욕망이 끝없이 분출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세상을 창조하고 생산을 풍요롭게 하고 생명의 부활을 가져온 여성적 가치의 부활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고 하겠다.  고난의 역사를 되풀이했던 여성들이여, 이제 그대들이 저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세상을 열 차례다. 아울러 태어나면서 꼭 쥐고 있던 주먹 힘에 기대어 살아왔기에 그 힘을 빼앗기면 갈 길 몰라 하는 우리 남성들에게도 한 수 가르쳐주기를….

김기형(문과대 교수,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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