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출전권 추가 확보

코로나 시국 속 쿼드러플 연마

네벨혼 트로피에서 최고점 경신

 

이시형 선수는 네벨혼 트로피에서 개인 최고점을 경신하며 최종 5위에 올랐다.

 

  2022 베이징 올림픽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두 명의 남성 싱글 피겨스케이터가 출전한다. 이시형(문스대 스포츠과학19) 선수는 8월 개최된 네벨혼 트로피에서 최종 5위에 오르며,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빛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 숱한 엉덩방아와 눈물이 함께했다. 경제적 문제로 피겨를 그만둘 뻔한 순간부터, 열악한 국내 환경 속에서도 쿼드 점프를 연마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도대체 어떻게 헤쳐나갔냐는 물음에 그는 해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냥 하면 돼요!”

 

  "복도 위에서 점프 뛰던 ‘미친 놈’이었죠"

  2010년 2월, 초등학교 4학년 이시형 선수가 피겨와 사랑에 빠지기까지는 4분도 걸리지 않았다.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거슈윈 피아노 협주곡’에 맞춰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는 무엇인지 모를 벅차오름을 느꼈다. 올림픽을 본 다음 날부터는 ‘피겨’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학교 복도는 ‘이시형 전용 아이스링크장’이 됐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나가 김연아 선수의 점프 기술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미친놈 같다”는 수군거림에도 매일 무작정 복도에 나가 피겨 동작을 연구했다. 결국 이시형 선수의 별난 피겨열정은 선생님을 통해 어머니의 귀에 들어갔다. “피겨가 진짜 하고 싶어?”라는 물음에 망설임 없는 대답을 들은 어머니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아들을 바로 목동 아이스링크장으로 데리고 갔다. 11살, 이시형 선수의 피겨인생이 시작됐다. 피겨를 시작한 지 1년 만인 2011년,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꿈나무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며 금세 피겨 유망주로 떠올랐다.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 나가던 중, 그의 피겨인생에서 큰 시련이 찾아왔다.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던 해, 종합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점 차이로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다. 국가대표 선수에게는 태릉 빙상장이라는 연습공간과 훈련 수당 등 안정된 훈련 환경이 마련된다. 가정 형편을 고려했을 때, 피겨를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실제로 이시형 선수는 선발이 불발된 이후, 한 달 동안 스케이트를 탈 수 없었다. ‘정말 끝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스케이트를 접으려는 순간, 이시형 선수의 사정을 들은 지역사회와 팬들은 모금 계좌를 개설해 지원에 나섰다. 모금을 위한 서명 운동에는 하루만에 6000명이 넘는 사람들 이 서명에 참여했다. “팬분들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정말 그만뒀을 거에요.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피겨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 키가 계속 자랐다. 현재 이시형 선수의 키는 186㎝로 피겨스케이팅 선수 중 최장신에 속한다. 피겨스케이팅은 평균보다 키가 작고 팔다리 길이도 짧아야 유리한 종목이다. 키가 크면 무게중심이 위쪽으로 향하게 돼 균형을 잡기 어렵고 체력도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급격히 자라난 키는 고등학교 입학 때 이미 180㎝를 향해있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키는 눈치 없이 계속 자라났다. 점프를 배우는 과정에서 키가 자라나니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라 어제와 똑같이 뛰는데도 점프가 되지 않아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점프뿐만 아니라 스핀을 해도 어지러워 쓰러지기 부지기수였다. “넌 키가 커서 한계가 있다”라는 주위의 말을 들으면서도 악착같이 연습했다.

 

  쿼드러플? “밑져야 본전이지”

  코로나 시국은 많은 실내체육 종목 선수들에게 타격을 줬다. 이시형 선수 또한 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수도권 링크장이 방역수칙에 따라 거리두기 2.5단계 이상에는 문을 닫으며 연습할 공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결국, 링크장을 이용하기 위해선 거리두기 단계가 2단계 이하인 지방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여느 선수들처럼 이시형 선수도 지방의 사설 링크장을 찾았지만, 훈련비가 만만치 않았다. 수도권에서 링크장이 열리지 않아 지방으로 내려온다는 점을 악용한 높은 대관료에, 숙소비까지 오롯이 선수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었다. 고민 끝에 이시형 선수는 최소한의 빙상 훈련을 택했다. 남는 시간에는 지상에서 개인 훈련을 진행했다. “훈련할 곳이 없어서 산을 탔어요. 집 근처에 있는 천마산을 오르면서 기초체력을 키우는 훈련을 했어요. 상황이 어렵다 보니 무작정 쉬는 선수들도 있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뭐라도 하자’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이 시기에 이시형 선수는 쿼드러플(4회전) 기술을 완성했다. 시즌 중에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 고난도 기술을 연습하다 부상을 당하면 당장 나가야 하는 대회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부상위험을 이유로 시도하지 못했던 기술들을 연습할 수 있는 시간들이 생겼다. 네벨혼 트로피에서 성공한 쿼드러플 살코 또한 이쯤 완성됐다. 2019 시즌에 틈틈이 연습해 쿼드러플을 성공한 경험이 있긴 했지만, 단순 쿼드러플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쿼드러플 점프에 점프 중 손을 들고 뛰는 타노를 추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쿼드러플 점프에 타노를 추가해 구사하는 선수는 러시아 선수 중에도 한두 명이었다. “‘남자 선수는 쿼드러플이 생명이니, 하나는 익혀야 한다’라는 생각이 워낙 강했어요. 해보지도 않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안 하면 어떻게 성장하겠어요.” 그리고 뛴 첫 번째 시도는 말도 안 되게도 성공이었다. “산을 오르기도 하고 웨이트 등 지상 훈련을 많이 했거든요. 코로나 상황이 완화되고 다시 본격적으로 링크장에서 훈련을 시작했을 때. 몸에 힘이 붙은 상태였고, 출전해야 하는 대회도 없다 보니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네벨혼에서 새로 쓴 역사

  첫 시도에 바로 뛴 쿼드러플 점프였지만, 이를 완전히 몸에 익히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연습녹화 영상을 보며 연구를 거듭했다. 끊임없는 노력 끝에 얻은 쿼드러플 기술이 가장 빛을 발한 것은 단연 2021 CS 네벨혼 트로피였다. 이 대회에서 이시형 선수는 최종 5위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에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 1장을 안겨 줬다.

  네벨혼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네벨혼에 출전하기 위해 치른 국내 선발전부터가 난관이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것도 잠시 다시 기승을 부렸다. 태릉 선수촌에서 과천시민회관 아이스링크장으로 옮겨 연습을 진행했지만, 하루에 한 시간 정도만 연습할 수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힘줄에 염증이 생기는 부상까지 겹쳐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우여곡절 끝에 참가한 네벨혼에서의 쇼트 결과는 출전권을 획득할 수 있는 순위 중 턱걸이인 7위였다. “사실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될까 말까 한 대회라서 컨디션도 안 좋은데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근데 7위를 하고 나서는 희망이 보였어요. 프리만 잘하면 희망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치룬 프리 경기에서는 무대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을 보여줬다. 쿼드러플 살코 성공에 연이은 트리플 악셀 랜딩 성공으로 경기 초반에 자신감을 얻었다. ‘남은 두 개의 점프만 뛰면 출전권을 딸 것 같다’고 직감했다. 최종 총점 229.14점으로 30명의 출전 선수 중 5위를 차지했다. 이시형 선수가 개인 최고점을 경신한 순간이자, 우리나라가 동계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남성 싱글 피겨 출전권 2장을 획득한 순간이었다.

 

  네벨혼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올림픽 티켓을 땄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올림픽 국내 선발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베이징 올림픽 얘기가 나오면 상투적으로 ‘나가고 싶죠’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속으로는 ‘티켓이 한장 뿐인데 어떻게 나가겠어’라는 생각했어요. 근데 이젠 ‘진짜로 선발전이 다가오는구나. 올림픽이 다가오는구나’를 조금씩 피부로 느껴요. 꼭 최선을 다해서 베이징으로 가고 싶어요.”

 

글 | 송다영 취재부장 foreveryoung@

사진제공 | 이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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