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얘기로 글을 시작합니다. 대학 1학년 1학기 문학 강좌의 중간 과제로 필자는 난생 처음 리포트를 제출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각 사람의 리포트를 받으시면서 큰 소리로 제목을 읽으셨지요. 가끔씩, “첫 리포트인데 주제를 잘들 잡았네”라고 말씀도 하셨습니다. 제목을 보시면서 각 리포트의 내용도 짐작하여 조금씩 설명도 해주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어느 하나를 들고는, “시의 세계?”라고 약간 높은 목소리로 제목을 읽으시고는 고개를 갸우뚱하셨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시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바로 제 리포트의 제목이었거든요. 

대학생의 리포트 주제는 대학생의 공부에 적합해야 합니다. 즉 리포트의 내용과 범위와 수준이 대학생 수준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흔히 많은 대학생들이 리포트의 제목 또는 주제를 너무 넓고 막연하게 잡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주제를 너무 전문적이거나 기술적으로 잡기도 합니다. 

리포트의 주제가 너무 넓고 막연하면 내용이 부실해질 수 있습니다. 즉 내실 없는 일반적인 내용, 누구나 다 아는 내용에 그칠 염려가 있습니다.

저의 첫 리포트인 ‘시의 세계’라든지, ‘철학과 인생’, ‘한국의 가족’, ‘문명 발전과 환경 오염’, ‘원자의 세계’ 등은 그 주제가 너무 넓고 일반적이지요. 이런 제목이나 주제의 리포트에는 대학생 수준에 맞는 알찬 내용을 담을 수가 없을 겁니다. 

또한 주제가 너무 기술적, 세부적, 전문적이어도 좋지 않습니다. 가령, ‘임진왜란이 한글 문자 변화에 미친 영향’, ‘4·19와 5·16의 정치사회학적 의의 비교 분석’, ‘최근 10년 사이의 한강 수질의 오염 변화’ 등은 너무 전문적이지요. 대학생의 공부 수준으로는 이런 정도의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리포트를 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혹 교수님이 아마 전문적인 관련 논문 한두 편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겨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리포트의 주제 즉 리포트의 내용과 범위와 수준은, 교수님들이 읽어보시고 ‘제법 공부를 한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실 정도로 쓰면 좋습니다. 

노명완(사범대 교수, 국어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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