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기자, 거리감 느껴지게 왜 그래~ 선배라고 불러.”

  국회라는 공간을 일터로 삼게 된 지 일주일 만에 들었던 조언이다. 멋쩍게 웃으며 식사자리를 겨우겨우 끝냈지만, 그 의원의 말이 잔상에 오래 남았다. 집에 오는 길 내내 곱씹었다. 그가 내 선배라고? 네이버에 김 의원의 이름 석 자를 검색했다. 태어난 지역,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이전 직장까지. 찬찬히 살펴봐도 내가 살아온 궤적 중에 그와 겹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왜 선배일까. 인생 선배라는 뜻인가? 그럼 나는 모든 사람을 선배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선배’. 국어사전의 정의는 이렇다.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학예(學藝)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 기자가 국회의원을 선배라고 부르고 국회의원이 자신을 ‘선배’라고 부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 기자가 앞으로 정치를 할 거라는 의미가 숨어있는 셈이다. 이 사람은 내가 이후 정치권에 오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친근감의 표현이라지만, 나는 그의 말이 너무 거슬렸다.

  그 이후에도 국회에서는 ‘선배’ ‘선배’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생각보다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선배, 오늘 최고위 발언은 전략을 잘못 짠 것 같아.” “선배, 지지율 어쩔 거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최근에는 “건이 누님” “우리 동생”이라고 말하는 녹취가 지상파 방송을 탔다. “원래 취재원과 저런 호칭을 써?”라고 묻는 댓글에, 정말이지 어디 숨고 싶었다.

  누군가는 호칭인데 뭐 어떠냐고, 친근감의 표시 아니겠냐고, 가깝게 지내면 취재도 잘 되고 좋은 거 아니냐고,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일면 맞는 부분도 있다. ‘기자님’ ‘의원님’을 붙이면 어색해서, 괜한 거리감이 느껴져서 쓰는 호칭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호칭이 호칭에서 그치지 않을 때다. ‘선배’ ‘누나’ ‘동생’이라는 호칭 뒤에 붙은 말들은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나, 나 거기 가면 얼마 줄 거야?” “누나가 동생 주는 거니까” “선배 저 좀 끌어주세요.”

  정갈하게 빗은 머리에 쫙 빠진 양복을 입었던 그 의원. 나는 그를 감히 선배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바락바락 대들고 싶은 반발심에 그의 MBTI와 혈액형까지 검색해버렸다. 진심으로 공통점이 1도 없었으면 했다. 다시 한 번 밝힌다. “김 의원님, 당신과 저는 (다행히도) 겹치는 게 하나도 없답니다. 평생 당신을 ‘선배’라고 부를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선배’라는 호칭은 정치인과의 친소관계에 탐닉하는 기자들의 취재 방식을 보여주는 언어일지도 모른다. ‘국회의원 선배’ ‘후배’ ‘누나’ ‘동생’ ‘형님’이 유착하는 권언 관계의 씨앗일 수도 있는 것이다. ‘권언유착’은 사실 별 게 아니다.

 

<진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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