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측부터 사전 시연까지

‘건물’이라는 캔버스 위

영상으로 그리는 통도사 이야기

 

  깊은 어둠이 깔린 양산의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웅장한 소리와 함께 조그마한 빛이 하나둘씩 모이고 부처의 상이 만들어진다. 공중에 떠 있는 듯,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이 입체적인 모습이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회색빛 외벽은 번쩍이는 빛과 함께 색색의 전통문양으로 물들어간다. 화려한 문양이 사라지자 건물 위로 비가 내리고 벼락이 떨어진다. 박물관의 기둥 사이로 용이 지나간다. 통도사가 불로 뒤덮이고 무너지며 다시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온다. 어둠 속에 밝은 빛의 용이 모여 부처상과 연꽃을 만들고 마침내 통도사의 모습이 등장한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을 화려하게 수놓은 것은 빔프로젝터 두 대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건물의 벽면에 빛을 쏘아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맵핑으로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통도사 라이트업행사의 빛을 밝혀준 미디어 파사드는 색색의 무늬로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외벽을 꾸며줬다. 미디어 파사드는 무엇보다 건물의 특색에 맞춘 디자인이 필요하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미디어 파사드를 기획한 ‘DO PROJECT’의 여희재 대표를 만나 제작 과정을 살펴봤다.

 

건물 실측으로 빛을 재단하다

 

작업자들은 스토리 보드를 바탕으로 스토리의 흐름을 파악한다.
작업자들은 스토리보드를 바탕으로 스토리의 흐름을 파악한다.

 

  프로젝트가 결정되면 먼저 현장 실측에 나선다. 현장 실측은 미디어 파사드가 구현되는 건물의 외벽과 기둥, 지붕 등의 외형을 측정하며 이뤄진다. 현대 건물들은 대부분 설계도를 참고하고, 설계도로 파악되지 않는 부분들은 줄자나 레이저를 활용해 직접 측정한다. 여희재 대표는 건물의 크기에 따라 사용되는 빔프로젝터의 개수가 달라지고, 전체 제작 비용에도 큰 변동이 생긴다며 현장 실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측만큼 중요한 과정은 빔프로젝터의 위치 선정이다. 여희재 대표는 빛의 경로가 미세하게 변형돼도 투사되는 영상의 형태가 크게 달라진다빔프로젝터 근처의 자연물 때문에 건물에 그림자가 지진 않는지, 빛이 지나가는 길과 관객들의 경로가 겹치진 않는지 고려한다고 말했다.

 

외벽에 녹여내는 건물의 이야기

  미디어 파사드는 다채로운 빛의 변화로 건물의 외벽에 하나의 스토리를 펼쳐낸다. 영상 스토리를 기획할 땐 건물이 가지는 특별한 이야기나 건물이 위치한 지역의 콘텐츠를 활용하기도 한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미디어 파사드의 영상 스토리는 통도사 창립 신화를 기반으로 기획됐다. 영축산 기슭에 사는 독룡을 부처님이 교화한 후,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축조했다는 통도사 창건 스토리를 빛으로 구현했다. 여희재 대표는 부처님, 연못, 용 등 통도사를 구성하는 형상들을 빛의 형태로 만들어 이야기의 흐름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시연된 미디어 파사드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시연된 미디어 파사드

 

  건물 구조의 특성을 활용한 영상 디자인도 중요하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경우 직선형 구조를 가진 현대적인 건물과 차별화된 특징들을 부각시켰다. 건물을 뒷받침하는 기둥들을 활용해 기둥 사이로 용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구현하거나, 빛을 조절해 기둥 사이에 석상을 배치하는 등 건물에 입체감을 더했다. 여희재 대표는 정체돼 있는 기존 건물의 틀 위에서 외벽의 색깔이나 모양을 바꾸는 등 시각적인 변화를 가장 신경쓴다고 말했다.

  스토리 구성이 완료되면 작품의 청사진이 되는 스토리보드를 바탕으로 그래픽 디자인이 진행된다. 전통 문양과 같이 평면적인 효과는 2D,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입체적인 효과는 3D 디자인으로 나눠 작업한다. 여희재 대표는 “2D 방식으로 제작된 문양을 3D로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에, 스토리보드를 기반으로 한 상호 피드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전 시연으로 빛의 경로 점검

  사전 테스트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됐던 영상 디자인을 실제 건물에 입혀보는 첫 과정이다. 사전 테스트에선 최대한 오차 없는 작품 구현을 위해 건물 모양에 영상을 맞추는 작업에 몰두한다. 여희재 대표는 빔프로젝터 대여비가 수천만 원을 오가기에 현장 시연 전 사전 테스트는 최대한 컴퓨터의 3D 프로그램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완성된 영상 디자인을 3D 프로그램 속에서 구현해보거나, 3D 프린터로 만든 건물의 미니어처에 프로젝터로 빛을 쏴 시연하기도 한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미디어 파사드의 경우 시연 사흘 전 현장에 직접 빔프로젝터를 설치해 사전 테스트를 진행했다. 여희재 대표는 건물의 모서리 부분에서 영상이 엇나가지 않도록 조절하거나, 빔프로젝터들의 빛이 서로 맞닿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블렌딩작업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야외에 노출된 빔프로젝터가 날씨와 습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완벽한 영상 구현을 위해 공기순환장치를 설치하고, 빔프로젝터를 고정하면 모든 준비는 완료된다. 프로젝터의 빛이 어둠 속 통도사를 뒤덮으면 한 달간의 여정이 끝이 난다. 미디어 파사드로 구현된 통도사의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관람객들은 통도사의 새로 고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김시현 기자 poem@
사진제공│DO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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