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인생을 보내면, 눈 쌓인 겨울을 경험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부산 사람들은 눈이 많이 온 날을 떠올리면 특정 연도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만큼 부산은 눈이 귀한 곳이다. 상경하며 꿈꾼 서울 로망 중에 이 있을 정도 눈을 좋아했다. 실제로 서울에서 맞은 첫 겨울은 로망을 이뤄주기 충분했다. 첫눈을 보았을 땐 하던 일을 중단하고 곧장 집 밖으로 나가 눈을 구경했다. 눈을 밟으며 뽀드득소리에 귀 기울여보기도 하고, 맨손으로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손끝이 차가워져 빨갛게 변하는 것도 모른 채 눈 삼매경에 빠졌다. 이후 몇 번의 눈을 더 보았지만, 항상 밖으로 나가 눈을 구경하고 만끽했다.

  하루는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그 날은 눈이 꽤 내려 안암동의 바닥이 흰색으로 물든 날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눈 놀이를 즐긴 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가게에 들어온 손님들의 신발에는 눈이 묻어있었고 그 눈은 녹아 식당 바닥을 더럽혔다. 눈으로 인해 더러워진 바닥을 닦는 일은 예사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독한 냄새가 나는 바닥 세정제를 뿌리고 대걸레로 힘주어 닦아야 했다. 그러나 바닥을 닦고 닦아도 새로 들어오는 손님마다 다시 눈을 데리고 왔으며, 바닥은 계속해서 더러워졌다.

  눈으로 더러워진 바닥 닦기를 사흘쯤 하였을까, 바닥을 닦으며 생각했다. ‘로망과 현실은 다르구나.’ 상경 전 기대하던 눈의 모습에 더러워진 바닥 닦기와 같은 모습은 없었다. 하얗기만 할 것 같던 눈에서 검은 모습을 확인했다. 눈의 현실을 알았지만, 눈을 싫어하게 되진 않았다. 여전히 눈이 내리면 밖으로 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모습을 구경한다. 부드럽고 하얀 모습과 질척거리고 까만 모습 모두 이다. 눈의 양면성을 보며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과 악은 모두 한 사회가 지니고 있는 모습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뗄 수 없다. 그렇기에 악이 없는 완전한 선또한 없다. 선이 악이 될 수도, 악이 선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수많은 도덕적 딜레마를 마주한다. 그 속에서 완전한 선’, 즉 완전한 해답을 찾는 일은 우리를 고통에 빠지게 만든다. 우리는 그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좋아하되,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눈으로 더러워진 바닥은 싫어하지만, 도시를 뒤덮은 하얀 눈은 좋아하는 것처럼.

 

윤혜정 기자 samsara@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